지금까지는 노먼 폴슨의 자서전에서 핵심적인 부분들만을 발췌해서 그의 영적인 세계를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그가 이루려고 했던 이상적인 공동체의 꿈은 어떻게 되었을까? 다음은 그가 창설한 선버스트 공동체가 걸어온 여정을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1968년 산타 바바라에서 노먼 폴슨을 중심으로 작은 명상 모임이 만들어졌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주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었다. 이 그룹은 8개월만에 25명으로 늘어났는데, 당시에는 태양형제단 Brotherhood of the Sun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공동체 내에서는 아침 저녁으로 그룹 명상이 행해졌고 마약, 알콜, 담배가 금지되었다. 요가난다가 구상했던 자급자족형의 공동체를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폴슨은 1970년에 카미노 시엘로 산정에 위치한 160 에이커의 농장을 구입함으로써 자신이 꿈에 그리던 공동체를 본격적으로 출발시키게 되었다.

  폴슨과 그의 제자들이 처음 그곳으로 거주하기 위해 갔을 때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비가 그치면서 갑자기 아침 태양이 구름 사이를 뚫고 빛나며 산등성이와 계곡을 비추었고, 하늘에 커다란 무지개가 그려지며 그들을 환영했다. 이 장관을 감탄하면서 바라보던 그들은 농장의 이름을 ‘선버스트 농장’이라고 지었고 거기 있던 오래된 건물에는 ‘레인보우 롯지’라는 이름을 붙였다. 선버스트sunburst는 구름 사이에서 갑자기 비치는 강한 햇살이라는 뜻이다.

  선버스트 공동체는 유기농법으로 작물들을 재배해서 팔았고, 과수원을 만들고, 말을 이용해 쟁기질을 했다. 그리고 염소를 길러 우유와 치즈를, 양봉을 통해 꿀을 얻었다. 그곳에는 대장간도 있었고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도 있었다. 그들은 자급자족을 위한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시설들을 갖추었다. 그들은 자체 재배한 유기농 작물로 메뉴를 만들어 파는 레스토랑을 열기도 했고, 주스 공장, 빵집, 유기농산물 도매점 등을 운영하기도 했다.


  선버스트 공동체는 나날이 성장해서 한 때 멤버수가 3백 명이 넘기도 했다. 멤버들을 수용하기 위해 1971년에는 150 에이커의 오길비 농장(레무리아로 개명), 1976년 3천 에이커의 타지규어스 농장을 구입했다.

  1980년대 초가 되자 많은 멤버들이 결혼을 하여 아이들을 낳게 되었다. 젊은 시절에 그룹 공동 펀드의 체험을 즐겼던 그들도 가족을 가지게 되자 경제적인 독립을 원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되었다. 재정적인 문제를 비롯, 공동체 운영 방식에 대한 견해 차이 등 내외적인 여러 문제들이 발생하면서 많은 멤버들이 떠나게 되었고 선버스트의 활동은 위축되었다.

  재정 위기에 봉착한 선버스트 공동체는 1981년 타지규어스 농장을 팔고 네바다주 엘코의 빅스프링스 농장을 구입했고, 폴슨과 남아 있던 멤버들이 그곳으로 옮겼다. 그러나 추운 북부 기후 때문에 농작물 재배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결국 주활동 무대를 인근의 솔트 레이크 시로 옮기게 되었다.

  수년 동안 솔트 레이크 시에서 재정 상태를 회복한 선버스트 공동체는 1996년 산타 바바라와 롬포크 사이에 위치한 4천 에이커의 농장을 구입해 그곳으로 옮겨왔다. 이 그룹은 10년 동안 태양로고스회Solar Logos Foundation라는 명칭으로 활동하다가 2006년 선버스트 성소Sunburst Santuary라는 이름의 영적인 은거 센터로 새롭게 출발했다.

  이곳에서 멤버들은 유기농 채소와 과일을 재배하고 그룹 명상을 하며 요가 클래스를 열고 음악, 미술 등 다양한 분야의 워크숍을 개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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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먼 폴슨은 SRF에서 나온 뒤 유에프오와 초고대 문명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크리야 요가와 직접 관련된 사항이 아니어서 이 부분은 짧게 언급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노먼 폴슨의 친구 다니엘 분이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가 제대하고 돌아오자, 두 사람은 호기심에 당시 유에프오 접촉자로 유명했던 조지 반 테슬을 만나러 캘리포니아 유카 벨리의 ‘자이언트 락(사막 한 가운데 있는 거대한 바위로 유에프오가 자주 출몰하는 곳이다)’으로 가게 되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두 사람은 그 후 반 테슬과 같이 일을 하게 되었다.


                                    조지 반 테슬


                        자이언트 락 상공에 나타난 UFO

  나중에 노먼은 반 테슬의 둘째 딸 글렌다와 결혼하게 되었으니 그와 반 테슬과는 보통 인연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로 그의 친구 다니엘은 반 테슬의 셋째 딸 산드라와 결혼했다.


                    자이언트 락에서 친구 다니엘과 함께

  그는 젊은 시절 직접 유에프오를 목격한 적이 있었고 반 테슬과의 만남 이후로는 접촉 횟수가 더욱 많아졌다. 그는 마침내 유에프오에 탄 존재들과 영적인 교신을 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접촉한 존재들을 빌더들Builders이라고 불렀다.

  ‘빌더들’에 대한 개념은 크리야 요가와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다. 노먼 폴슨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빌더들(즉 건설자들)을 신성한 창조의 관리자, 신의 아들과 딸들, 우주로부터 온 신들이라고 정의한다.

  빌더들은 불사의 경지를 성취한 존재들로, 신의 왕국, 즉 우주 안에 있는 모든 생명체의 진화를 돌보는 일을 한다. 그들은 필요할 때마다 자신들의 물질적 외형을 바꿀 수 있으며 텔레파시로 서로 통신 할 수 있다. 그들은 물질과학과 영적인 과학의 마스터들이다.

  빌더들은 까마득한 과거에 우리 태양계로 오게 되었다. 그들은 이 태양계가 자신들과 같은 생명체를 만들고 유지할 수 있는 적절한 장소로 생각했다. 그들은 주기적으로 지구에 찾아와 식물과 동물들(원시적 인간들도 포함해서)의 씨앗과 종들을 뿌리고 관리하면서 번성시켰다.

  그러나 나중에 빌더들 사이에서 신의 의지에 따르지 않는 존재들이 생기게 되었다. 신은 빌더들로 하여금 우주의 특정한 영역에는 들어가지 말도록 경고한 바 있었다. 그곳은 난폭한 자기 폭풍이 부는 에너지 영역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경고를 무시하고 그 특이한 자기장의 영향을 조사하기 위해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 순간 예기치 못하게 그 그룹은 그곳의 엄청난 자기 폭풍에 갇히게 되었다. 그러자 네거티브 에너지의 검은 구름이 그들의 의식을 덮어버렸다. 그리고 그 결과 그들 내면에 존재하던 신의 빛이 어두워져버렸다.

  그들은 그곳의 부정적 환경과 조건에 적응할 준비가 전혀 돼 있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들 안에서 부정적인 에너지들이 작동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신성의 성품과 정반대되는 악덕들(분노, 질투, 탐욕 등)을 표현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네거티브 에너지 장으로부터 얼른 철수할 생각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곳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어두운 상념들로 인해 그들 내면에 항상 빛나고 있던 대 중앙 태양의 빛이 어두워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은 하늘 왕국을 상실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이 타락 천사들은 자기들의 형제와 자매들을 정복하고 파괴하고 노예화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그들은 우주선들을 만들고 가공할 원자 무기들을 탑재하여 우주 곳곳에 빌더들이 건설한 세계와 문명들을 공격하여 파괴하기 시작했다.

  빌더들은 이 타락 천사들의 공격에 무참하게 스러져 갔다. 그들의 성품 속에는 공격적인 성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마침내 빌더들은 최후 생존과 방어를 위해 싸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둠의 세력과 대항하는 빛의 전사들을 키우기 시작했다.

  빌더들은 지구에 와서 초고대 문명을 일구었다. 이때 처음으로 그들은 지구 위에 거주하던 원시적 인간들과 접촉하게 되었다. 빌더들은 원시 인류의 진화를 가속화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유전자를 그들의 유전자와 섞었다. 그리하여 불의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 의식이 새로운 인류에게 내려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과 여러 면에서 닮은 이 새로운 인류가 지상에서 문명을 일구어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어둠의 세력들은 지구에서 빌더들이 이루어 놓은 문명을 발견하고는 공격을 감행해 왔다. 마침내 빌더들은 타락천사들과의 전쟁에서 져서 지구를 떠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반드시 다시 지구로 돌아와 악을 물리쳐 인류에게 영적인 의식을 고양시키겠다고 다짐했다. 그 약속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다. 불의 전차(UFO)를 타고 빌더들이 지구에 다시 귀환하고 있는 것이다.

  이 타락한 신의 자식들, 어둠의 영들은 인류가 영적으로 계명되기를 원치 않는다. 왜냐하면 그렇게 될 경우, 전쟁, 공포, 부패, 탐욕, 살인, 욕망 등을 부추기는 그들의 재미와 게임은 이 세계에서 곧 종막을 고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빛의 전사들의 활동을 방해하고 파괴한다. 그렇게 빛의 세력과 어둠의 세력 사이의 대 전쟁은 까마득한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격렬히 계속 되고 있다.


                        자이언트 락에서 노먼이 본 UFO

  노먼 폴슨은 1958년 여름에 천상의 합창 소리가 주변 가득히 울려퍼지는 소리를 듣는 현상을 겪은 뒤 빌더들 중의 한 명인 엘리시아Elithea와 영적인 통신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를 통해 사막 한 가운데에서 천사와 인간을 연결하는 고대 비전의식을 가지게 된다. 이 입문식을 통해 빌더들은 그의 송과선과 왕관 차크라를 열어주었다. 그리고 그는 불의 세례를 받아 내적 차원계inner dimensions에 있는 빌더들의 세계를 영안으로 보고 그들과 자유롭게 통신할 수 있게 되었다.


                                빌더들과의 만남

  그는 엘리시아의 인도로 신성한 불의 전차(즉 ufo)를 타고 지구 밖 우주에서 빌더들의 지도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의 마음과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영원한 그리스도 사제단에 속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노먼 폴슨 역시 신성한 어머니-아버지, 스스로 있는 자(I AM THAT I AM)가 만든 이 영원한 불멸의 사제단의 일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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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2년 여름이 8월 중순으로 달리고 있었다. 나의 전화회사 일은 계속 되고 있었다. 나는 가설공 일을 즐기고 있었다. 전신주 위로 올라가는 것은 재미있었다. 일이 익숙해 갈수록 나는 그것을 더욱 즐겼다. 가설공들 사이에는 하나의 우스갯말이 있다. '전신주 불태우기'가 그것이다. 전신주 위로 올라가는 법을 막 배우기 시작하는 초짜 가설공이 어색하게 올라가는 모습은 정말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는 장면이다. 초짜한테는 불행하게도, 그럴 때면 선배 가설공이 밑에 서서 지켜 보면서 장난삼아 쿡쿡 찔러대곤 했다.

  대개의 경우 모든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한 번 정도는 떨어지는 체험을 한다. 첫 시도에서 바로 떨어질 때도 있고, 나중에는 너무 자신 있게 달려들다가 떨어지기도 한다. '전신주 불태우기'는 농담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 올라갈 때 사용되는 클라이밍 후크가 나무기둥에서 미끌어지면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는 데, 이때 가설공은 전신주를 있는 힘껏 끌어안은 뒤 땅바닥까지 서서히 미끌어져 내려온다. 이때 전신주와의 마찰열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 전신주에 불내는 능력은 그 사람의 몸무게, 꽉 끌어안은 강도, 지표로부터의 거리에 비례하게 된다. 다행히 가설공이 현장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는 경우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1952년 8월 중후반, 나를 포함한 건설 인부들이 캘리포니아 서머랜드의 도시에서 수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낡은 가로장과 전화선을 새것으로 교체하고 있었다. 금요일 늦은 오후였다. 그때 나는 오래된 전신주에서 사이드암을 막 교체해서 새 전화선이 그것을 가로질러 매달릴 수 있게 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제 새로운 와이어를 내려 절연체들에 고정시키기만 하면 모든 작업은 끝나게 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일을 빨리 마치기 위해 서둘렀다. 4시가 되었기 때문에 본점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조장은 내일 또 오는 일이 없도록 오후 중으로 일을 마치기를 원했다. "이봐, 너무 늦지 않으려면 어서어서 서둘러." 그가 외쳤다.

  나는 전신주 위로 올라 새로 교체된 사이드암 있는 쪽으로 향했다. 와이어를 고정시키는 것은 5분도 안 걸리는 작업이었다. 사이드암에 이르자 발에 매달린 클라이밍 후크들을 내려다 보았다. 그것들은 안전하게 전신주 나무기둥에 꽂혀 있었다. 나는 오른 손으로 기둥을 붙잡은 뒤 왼손을 내려 뻗어 안전 벨트의 한쪽 끝 걸쇠를 풀고는 그것을 기둥 주위로 둘렀다. 그러고 나서 오른손으로 안전벨트의 끝을 움켜쥐고, 왼손으로 그것을 붙잡아 벨트의 다른 쪽에 있는 고리 속으로 걸쇠를 걸었다. 찰칵하며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서두르고 있던 탓에 나는 미처 벨트가 안전하게 고리에 걸렸는지 아래를 내려다보고 확인하지 않았다. 이것이 나의 실수였다.

  나의 안전벨트가 사이드암의 꼭대기 위에 걸쳐져 꼬여 있었다. 내가 다시 툴 벨트에 몸을 의지했을 때 안전벨트의 걸쇠가 고리 속에 절반밖에 걸리지 않았음에 틀림 없었다. 꼬여진 벨트 때문에 걸쇠가 휙 풀려버린 것이다. 나는 뒤로 떨어지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럴 시간이 없었다. 전신주든 어떤 것이든 손으로 잡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아, 이런!" 나는 30피트도 넘는 높이에 있었다. 이런 높이에서 떨어지고 무사하길 바랄 수는 없었다. 전신주가 빠르게 나로부터 멀어져 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땅바닥을 향해 머리부터 수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땅바닥에 닿을 때의 충격에 대비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정작 바닥에 닿을 때는 전혀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얼굴에 햇빛이 닿는 것처럼 불빛이 번쩍하더니 다음 순간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나는 낯익은 산타 바바라 해안선 위, 높은 허공에 머물러 서 있었다. 저 멀리 아래로 대양 표면의 파도들이 해변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기억나기 시작했다. 내가 추락사고를 당했고 내 몸은 저 밑 어디엔가 누워 있다.

  나는 그리스도의 이중 신성력에 의해 육체로부터 끌어당겨지고 있었다. 나의 육체는 죽었거나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다. 모든 곳에 편재하는 훔Hum과 옴Om의 진동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생명의 바다를 채우고 있었다. 북서쪽으로 이제까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장엄한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아스트랄 세계가 수평선 위로 무지개처럼 떠 있었다. 이제 나는 고요한 운동의 추진력에 의해 팔을 앞으로 쭉 뻗은 채 북쪽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아무런 노력도 없이 높이 더 높이 날아가고 있었다.

  저 아래로 캘리포니아 해안 전체가 보였다. 지구를 감싸고 있는 부드러운 아스트랄 색상들이 북극의 오로라처럼 모든 방향에 드리워져 있었다. 이제 나의 생각들이 내 혼 깊은 곳으로부터 오랫동안 인지되고 있던 사실들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구를 떠나기 위해 나는 북극의 볼텍스vortex를 통해 나가야만 한다. 저기에 문이 있다.

  북쪽으로 움직이고 있을 때 마음 속에서 뒤에 남겨 두고 온 나의 모든 세속적인 일들이 떠올랐다. 저 아래로 서해안 인근에 자리한 산 루이스 오비스포가 보였다. 명상에 잠긴 거대한 부처가 아스트랄 이미지로 나타났다. 그것은 아버지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 틀림 없었다. 나는 그에게 작별의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 점이 마음에 걸렸다. 이제 그 이미지가 안개처럼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아련한 기억을 통해 나의 목적적지가 저기 북극이고 그곳의 볼텍스를 통과해야만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곳에서 운동하고 있는 자류가 만나며, 자장에 하나의 구멍이 생성돼 있었다. 이제 지구의 북반구가 내 아래로 펼쳐져 있었다. 얼마나 환상적인지! 아롱거리는 아스트랄 구름을 통해 북반구의 대부분이 보였다. 그 색상들이 이제까지 내가 보아온 것보다 더 화려했다. 다시 내 혼 깊은 곳에 오랫동안 간직되어온 사실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머니 지구는 두 개의 볼텍스 힘에 의해 움직인다. 하나는 북극을 통해 내려가고 다른 하나는 남극을 통해 올라간다. 남극에서 북극으로 향하는 아스트랄 에너지와 물질 에너지의 운동이 나침반의 바늘을 움직여 영구적으로 자북극을 향하게 한다. 어머니 지구는 신성한 시간 위에서 자연의 힘들과 더불어 자신의 오리지날 창조자인 볼텍스의 힘들을 축으로 회전한다. (달과 같은 죽은 천체들은 볼텍스의 힘들이 제거되었을 때 회전을 상실한다.)

  인간의 육체는 어머니 지구와 유사하다. 지구와 인간은 모두 신의 두 팔인 음과 양, 두 볼텍스의 작용에 의해 창조되고 움직인다. 태어나서 몇 달 동안 아기 정수리 부위는 말랑말랑하고 심장의 박동과 함께 맥동친다. 거기서 우리는 오랫동안 잊혀져 왔던 신성한 영과 천상의 왕국에 이르는 문을 발견하게 된다. 그곳은 인간의 자북극이다. 정수리의 이 문을 통해 신성한 남성적 힘이 생명나무, 즉 척추 속으로 들어온다. 그것은 반시계 방향으로 움직이는 볼텍스를 따라 밑으로 움직인다. 인간의 자남극은 척추의 아래 끝부분이다. 여기에서 신성한 여성적 힘이 시계 방향의 볼텍스를 따라 위로 움직인다.

  신성한 영이 창조의 실을 잣고 거기 포함된 모든 이미지들이 가시적 형상을 입게 되는 것은 생명과 의식의 이 신성한 이중 힘의 운동을 통해서이다. 이 두 신성한 볼텍스 힘의 운동에 대한 이해를 통해 우리는 신성한 영, 어머니-아버지 신, 스스로 있는 자I AM THAT I AM 속으로 들어가는 감추어진 문을 여는 열쇠를 얻게 된다.

  우리의 신성한 아버지-어머니는 두 볼텍스 속에서 창조의 양극성을 만들고, 팽창해 가는 창조의 구를 유지한다. 모든 가시적인 형상들은 이 신성한 볼텍스 힘들의 소산이다. 지구상 인간들의 육체는 바다의 진흙으로부터 진화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불멸의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 인간들은 음양의 신성한 볼텍스의 힘 속으로 천사들이 내려오게 하여 불의 세례를 받음으로써만 불멸성(그리스도 의식)의 실현이라는 선물을 받을 수 있다. 이 그리스도의 신성한 이중적 힘은 우리 안에서 결합되었을 때 심장 센터 안에서 신성한 영적 태아인 아기 그리스도의 수태와 탄생을 가져온다.

  단순한 에고 의식 상태 속에 존재하는 인간들은 천사들에 의해 관리되는 신성한 볼텍스의 힘들에 대해 거의 모른다. 그들은 미리 운명지어진 내적인 연결과 합일(즉, 신성한 영적 태아, 그리스도 의식의 탄생)에 대해 의식하지 못한다. 이 신성한 힘들은 오늘날의 인간들 속을 들어가는 것이 매우 힘들다는 것을 안다. 인류는 더 이상 신의 시간 위에서 회전하거나 운동하지 않는다. 인간들은 세계의 동산, 그리고 그 위의 모든 피조물들과의 조화를 상실하였다. 사람들은 자신의 형제 자매들과 반목하고 싸우고 있다. 우리 세계는 달처럼 죽어가고 있다.

  저 아래로 환상적인 푸른빛의 천구, 어머니 지구가 내려다 보였다. “신성한 아버지-어머니여, 당신께서 창조한 신성한 이미지들은 놀랍습니다! 오, 저로 하여금 비천한 아들로서 당신과 항상 함께 하게 하소서. 진정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내가 당신에 대해 보고 알게 된 모든 것들을 사랑합니다, 오 천상의 아버지-어머니여.”

 다시 속세 아버지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떠나기 전에 그에게 어떻게든 작별인사를 해야만 한다. 내가 돌아서자 소용돌이치는 백색의 빛 덩어리가 마치 빛나는 나선형 계단처럼 내 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이제 찬란한 백색 불에 감싸인 채 밑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의 몸이 담요로 덮인 채 전신주 아래에 뉘어져 있었다. 아무 느낌도 없이 나는 몸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눈을 떠 보니 나를 내려다 보고 있는 근심어린 얼굴들이 보였다.

  "움직이지마, 노먼. 엠뷸런스가 오고 있어!"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담요를 휙 걷어치우고 벌떡 일어섰다. 타박상을 입거나 골절된 곳이 있는 지 살폈다.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나는 말짱했다. 동료 인부들이 나를 앉히고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그러나 나는 다시 전신주로 올라가 작업을 마치고 싶다고 우겼다.

  "오, 안 돼! 그러지 마!"

  동료들의 왁자한 소리 너머로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그날 밤 의사들이 내 몸 전체 곳곳을 엑스레이로 찍었다. 그러나 부러진 곳이 한 군데도 발견되지 않았다. 또 내 피부에서는 타박상 하나 발견되지 않았다. 나의 신성한 동반자, 천사, 돌보는 자들이 내가 추락할 때 받아주었던 것 같다. 이 지구를 떠나기 전에 아직 내게는 신성한 의지를 수행해야만 할 일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후에 이런 얘기를 들었다. 당시 나는 머리부터 곤두박질쳤는데, 그때 내 왼쪽 머리와 어깨가 커다란 바위에 충돌했다고 한다. 그 상황이라면 목과 두개골이 부서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타박상 하나 입지 않았다. 다음 주 월요일에는 보험 문제 때문에 전화 회사에서 나를 LA로 보내 추가 엑스레이를 찍도록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상처 하나 발견되지 않았다. 나는 기적적으로 생명을 유지한 것이었다.

  (이후에도  노먼 폴슨은 급성 맹장염에 걸려 사경을 헤맬 때 영적인 존재로부터 치유를 받는 일이 있었다. 그때 그는 자신이 멜기세덱이라고 밝히며 노먼이 어린시절에 보았던 바로 그 존재라고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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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2년 2월 4일 스스로 있는 자(I AM THAT I AM)에 대한 놀라운 체험을 통해 나는 꿈같은 황홀경에 빠졌다. 나는 3차원 질료의 환영적 껍질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내부로부터 그 환영을 지탱하는 빛의 입자들을 볼 수 있었다.

  이 최근의 계시를 통해 모든 외부 형상들은 내게 있어서 마치 영화 세트와 같은 비실재성을 띠었다. 내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마치 자신의 대본에 몰입해서 일시적으로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망각하고 있는 영화배우들처럼 느껴졌다. 그렇다. 지구는 사실상 하나의 무대였다. 인생의 드라마가 계속 연출되고 있는 무대.

  드라마 속에서 영적으로 계명된 배우의 역할은 다른 배우들을 영적으로 계명시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자기 내면의 순수 자아, 그리스도를 망각하였을 때 고통이 실제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인생을 빛과 그림자의 일시적인 놀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이곳 지상에서의 인생의 드라마를 즐길 수 있다.

  고대의 황금시대에 펼쳐진 연극은 환희에 찬 사건들이었다. 우리는 삶의 무대인 이 세상을 파괴하지 않고 우리의 신성한 유산인 그리스도 의식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해야만 한다. 우리는 오늘날 신성한 극작가(신)에 대한 반역을 목도하고 있다. 그 반역은 종국적으로 재앙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인류는 다른 대본을 쓸 능력도 시간도 없다.

  신성한 어머니-아버지와의 합일에 대한 체험의 영향 때문에 나는 잠시 동안 전화회사에서의 일을 그만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육체가 여러 가지로 불편하게 느껴졌다. 신성한 지침에 반하는 물질계의 거칠고 시끄러운 환경을 참아내기가 어려웠다. 이방인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고 할까. 나의 세대는 신성한 일루미네이션(깨달음)을 추구하는데 전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일부는 지적인 측면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이상 더 나아가기를 원치 않는다. 이제 나는, 마스터 요가난다가 세상에 세계 형제 공동체를 실현시키지 못한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에게는 그것에 참여할 배우들이 부족했던 것이다.

  형제 공동체에 대한 꿈을 실현시킬 시간이 다음 세대와 그 후손들에게 다가오게 될 것이다. 나는 거의 20년을 기다려야만 했다. 나는 무엇을 해야만 하지? 나는 전에 체험했던 신성한 영과 무시無時의 영원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을 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내 앞에 나타나 말하는 것이었다. "만일 네가 지금 신성한 영 속으로 들어가 버리면 너는 이 삶 속에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신성한 의지가 내 위에 작용하고 있었다. 도망칠 도리가 없었다. 나는 사람들의 고통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야만 했다. 어떻게 하면 외적인 물질과 오감에 대한 집착을 부술 수 있을까? 그것은 외부 사물보다 우리 내면의 그리스도에 대한 자각욕이 더 클 때만 가능하다. 이정표를 세워야만 했다.

  요가난다는 언젠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리글리(껌 회사)도 사람들한테 껌을 씹으라고 광고하는데, 나라고 해서 사람들에게 좋은 이상을 향유하도록 광고하지 못할게 무엇이 있는가?" 신성한 일루미네이션의 과실을 향유하는 것은 반드시 공개적으로 입증되어야만 한다. 인류는 사후의 구원과 천국을 믿는 유치한 단계를 넘어서야 한다.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스스로의 힘으로 천국, 즉 그리스도 의식을 체험해야만 한다. 오직 그랬을 때에만 사람들은 알고 믿을 수 있다. 오늘날 일부 교회에서 볼 수 있는 미숙한 감성주의는 사람들을 일시적으로 신에게로 이끌 수 있다. 그러나 신 안에 거하기 위해서는 매일 깊은 기도와 명상을 실천해야만 한다.

  예수는 말했다, 장님이 장님을 인도할 수 없다고. 왜냐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영적인 계명을 얻은 인간들은 사람들에게 길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신성한 천사들이 그들을 돕기 위해 여기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여타 위대한 스승들의 가르침은 원래 주어진 그대로 실천에 옮겨져야만 한다. 나는 이상적인 세계를 마음속에 그리려 노력했다. 사람들이 바로 살아있는 신의 자식들이라는 것을 모두 깨닫는 그런 세계를.

  나는 직관적으로 고대 세계에 많은 진보된 문명들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알았다. 내적 차원상의 불의 전차들은 어떤 신성한 드라마의 수행을 위해 먼 태양계에 대량의 식민을 했다. 고대의 황금시대에 우리 세계에도 그런 문명들이 존재했었다. 오늘날 우리는 폐허가 된 돌더미들 속에서 그 유물들을 볼 수 있다.

  불의 전차를 타고 있는 존재들은 '빌더Builder'라고 불린다. 지구는 지금 고대 황금시대와 같은 상태로 변화하려 하고 있다. 다음 세대에는 빛의 힘들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할 것이다. 빌더들의 귀환이 지금 진행되고 있다. 이 신성한 종족의 장로인 예수는 예정된 재림을 이룰 것이다. 나는 내적 감각들을 통해 다가올 미래의 사건들을 읽고 느끼고 있다. 앞으로 어떤 시련이 닥쳐오든 나는 그것을 이겨낼 것이다. 내 의식 속에는 빛과 어둠의 세력을 대표하는 존재들의 이름이 새겨지게 될 것이다.

  요가난다는 이 혹성에 존재하는 세 가지 커다란 유혹을 이렇게 정의했다. 육욕(육체적 감각을 충족시키려는 욕망), 술(일시적인 도피의 욕망), 부와 권력(자기 의식적인 에고의 만족을 위한 욕망)에 대한 집착. 이 세 가지 유혹을 통해 어둠의 세력은 사람들을 미망의 그물 속에 가둔다. 사람들이 그 그물에 걸려들 때 기만의 영들은 웃음짓는다.

  이 세계의 사람들은 ‘원인과 결과의 법칙’을 배우지도 존중하지도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뿌린대로 거둔다고 가르치지 않았는가! 불행히도 위대한 성자들의 가르침은 무시되거나 부정적인 영들에 의해 고의적으로 잘못 해석되고 있다. 우리는 어둠의 존재들을 덮고 있는 베일을 찢어버려야만 한다. 사람들은 그 거대한 사기를 직시해야만 한다.

  파괴의 존재들은 실재한다. 지구와 천상이 실재하듯이. 타락 천사들은 신성한 드라마를 붕괴시키기 위해 세계 위에 진을 친 채 빛의 세력과의 총력전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내던져지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천사들의 군대에 대해 언급하면서 자기가 신성한 빛의 전사들을 부릴 수 있다고 말하였다. 나는 이 빛과 어둠의 투쟁에 관여하게 될까? 떨린다. 얼음처럼 차가운 바람이 느껴진다. 내 인생에는 많은 역경들이 닥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찌되었든 결국에는 승리할 것이다.

  1952년 2월 22일 나는 전화회사의 일자리로 복귀했다. 한 주의 일을 끝낸 뒤 나는 금요일 저녁에 요가난다를 만나기 위해 와싱턴 산으로 가리라 마음먹었다. 나는 그에게 최근 내가 겪은 놀라운 체험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헐리우드에 도착한 나는 그날 밤을 지내기 위해 방 하나를 빌렸다. 그리고 나는 토요일 아침 은거지로 차를 몰고 갈 결심을 했다. 그날 밤 나는 차라리 요가난다에게 전화를 거는 편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떠올라 그렇게 했다. 그의 비서가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내가 파라마한사지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으면 전해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마 그를 볼 수는 없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선셋 대로의 SRF 교회 근처 공중전화 박스에 서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육신을 입은 나의 사랑하는 스승과 마지막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수화기를 들고 기다리고 있으려니 전화기 너머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다른 방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여보세요, 어떻게 지내, 빅 보이?"

  "잘 지냅니다, 선생님. 제게 일어난 일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그래, 그래. 나도 알아. 지금 무척 바빠. 말해."

  "내일 가능하다면 뵙고 싶은데요."

  오랫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한 숨 소리가 들리더니 그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는 곧 떠날 거야. 3월 7일이 빅 데이가 될 거 같아."

  "내일 만나뵐 수는 없을까요?"

  "이제부터 너는 나를 영안 속에서 찾아야만 해. 신성한 어머니가 말했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그녀는 내가 더 이상 어떤 사람도 만나는 걸 허락하지 않을 거야."

  "제게 일어난 일에 대해 조금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래, 그래. 하지만 빨리 서둘러."

  나는 가능한 짧게 내게 일어났던 일에 대해 간단히 말했다.

  "오래 전에 내가 말했었잖아. 너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될 거라고. 이제 너는 강해져야만 해. 너는 나의 자이언트야. 내가 떠난 후 너는 날 보게 될 거야. 기억해!"

  "예, 선생님. 기억할게요."

  "이제 너는 주님을 너의 영원한 동반자로 만들어야만 해. 그러면 결코 외롭지 않을 거야. 이제 끊어야겠군."

  "은거지에 찾아가도 되나요?"

  "그래, 네게 문은 항상 열려있어. 안녕."

  "잘 지내세요, 선생님."

  전화가 찰칵 소리를 내며 끊겼다. 나는 이것이 그와의 마지막 대화가 되리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공중전화 박스에서 나와 교통 소음과 도시의 불빛 속으로 들어갔다. 요가난다의 목소리가 내 마음 속에서 메아리치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도시의 밝은 불빛들 때문에 별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차를 몰고 갈 때 요가난다의 말들이 떠올랐다. "나는 곧 떠날 거야. 3월 7일이 빅 데이가 될 거 같아." 갑자기 나는, 실제로 그가 육신을 떠날 날짜가 3월 7일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나? 아니야. 이것은 그의 길이다. 나는 침묵한 채로 있어야지. 언젠가 그가 한 말이 귓가에 울렸다. "내가 떠나고 난 뒤에야 사람들은 내가 누구였는지 알게 될 거야."

  나는 산타 바라라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음 며칠 동안 안절부절 못했다. 불안은 끔찍했다. 직관적으로 그가 3월 7일 날 육신을 떠나는 것이 맞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그날이 다가왔다.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감지한 것은 오후 늦은 시간이었다. 그 날 밤 전화를 걸어본 후에 나는 그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요가난다는 LA 빌트모어 호텔에서 열린 인도 대사 비나이 R. 센을 위한 연회에서 몸을 버리고 떠났다. 그는 거기 모인 많은 청중들 앞에서 떠났다. 그는 짧은 연사를 마치고 자신이 쓴 시 '나의 인도'를 읊었다.

  거기서 갠지스 숲들,

  히말라야 동굴들,

  그리고 인간들이 신을 꿈꾸나니.

  나는 성화聖化되고,

  나의 몸은 그 뗏장에 닿았다.

  이 마지막 시구와 함께 그는 바닥에 쓰러졌다. 그는 떠났다.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그렇다.

  제자들이 그의 육신을 와싱턴 산으로 옮겨와 그의 침대에 눕혔다. 거기서 그들은 한 사람씩 차례로 마지막 작별 인사를 드렸다. 어떤 이들은 그가 사마디 상태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다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다음 날 그의 시신은 포리스트 론 기념 공원으로 옮겨졌다.

  요가난다의 초기 제자들 중 한 사람인 제임스 J. 린(요가난다의 사후, 자아실현회의 회장이 되었다)이, 파라마한사지가 그에게 자신은 다시 깨어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이것이 자신의 마하 사마디(진보된 요기들이 의식적으로 자신의 육신을 버리고 영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라고 말했다고 발표했다. 요가난다가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고 염려하여 장의사에게 시신을 넘기기를 꺼려했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의견은 무시되었다. 


            요가난다의 임종 모습

  나는 그날 밤 가능한 빠른 속력으로 와싱턴 산을 향해 차를 몰았다. 나도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것이 허락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한 사람씩 그의 곁에 다가가 그를 본 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그의 방에 들어갔다. 침대 위에 뉘인 그의 육신을 보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렇다! 그는 떠난 것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의 육신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의 곁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얼굴에는 엷은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마치 막 잠이 든 것처럼 보였다. 그를 만지자 그의 살에서 아직도 생기가 느껴졌다.

  그가 진정으로 떠나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떠났다. 그는 이미 1년 반 전에 내게 작별 인사를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다시 며칠 전에도. 나는 그의 발치에서 조용히 명상했다. 어린 시절 내가 보았던 크고 반짝이는 그 두 눈이 이제 영원히 세계를 향해 감겨있다. 우리는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나의 상실감은 몹시 컸다. 지칠 때 힘을 얻을 그가 이제 여기에 없다. 그의 제자들은 홀로서기를 했다. 오로지 그의 설법들만이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리고 그와 함께 했던 소중한 기억만이. "잘 가세요, 선생님. 당신의 형상에 절을 합니다. 당신은 죽음을 정복하고 최종적인 승리를 거둘 것입니다. 나는 압니다, 당신이 다시 일어설 것을. 예. 나는 당신의 형상을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약속하셨잖아요."

  요가난다의 시신은 염습을 위해 포리스트 론 기념 공원으로 옮겨졌다. 기적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요가난다의 시신은 장례식을 위해 와싱턴 산으로 돌아왔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도 장례식에 참석했다. 무리 중에는 그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마지막 순간에 마음의 변화를 느끼고, 마지막으로 한 번 그를 보려고 달려온 것이었다.


  요가난다 장례식. 좌측에서 두 번째가 SRF 2대 회장인 제임스 린(자나카난다). 세번째는 부회장 루이스 박사.

  장례식은 요가난다의 초기 제자인 제임스 린과 루이스 박사에 의해 집전되었다. 그러나 기억나는 것은 거의 없다.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그 모든 의식儀式들으로 인해 혼란에 빠져 있었다. 장례식 끝부분에 정신 차려 보니 어찌어찌 내가 요가난다의 관 머리 쪽을 잡고 리무진으로 옮기고 있었다. "오, 파라마한사 요가난다, 어쩌다 보니 또 당신의 몸을 옮기고 있군요." 그의 시신이 와싱턴 산의 구비진 길 아래로 마지막 여행을 하는 동안 우리는 모두 조용히 함께 서 있었다.

  그로부터 20여일 후, 요가난다에 대한 뉴스가 신문들에 실렸다. 로스앤젤레스 미러와 로스앤젤레스 타임즈의 기사 제목은 ‘죽음을 이긴 요기’였다. 포리스트 론 기념 공원의 영안실 실장인 해리 T. 로우가 보내온 인증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관 속에 안치된 요가난다

  "파라마한사 요가난다의 시신에 부패의 징후가 보이지 않는 것은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지극히 특이한 케이스입니다. 사후 무려 20일이 지났는데도 그의 시신에는 육체적 부폐 현상이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의 피부에는 곰팡이의 흔적도 보이지 않습니다. 육체의 이런 완벽한 보존 상태는 우리 영안실 역사상 전례가 없는 특이한 현상입니다.

  3월 27일 청동 덮개의 관 속에 안치시키기 직전의 요가난다의 육체적 외관은 3월 7일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3월 27일 그의 모습은 부패에 의해 손상되지 않고 죽은 날 밤의 모습 그대로 생기가 감돌았습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우리의 경험상 파라마한사 요가난다의 사례는 독특한 것이라고 다시 진술하는 바입니다."

  인도에 있던 두 명의 제자가 그를 보기 위해 미국으로 올 수 없을 것 같다는 전갈이 도착하자 그의 관은 봉인되었다. 그것은 사후 20일 후의 일이었다. 나는 장례식을 마친 뒤 산타 바바라로 돌아왔다. 요가난다의 사역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가 없이 지속될 수 있을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를 알고 사랑했던 나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어려운 일이 되리라는 걸.

  나는 전화회사에서 일을 계속했다. 일을 한 덕분에 시간은 잘 갔다. 명상은 좋았다. 하지만 답보상태였다. 금요일의 놀라운 체험들이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의 전부였다. 여전히 주님은 내가 육체를 떠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체험들은 깊은 황홀경의 빛 속에서 생겨났다. 그 밖의 모든 세속적 추구들은 내게 있어서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나의 커다란 소망은 나의 영원한 거처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 밖의 어떤 다른 것도 나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나는 요가난다가 몹시도 그리웠다. 그는 내게 돌아온다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제 석 달이 흐르자, 나는 그가 약속을 지키지 못할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잊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올 수 없는 것일까? 나는 포기상태가 되어, 그가 돌아올 수 없는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1952년 어느 무더운 여름 오후 나는 나의 단칸방 집에 돌아왔다. 침대에 누워 나는 월트 휘트먼의 <풀잎>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돌개바람이 문을 때렸다. 놀란 내가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거기 사랑하는 파라마한사 요가난다가 방안으로 걸어 들어와 문을 닫고 있는 게 아닌가. 그는 내 침대 발치까지 걸어와 나를 내려다 보았다. 어린 시절 환영 속에 보았던 그 반짝이는 눈동자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그가 거기에 서 있는 동안 두 개의 형체가 그의 좌우편에 물질화 되었다. 그들은 허리에 걸치는 간단한 옷만 입은 채 연화좌 자세로 공중에 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저들은 파라마한사지가 어린 시절 환영 속에서 본 히말라야의 요기들이 틀림없다.’ 요가난다가 어린 시절의 소망대로 그들과 같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고요히 허공에 떠서 그의 곁을 맴돌고 있었다. 요가난다는 낯익은 오렌지 색 스와미 교단 법의를 입고 있었다. 그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벽들만큼이나 실제적이고 고형적으로 보였다. 나는 즉각 연화좌 자세로 일어나 앉았다. 파라마한사 요가난다가 이제 약속대로 돌아온 것이다.

  그는 기혼자들과 아이들로 구성된 영적인 공동체의 창설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기혼 남녀는 기본적인 목표 중 하나로 절제의 삶을 지켜야만 한다고 말했다. 요가난다의 부모는 아기를 갖기 위한 목적으로만 부부관계를 가졌다. 기혼 커플들은 자신이 짝을 통해서만 성적인 욕망을 해소해야 한다. 그리고 욕망과 진정한 영적인 사랑 사이의 차이점을 깨달아야만 한다. 성적인 충동이 일 때마다 창조력을 낭비한다면 의식이 고급한 상태의 성취를 위해 필요로 하는 에너지가 고갈되게 된다.

  영적인 공동체의 창설은 모든 참여자들의 지극한 절제의 성취와 더불어 덕성의 진정한 개념들에 바탕 두어져야만 한다. 욕망으로 인해 육체의 생명력을 계속 낭비한다면 영적인 공동체의 형성과 그리스도 의식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의 성취에 대한 모든 참여자들의 관심을 파괴하게 될 것이다.

  요가난다로부터 이런 메시지를 받고 나자 순간적으로 나의 눈에 영적인 공동체 속에서 성공적으로 함께 살고 있는 많은 커플들의 모습이 보였다. 덕성을 실천하고 명상을 하고 함께 일하면서 그들은 빌더들이 계획했던 에덴 동산의 본래 목적을 분명코 성취하게 될 것이다. 필연적으로 그들은 열매를 생명나무에 다시 돌려놓게 될 것이다.

  마스터가 손가락을 모은 채 칼처럼 손을 위로 들어올렸다. 이 포즈는 ‘나는 당신 안에 있는 무한한 영에게 절합니다.’라는 뜻이다. 그가 이제 막 떠나려 하고 있었다. 이제 나는, 우리가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걸 알았다. 요가난다가 몸을 돌리자 그 곁에 있던 두 사람이 사라졌다. 그가 문을 향해 걸어가 그것을 열었다. 그가 문 밖으로 나가려하자 나도 막 그를 따라나서려 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지금은 안 돼! 나중에!"

  문이 닫혔다. 요가난다는 삶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죽음을 통해서도 우리의 진정한 신적 본성, 그리스도 의식, 내면의 순수한 자아를 증명하였다. 그는 불멸의 존재가 되었고, 그것을 내게 증명하였다.

출처 : http://blog.naver.com/PostList.nhn?blogId=eyeinhand&categoryNo=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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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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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일 아침에 내가 체험한 신성의 방문은 월요일 날 직장으로 차를 몰고 갈 때까지도 내 마음 속을 강하게 지배하고 있었다. 일주일 후로 약속된 신성한 어머니의 돌아오심이 나를 전율케 하며 긴장시켰다. 앞으로 닷새 후 모든 어머니들의 어머니는 어떤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낼까?

  나는 신성의 방문을 대비해 목요일과 금요일에 단식할 것을 결심했다. 신성은 정말로 다시 나타날까? 나의 마음은 그 주 내내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나는 일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 주에 내게 주어진 일은 새로운 전신주를 묻을 구덩이를 손으로 파는 작업뿐이었다. 굴착 바와 삽으로 땅을 파다보면 몇 시간이 흘러갔다. 나는 일하는 동안에도 명상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마침내 금요일 오후가 되었다. 집으로 차를 몰고 오다가 나는 그곳의 한 지방 극장에서 '베르나데트의 노래'가 상영되고 있는 걸 알았다. 나는 그 영화가 보고 싶었다. 영화가 참 좋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성모의 방문에 대한 영화였다. 성모는 프랑스의 루르데라는 작은 마을에 사는 베르나데트라는 이름의 어린 소녀에게 나타난다. 나는 와싱턴 산에 있을 때 루르데의 기적에 대한 유명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걸 영화로도 무척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다음 주 언젠가 시간을 내어 극장에 가기로 마음 먹었다. 지금 이 시기에 산타 바바라에서 그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는 사실이 내게 임한 성스러운 어머니의 출현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었다.

 

  수년 동안의 명상 속에서 영안이 나타나곤 했는데, 그것은 요가난다가 묘사한 모습 그대로 였다. 먼저 황금빛 링이 나의 내적 환영의 막 위에 나타난다. 다음은, 짙은 청자색이 그 중심에 나타난다. 그것은 마치 일몰 뒤에 우주를 깊이 들여다 보는 것 같다. 그러고 나서 하나의 별이 저 멀리 내적인 공간 속에 나타난다. 그 별의 주위에는 장밋빛 색조가 드리워져 있다. 일단 내적인 차원 터널이 현현하면 그것은 눈을 감으나 뜨나 눈앞에 계속 남아 있다.

  그것이 완전히 현현하면 깊은 집중 상태에서 무지개 빛 터널 속으로 움직여 들어가 볼 수 있다. 이것의 목적은 우리의 혼을 해방하여 무지개 빛 통로를 따라 그리스도, 스스로 있는 자에게로 가는 것이다. 황금빛 링을 통과한다는 것은 사실상 내적인 차원 상에서 우리 자신의 가슴 센터를 통과하는 것이다. 황금빛 터널은 점차 넓어지면서 밝은 녹색으로 변하고 다음에는 푸른 빛으로, 마지막에는 보라색과 장미색으로 변한다. 아데프트가 천상의 성소로 다가가면 그 작은 별은 이글거리는 대 중앙 태양, 그리스도의 몸, 모든 이미지들의 투사자가 된다.

  내적인 우주 왕국을 통과한 자는 이제 대 중앙 태양, 천상 왕국의 위대한 센터로 여행할 기회를 갖게 된다. 만일 터널의 끝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을 꿰뚫는데 성공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 의식을 얻게 되고 그리스도의 몸과 연결되게 된다. 그리고 이 성취를 넘어서면 거기에 사랑과 기쁨, 평화로 맥동치는 영원한 무시無時의 근원적 바다를 품고 있는 비현현의 영 어머니-아버지, 스스로 있는 자I AM THAT I AM, 우주의식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스도의 몸 속에서 탄생한 천상의 천사들은 우리를 데리고 위대한 센터, 천상의 왕국으로 여행한다. 거기에서 인간의 에고 중심적인 자아의식은 불사의 천사들과 연결되어 그리스도 의식 속으로 들어간다.

  그 궁극적 목표는 깊은 헌신과 명상, 그리고 신과 인류에 대한 봉사를 통하여 성취될 수 있다.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에게 이를 자가 없다."고 한 예수 그리스도의 말처럼. 여기서 그리스도는 빛의 최초 창조, 모든 이미지들의 투사자, 창조자이다. 그리스도, 아들, 투사자는 확장해가는 창조의 천체에 이르는 유일한 문이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 말은 머리 위에 있는 왕관 차크라 센터의 열림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광대한 내적 공간에 대한 탐구를 통해서 신성한 영 어머니-아버지, 스스로 있는 자의 영원한 거소에 이르는 우주의 문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이제 최선을 다해서 대 중앙 태양의 위대한 센터를 향한 나의 첫 여행과 귀환 과정을 묘사해 보려고 한다. 이 상태에서 모든 호흡이 그치고 심장의 박동이 멈추었다. 육체는 불사의 천사들의 힘으로 시공 속에 매달린 채 새로이 세례를 받고 이제 그리스도 의식을 지니게 된 거듭난 인간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다. 자유를 향한 여행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육체의 구속을 초월하여 그리스도의 빛, 영원한 근원적 대양, 우주 의식 속으로의 여행이다.

  금요일 밤 나는 기대감 속에 새벽이 동터오길 기다리며 짧은 명상을 마쳤다. 나는 조용히 기도했다. "주여, 당신의 뜻이라면 내가 나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소서. 이곳에서 나는 이방인입니다. 내게는 얘기할 사람도 없고 나를 이해해줄 사람도 없습니다. 당신의 뜻이라면 내게 힘을 주시어 앞으로 계속 여행해 갈 수 있도록 해주소서.“

  요가난다는 우리에게 나침반을 사용하여 우리가 어디에 있든 얼굴을 항상 동쪽 방향을 향한 채 명상하도록 했다. 우리는 또한 지구의 자류가 남쪽에서 북쪽,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른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러므로 잠을 잘 때 머리는 동쪽이나 남쪽으로 두어야 한다. 그것은 자류의 압력으로 몸의 하부에 있는 독소들이 머리 쪽으로 밀려오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요가난다는 머리를 북쪽에 둔 채 자서는 안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그에 말에 의하면 북쪽은 진보된 혼들이 최종적인 임종 시, 육체를 떠나기로 결심할 때 사용되는 방위라고 한다.

  나는 명상할 때 항상 얼굴을 동쪽 방향으로 향하게 한다. 나는 침대 머리맡에 베개를 놓고 전통적인 연화좌 자세로 앉았다. 혀는 위로 말아올려 케차리 무드라를 하고 빛의 순환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나는 앉자마자 섬세한 조율이 이루어지는 걸 감지했다. 그리고 즉시 내면의 차원 터널이 너울거리는 걸 느꼈다. 오늘 나의 목표는 완벽한 집중 상태에서 108번의 빛 순환을 성취하는 것이다.

  나는 108 염주를 가지고 한 번 호흡할 때마다 하나 씩 손으로 돌렸다. 나는 완벽한 순환을 수행하고 있었다. 매번 호흡할 때마다 무지개 빛이 나의 내적 환영에 나타났다. 최종 목표에 가까워 오면서 나는 모든 시간 감각을 상실했다. 108번의 순환에 거의 이르고 있을 때였다. 나는 다시 그 놀라운 존재가 나의 왼편으로부터 내게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오 어머니 신성이여, 당신이 돌아오셨군요."

  신성의 응답에 나는 더욱 고요해졌다. 나는 명상을 계속했다. 이제 앞으로 다섯 번만 더 하면 목표에 이르게 된다. 나는 스피리추얼계에서 뭔가 두려운 일이 내게 발생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의 믿음에 대한 테스트일까?

  나의 밑에서 엄청나고 강렬한 에너지가 생성되어 올라오고 있다. 신성한 어머니의 이미지가 다시 나의 왼쪽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녀는 지구의 중심으로 향하듯 아래로 움직이고 있다. 그녀가 팔을 위로 굽어 올리자 저 깊은 밑에서부터 불꽃이 이글거리며 솟구쳐 올라 내 주위를 삼킨다. 화염과 에너지의 힘이 내 척추 끝에 집중된다. 그것들이 내 몸을 관통하며 박동하는 나의 심장을 향해 올라오고 있다. 말씀 하소서, 어머니. 저는 불꽃을 통해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당신은 들어올린 팔로 저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당신의 아들을 받아 주소서, 나의 주여! 신성한 어머니가 나를 아버지께로 인도 하고 있다. 어머니가 자신의 아들을 건네는 것처럼.

  나의 척추가 빳빳해지고 있다. 머리가 불가항력적인 힘에 의해 어깨 뒤로 젖혀진다. 호흡이 폐로부터 추방된다. 나는 숨을 쉴 수 없다. 그 일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 이제 불꽃들이 훨씬 더 높이 솟구치고 있다.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직 조복할 뿐이다. 나는 그분의 에너지에 붙잡혀 있다. 나는 나의 통제를 벗어나 있다. 나의 머리가 이제는 가능한 뒤로 힘껏 젖혀져 있다. 나는 바로 위를 쳐다보고 있다.

  내 앞에 다시 그 거대한 광휘를 발하는 구가 있다. 그것이 나를 향해 바로 돌진해 오고 있다! 예의 그 놀라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목소리는 마치 내부와 외부 모든 곳으로부터 오는 듯 하다. "나의 아들아, 오늘 죽어서 나와 함께 갈 준비가 돼 있는가?"

  나는 대답해야만 한다. 얼마나 많은 욕망들이 나를 가로막는가? 세속적인 것들에 나는 얼마나 많이 집착하고 있는가? 그렇다. 나는 주저함 없이 곧바로 말할 수 있다. 나의 상념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들이 나를 향해 크게 외친다. "예, 아버지, 저는 죽어서 당신과 떠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직 당신만을 원할 뿐! 오직 당신뿐!" 이 밑으로부터 올라온 빛나는 불꽃들, 그것들은 어머니의 힘을 상징한다. 그것은 나를 관통해 찬란한 백광, 그리스도의 얼굴과 몸, 스스로 있는 자를 향해 올라간다!

  오, 아버지 저의 대답에 만족하십니까? 저의 대답이 옳은 것입니까? 나는 망설임이 없었다. 내면에서 어떤 두려움도 일지 않았다. 나는 죽을 것이다. 그리고 시공 속에서, 모든 창조 속에서 그 어떤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그와 함께 갈 것이다. 저 아른아른 빛나는, 맥동치는 구가 내 주위에서 폭발해 형언할 수 없는 광휘를 내뿜고 있다. 나는 이 놀라운 빛 속에서 회전하며 돌고 있다! 이 광휘 속에서 나는 밑에서부터 위로 소용돌이치며 올라가고 있는 불꽃들과 충돌한다. 두 힘은 이제 나의 고동치는 심장 센터 속에서 합쳐진다. 나는 이 거대한 합일과 불길의 한가운데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다.

  이 거대한 힘들이 흩어지기 시작하고 있다. 그 힘들이 위로 움직이고 있다. 더 이상 화염도 밝은 빛도 없다. 오로지 나의 심장의 박동만 있을 뿐. 나는 그 중심에 매달려 있다. 나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작다. 나의 생명, 나의 심장이 죽어가고 있다. 그것이 서서히 느려지며 최후의 박동을 한다. 그렇다. 나의 호흡이 그것을 떠났다. 오, 아주 오래 전에. 나는 죽음을 체험하고 있다. 진정한 죽음을! 오, 나의 아버지, 당신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나는 의식의 구球일 뿐이다. 내게는 더 이상 몸이 없다. 그러나 어떻든 나는 아직 내 자신이다. 너무도 생생히 살아있다. 놀랍도록 생생히! 나는 육체를 잃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나는 두렵지 않다. 나의 상념들은 아직 나의 것이다. 그것들이 공간 속에서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고 있다. 나는 이제 뒤를 볼 수 있다. 나는 생겨난 모든 것들을 완전히 의식할 수 있다. 그렇다. 나의 심장의 마지막 박동과 함께 이제 나는 나의 육신이 실제로 뒤에 버려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나는 이제 구처럼 확장하고 있다. 무서운 속도로 모든 방향을 향해 외부로 움직이고 있다. 나는 모든 장소들의 극미소점에서 내적으로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장소들의 극대점에서 외적으로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오, 맑고, 고요한 빛, 당신은 나로부터 모든 방향에서 외부로 퍼져 있습니다.

  거기에는 지평선도, 태양빛도 없다. 그러나 여전히 모든 것이 보인다. 이 의식의 구는 나다. 나는 여전히 계속 확장해 가고 있다. 이제 갑자기 내 주위로 빛이 나타난다. 그렇다. 창조의 빛들이 넘실댄다. ‘오, 아버지-어머니, 당신의 이미지들이 여기 내 안에서 떠다니고 있습니다. 태양계들, 은하계들, 우주들이.’

  나는 그것들 안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내 안에 존재한다. 황홀경의 파도 위에 파도를 만들어내며 우주의 대양의 포효가, 엄청난 진동들이 나를 통해 울려 퍼진다! 그러나 참으로 이상하게도 나는 아직도 홀로이다. 상념체들의 장벽들, 빛과 소리의 이미지들이 나를 내리 누른다.

  갑자기 모든 소리와 빛들이 사라진다. 나는 환희의 바다 속으로 녹아들어가고 있다. 환희, 형언할 수 없는 환희! 그렇다. 사랑, 사랑이 여기에 있다. 당신은 항상 새로우며 사랑의 모든 꿈들을 넘어서 있다. 당신은 끊임없이 파도치며 무한한 우주의 대양 위에서 모든 방향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나는 홀로 있다. 이 영원한 바다 속에서. 그렇다. 나는 여전히 밖으로 움직이고 있다. 항상 새로운 사랑과 기쁨의 이 구 속에서 팽창하며.

  황홀경이 나를 따른다! 황홀경이 나를 관통해 움직인다! 나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의 한계를 넘어 신을 느낀다. 나는 이제 무한하다. 형상도 빛도 소리도 없다. 그러나 여전히 나의 기억, 그것이 나와 함께 지속되고 계속된다.

  갑자기 나의 팽창이 그친다. 나는 홀로다. 나는 그. 스스로 있는 자I AM THAT I AM. 스스로 있는 자는 나. 나와 나의 아버지는 하나! 그러나 이제 나는 존재를 느낀다. 그것은 내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전율, 이제 영원한 우주의 대양 안에서 힘의 에너지 장이 나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목소리, 아버지의 목소리가 다시 말하고 있다. 그것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나의 목소리이면서 나의 목소리가 아니다. "아들아, 나의 아들아, 이제 네가 보았구나, 이제 나는 너를 돌려보내야만 한다."

  나는 모든 아버지들의 아버지, 모든 어머니들의 어머니, 스스로 있는 자, 보이지 않는 비현현의 존재 속에 있다. 이제 내 안에서 창조의 위대한 구의 이미지가 갑자기 나타난다. 그것은 생명과 의식의 무한한 대양 위를 무지개빛 거품처럼 떠다니고 있다. 나는 그 생명과 의식의 한 부분이다.

  나는 이제 점점 더 작아지고 있다. 내가 팽창할 때처럼 엄청난 속도로 내부를 향해 내려 앉고 있다. 모든 창조의 맥동하는 ‘훔’이 나의 의식 속에 거한다. 부유하는 우주들이 나의 환영의 구 속에 나타난다. 그것들의 희미한 빛들이 별들의 무리처럼 보인다. 모든 것이 나이고 나는 모든 것이다. 나는 나의 아버지와 하나이다. 나는 나의 어머니와 하나이다. 창조의 신성한 드라마가 궁극적인 종국을 향해 굴러간다. 신성, 스스로 있는 자(I AM THAT I AM)가 이미지들의 창조 속에 존재하기를 그치는 종국을 향해.

  나는 육체로 돌아오고 있다. 내가 위대한 창조의 팽창하는 구의 안팎에 존재하는 아버지의 살아있는 현존을 드러내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다. 나의 귀환은 나의 미션과 내가 따라야할 길을 현시한다. 마음이 생산해 낸 이미지들의 숲을 통해. 그것이 내 앞에 늘어서 있다. 크기가 작아지는 동안 은하계의 휘황한 색깔들이, 낯익은 별자리들이, 그리고 이제 지구가 속한 태양계가 눈에 들어온다. 내 앞에 밝은 청색의 구, 어머니 지구가 보인다.

  이제 오랫동안 알아온 익숙한 영들의 에너지가 나를 감싸고 있다. 아래로 백광의 소용돌이가 은빛 원형 계단처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빙빙 회전하며 내려가고 있다. 이제 나는 아래 보이는 지구를 향해 어머니의 힘의 중심 안으로 내려가고 있다.

  오, 우주 속을 떠다니는 정원 같은 아름다운 어머니 지구의 빛이여. 대양, 계곡, 산맥, 익숙한 캘리포니아 해안, 집 지붕들, 그리고 나의 몸. 내가 영원을 향해 떠났던 그 순간처럼 나의 몸이 여전히 앉아 있다. 내가 아무런 감각 없이 그 속으로 미끌어져 들어가고 있다. 오, 육신, 다시 시작된 구속이여.

  이제 나의 심장이 다시 박동하는 게 느껴진다. 폐가 움직여 생명의 공기를 받아들인다. 마치 꿈 속인듯 눈을 떠보니 환한 방 안이다. 나의 몸은 처음 명상을 시작했을 때의 침대 머리맡에 있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연화좌 자세인 채로 침대의 다른 쪽 모서리에 앉아 있었다. 북쪽 벽을 바라보고 있는 상태로. 나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것은 아무런 느낌도 감각도 없었다.

  방안의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책상 위에 시계가 보였다. 오후 1시 반이었다. 7시간이 지나있었다. 나는 이 7시간 동안 몸을 떠나 있었다. 그 시간이 내게는 영원처럼 느껴졌다. 그렇다. 영원이 나의 의식을 뚫고 지나갔던 것이다. 나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이미지들의 장벽을 넘어서 있었다. 나는 신성한 의식 안에서 팽창하는 거대한 창조의 천체를 보았다.

  모든 창조는 신성한 어머니 아버지의 가시可視적인 상념체들에 불과하다. 그렇다. 신성은 영원 속에 생생히, 놀랍도록 생생히 존재하는 모든 것을 채우며 그리고 만물의 외부에 머물고 있다. 스스로 있는 자(I AM THAT I AM)의 얼굴은 처음이자 유일한 독생자 그리스도의 몸의 신성한 방사 속에서 빛난다. '스스로 있는 자'는 창조의 빛, 모든 인간들의 빛, 주님들 중의 주님, 알파와 오메가, 시작과 끝이다. 모든 남자와 여자들은 그리스도화 될 수 있다. 인간은 동일한 빛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나는 고요히 앉았다. 혈액이 다시 순환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1시간 후 나는 팔을 움직일 수 있었다. 나는 다리를 문질렀다. 이 체험이 정신과 육체에 가져다 준 쇼크와 충격은 이후 내 삶에 영속적으로 남게 되었다. 어머니 신성으로부터 온 생명의 숨결은 아직도 내 머리 위로 쏟아지고 있다.

  10년간의 지속적인 명상도 그 체험의 커다란 충격을 말로 표현할 수 있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 놀라운 체험을 명징한 단어로 자세히 설명할 수 있기까지는 무려 28년이 흘렀다. 사람들을 영혼의 본향으로 인도하는 것, 이것이 나의 미션이다. 영혼의 본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누구나 성취할 수 있다. 지금은 바로 그러한 영적인 조우를 이루어야할 시간이다.

  모세가 신을 대면하였듯이 나도 그렇게 했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신성한 영 어머니-아버지, 스스로 있는 자(I AM THAT I AM)가 나를 육체 속으로 다시 돌려 보낸 것은 그러한 조우를 세상에 알리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스승 요가난다로부터 전수받은 크리야 요가는 스스로 있는 자(I AM THAT I AM)와의 합일에 대한 마하바타르 바바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 그리고 요가난다와 천사들의 축복에 의해 풍성해지고 있다.

  원래 수 천 년 전에 계발된 이 명상법은 오늘날 그것을 받으려는 자들을 위해 존재한다. 크리야 요가는 이 영적인 비행을 가능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내적인 우주, 위대한 센터, 신성한 원천을 향한 나의 여행과 귀환은 대 중앙 태양, 천상의 왕국, 그리스도의 몸을 향한 빌더(건설자)들의 여행 코스를 나타낸다. 오, 그리스도여, 이 모든 놀라운 기적이여! 이곳 지상과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들을 돌보는 당신의 사랑, 당신의 현존이여!
 
출처 : http://blog.naver.com/PostList.nhn?blogId=eyeinhand&categoryNo=10

Posted by 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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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1년 11월 초, 나는 산타 바바라에 도착했다. 와싱턴 산과 파라마한사 요가난다를 떠나는 것은 내게 있어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홀로서기를 했고 일자리를 찾아야만 했다. 나는 며칠 동안 아버지와 도로시를 찾아뵈었다. 얘기를 나누는 도중에 아버지는 가족의 오랜 친구 중 한 사람인 조 도미니에 대해 언급했다.

  "조는 산타 바바라의 전화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 얘야, 그를 한 번 만나보렴." 마음이 동했다. 전신주에 올라 일하는 가설공 직업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아버지가 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조가 대답했다. "그를 바로 보내, 찰리. 일거리를 줄 수 있을 거야."

  조는 나를 세심하게 도와주었다. 나는 지원서 양식을 작성하였고, 3일 후 일자리를 얻게 되었다. 나는 대형 트럭을 타고 건설 인부들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처음 몇 달 동안 내가 한 일은 가설공들의 뒤치다꺼리였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비로소 나도 전신주에 실제로 올라 본격적으로 가설 일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당시의 그 전화 회사 일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그런데 처음에 내가 겪은 가장 큰 문제들 중 하나는 요가난다와의 삶에 대해 너무 많이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요가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신에 대해 말하는 걸 듣기 원치 않았다. 나는 열정에 사로잡혀 모든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버나드가 옳았다. 나는 풋내기였던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나의 이야기를 듣기 원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 반대였다. 그들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나는 곧 괴짜로 여겨지게 되었다. "노먼은 항상 저 미친 요기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니까." 마침내 나는 결국 영적인 차원의 얘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고독만이 나의 벗이 되었다. 어느 일요일 밤, 도시 북쪽에 위치한 나의 작은 셋방에 돌아왔을 때 나의 마음 속에 심각한 회의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내가 계속 해나갈 수 있을까? 내가 와싱턴 산을 너무 일찍 떠나온 게 아닐까? 비젼vision이니 미션이니 하는 것들이 이제 달나라처럼 멀게 느껴졌다. 내가 과연 여기에 온 목적을 성취할 수 있을까? 그날 밤 나는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회의감이 나의 결심을 갉아먹고 있었다.

  토요일 아침이 되자 나는 우울해졌다. 정말이지 와싱턴 산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나는 어떻게든 명상을 해보려고 앉았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절망감에 사로잡힌 나는 침대 위에 털썩 드러누웠다. 바닥을 보며 엎어진 상태로 나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신성한 영이여, 저는 어찌 해야 합니까?"

 

  잠시 후 갑자기 휘황찬란한 광휘를 발하는 태양이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더욱 커지고 밝아졌다. 신성한 존재가 그것으로부터 발산돼 나왔다. 숨이 턱 막혔다. 나는 얼굴을 바닥을 향한 채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뒤통수를 통해 그 초월적인 이미지가 보였다. 거기에 지붕은 사라지고 없었다. 오로지 아름다운 푸른 하늘과 맥동치는 이 거대한 빛의 구球만이 나를 향해 충돌할 듯 곧바로 돌진해 왔다.

  그 광휘로부터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봐라!" 그 소리는 천상 위로 크게 메아리치고 있었다. 전에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였다.

  그렇다. 오, 나는 권능의 영을 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바로 그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 광휘는 동쪽을 향하더니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저 멀리서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처음 나는 평화를 가지고 왔다. 그러나 만일 인류가 나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나는 불을 가지고 올 것이다."

  환영이 바뀌기 시작했다. 찬란히 빛나는 주홍색 구가 광대한 우주의 심연으로부터 서서히 지구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저것은 다른 별인가?

  나의 의식이 몸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엎드려 누운 상태였다. 일어나 앉아야지!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모든 것이 투명하게 보였다. 심지어 나의 몸조차도! 내 자신의 존재는 그 자체로 의심덩어리였다. 나의 환영은 모든 것을 투과하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보는 모든 것들의 내부를 비추고 있는 듯이 보였다.

  나는 이제까지 살면서 그런 환영을 일찍이 본 적도 상상한 적도 없었다. 그것은 그리스도였고, 모세가 만난 ‘스스로 있는 자’였다! 백열처럼 빛나는 그 찬란한 광선이 내 몸의 모든 세포들을 건드렸다. 내 머리의 내부가 작은 별들의 바다로 충만했다. 눈을 감은 상태에서도 모든 것을 꿰뚫는 저 광선들이 여전히 보였다. 모든 아버지들 중의 아버지가 나의 기도에 응답한 것이다. 나는 다마스커스의 길 위에서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스도를 본 것이다. 그렇다. 그는 인간적인 환영을 초월해 존재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태양처럼 빛나고 있었다.

  다음 주 내내 나는 거의 일을 할 수 없었다. 나의 환영과 나의 마음이 모든 것들을 관통한 듯이 느껴졌다. 물질적인 일에 나의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 어려웠다. 신성한 어머니-아버지가 처음으로 마음에 흡족해 한 것은 그들이 낳은 그리스도, 신성한 빛이다. 고대 황금 시대에 숭배되었던 날개 달린 태양 원반은 그리스도의 몸, 빛의 최초 창조물, 대 중앙 태양, 신성한 태양 로고스를 묘사한 것이다. 그 날개는 그리스도의 영이 모든 곳에 편재한 의식이고 창조의 모든 차원을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우리가 우주에서 보는 물질 태양과 별들은 일정한 궤도와 위치를 벗어나지 못한다. 밤에 하늘을 바라보면 우리는 모든 곳에서 태양(별)들의 무한한 대양을 마주하게 된다. 그 태양들은 신성한 영이 보시고 가장 좋아했던 이미지이다. 그것들은 자신의 둘레를 도는 혹성들의 무대에 빛을 던져준다.

  신의 영은 음과 양 두 개의 본성을 지니고 있다. 창조를 넘어서 있는 신성한 영 어머니-아버지는 그리스도 즉 빛을 낳았다. 창조의 첫 번째 빛인 그리스도는 양성일체의 존재로서, 천사들, 신의 아들과 딸들을 낳았다. 천사들은 대 중앙 태양, 그리스도의 몸 속에서 빛의 구체로 창조되었다. 천사들은 확장돼 가는 창조의 천체들 속으로 들어와 인간의 아들과 딸들, 즉 단순하고 자기 의식적인 존재들에게 멘탈적 이미지들을 가져다 주었다.

  천사들은 광물, 식물, 동물, 그리고 인간들의 진화를 돌보도록 운명지어졌다. 천사들은 궁극적인 진화 과정에서 물질적 형상 속에 거하게 된다. 이 진화를 통해 휴먼 앤젤, 빌더(건설자), 인간의 형상을 입은 신의 아들과 딸들이 탄생하게 된다. 휴먼 앤젤의 창조로 인간 형상 속에 신성한 의식이 깃들게 된다. 이 궁극적 진화, 즉 창조된 많은 세계들 위에 그리스도 의식을 지닌 인간들이 탄생하는 것이 바로 인류의 황금시대인 것이다.

  어머니 자연은 물질 혹성들을 형성하는 원소들의 둥지를 준비하고 돌본다. 세계는 인간들이 진화하고 성장하는 무대이다. 인간을 의미하는 '휴먼human'이라는 단어의 휴hu는 동물, 먼man은 천사를 뜻한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은 이 최종 진화 속에서 동물이자 천사이다.

  진화하는 인간 육체 속에 들어와 그것을 불멸화 시키는 것은 그리스도 천사들의 신성한 의무이다. 이 궁극적 진화는 그리스도화 된 인간들을 창조한다. 이 최종 상태에서 신성한 영 어머니-아버지는 인간의 육체 속에서 완전히 의식적이 된다. 신성한 영은 이제 물질 형상 속에서 춤을 추며 창조를 내외적으로 완벽하게 향유하게 된다. 환희! 환희! 모든 것이 환희이다!

  1951년 크리스마스는 내게 아무런 사건도 없이 평온하게 지나갔다. 나는 전화 회사에서 계속 바쁘게 일했다. 아침저녁으로 하는 명상도 매일 계속되었다. 나는 여가가 있을 때마다 산타 바바라의 요트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거기서 보트를 빌려 타면서 나는 항해에 대한 나의 꿈을 이루어가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24피트짜리 슬루프 한 척이 있었다. 나는 혼자 그것을 타고 해변으로부터 수마일 씩 여행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나는 바다를 사랑했다. 배를 타지 않을 때면 나는 수영을 하거나 파도타기를 즐겼다.

  전화 회사에서 나와 같이 일하는 존 고든이 산타 바바라에 체육관을 열기로 결심했다. 그는 공수도 검은 띠 소유자였다. 그는 적절한 장소를 찾았다. 나는 그가 체육관을 설립하는 걸 도와주었다. 우리는 샤워시설과 탈의실, 웨이트 운동을 위한 방 등을 설치했다. 건물 뒤편에는 유도와 공수도 연습을 위한 매트들을 깔았다. 작업을 마치자 체육관이 그럴듯하게 보였다. 나는 운동하기를 좋아했다. 나는 일주일에 3일은 밤에 거기에 가서 웨이트 운동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유도와 공수도도 하면서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은 우정을 쌓았다.

  당시 산타 바바라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리조트 타운이었다. 내가 여행한 모든 곳들 중에서 이곳보다 나은 기후를 지닌 곳은 보지 못했다. 캘리포니아 남부 해안에 위치한 산타 바바라는 거의 일년 내내 대양 위로 일출과 일몰의 장관을 볼 수 있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곳이었다. 해안으로부터 25마일가량 떨어져 있는 네 개의 섬들은 낚시와 보트 정박을 위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1952년 1월이 거의 다 지나가고 있었다. 1월 27일인가 28일 토요일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났다. 그날 오후 항해를 하기로 계획했었기 때문이다. 아침 식사를 하기 전에 나는 앉아서 명상을 했다. 명상이 시작되자 나의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신성한 영 어머니-아버지를 향한 강렬한 사랑의 감정이 흐르기 시작했다. 일전의 그리스도에 대한 환영이 나의 헌신과 집중을 크게 강화시켰다. 그날 나의 집중력의 강도는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았다. 영안(즉, 내적 차원 터널)의 빛이 밝은 색상으로 불타올랐다. 무지개 빛이 내적인 공간의 대기를 꿰뚫고 있었다.

 

  갑자기 나는 나를 향해 위로부터 움직여 오는 놀라운 존재를 느꼈다. 내 의식의 깊은 내면으로부터 에너지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이번에 그것은 내 가슴 속에 있는 듯이 느껴졌다.

  나의 에고, 나의 인성이 아닌 나의 순수자아가 직접 그 존재에게 말했다.

  “오 어머니, 나는 이번에도 역시 당신을 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아들아, 나는 항상 너의 곁에 있다.”

  “나는 당신의 신성한 형체가 나의 왼편에서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당신은 바로 내 앞에 멈추어 서 계십니다. 나는 당신의 흠 없는 존재의 에센스를 느낍니다. 전에는 결코 느껴 본 적이 없는 특별한 사랑과 엑스타시의 파장입니다.

  나의 폐는 붕괴되었습니다. 당신은 풀무처럼 그것을 텅 비웠습니다. 모든 공기 입자들이 제거되었습니다. 나는 이제 무호흡의 상태에 있습니다. 나는 숨을 쉴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당신과 함께 살아있습니다. 너무도 생생하게! 오 어머니, 나는 깊은 명상 속에서 느껴진다는 호흡도 죽음도 없는 황홀경에 대한 말을 들어왔습니다. 지금 나는 처음으로 그것을 경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신의 빛나는 형체가 내면의 공간 속에서 내 앞을 선회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진정 당신입니다, 어머니. 그것은 진정으로 당신입니다. 그것은 요가난다가 묘사한 바로 그 존재입니다. 상상을 초월한 존재. 그러나 당신은 여기 내 앞에 있습니다. 당신의 머리카락은 오팔 빛 광선처럼 영원 속으로 흘러갑니다. 나의 폐는 숨을 쉬려고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숨을 쉴 수 없습니다.

  나는 느낍니다, 내가 죽어가고 있다고. 그러나 나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위로하는 소리의 진동이 나를 관통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당신은 다시 내게 말합니다. ‘나의 아들아, 나의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 입으로부터 생명의 숨결을 호흡하라.’

  저 빛, 저 이글거리는 불꽃같은 황금빛 링이 당신의 입술로 보입니다. 그 속을 들여다 보자 영원이 보입니다. 저 황금빛 터널로부터 부드럽고 시원한 미풍이 흘러나오는 것이 느껴집니다. 예, 저 우주 바다의 미풍이 황홀한 물결로 나의 얼굴을 애무하고 있습니다! 나의 몸이 이완됩니다. 더 이상 숨을 쉬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오 어머니, 나는 지금 숨을 쉴 필요 없이 이 몸속에서 살아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무호흡의 경지, 죽음이 없는 황홀경의 경지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생명의 숨결 그 자체를 호흡하면서 죽음의 베일을 초월하여 존재하고 있습니다. 나는 불사의 포옹 속에 있습니다. 이것은 과거와 미래를 초월한 영원한 현재입니다. 나는 불사입니다. 나는 이제 그것을 압니다. 나는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육체로 결정화結晶化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나는 나의 영 속에서 다시 자유롭습니다!

  모든 어머니들의 어머니가 저기 내 앞에 서 있습니다. 저를 떠나지 마세요. 당신이 저를 곧 떠나려하는 것 같군요. 부디 저를 데려가 주세요!“

  그러자 이런 답이 들려왔다.

  “나의 아들아, 나는 7일 후에 돌아올 것이다.”

  그 소리와 함께 나는 다시 자아 의식적 에고 속으로 던져졌다. 호흡이 다시 돌아왔다. 시계를 보았다. 세 시간이 흘러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 속에서는 한 순간에 불과했다.

  "오 어머니 신성이시여, 당신은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당신을 드러내 보여주시다니. 이제 압니다, 당신이 내 곁에 정녕 같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당신이 당신의 모든 자식들을 돌보고 있다는 것을."

출처 : http://blog.naver.com/PostList.nhn?blogId=eyeinhand&categoryNo=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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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가난다의 차고 지붕을 수리하고 몇 가지 청소 작업을 마친 나는 사막의 은거지를 떠나왔다. 나는 트웬티나인 팜스 고속도로를 타고 와싱턴 산을 향해 돌아갔다. 와싱턴 산정의 수도원 문 안으로 들어온 나는 차를 주차시킨 뒤 내 방을 향해 걸어갔다.

  테니스 코트에 이르자 나는 멈춰 서서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석양이 지면서 등불들이 하나 둘 켜지고 있었다. 그렇다. 로스앤젤레스는 야경이 훨씬 더 나아 보인다. 나는 잔디밭에 앉아 명상을 했다.

  와싱턴 산을 떠나는 것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확신이 생겼다. 내가 체험한 환영들은 사실이었다. 지금 문제는 언제 어떻게 떠나느냐 하는 것이었다. 나는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기로 마음 먹었다. 내게는 인디아 하우스에서 해야 할 작업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보도도 깔아야 했고 계단도 설치해야 했다. 호수 사원에서의 작업도 계속되었다. 그래서 1951년 여름 내내 나는 바쁘게 지냈다.

  마스터 요가난다는 여름 기간 대부분을 사막 은거지에서 머물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의 가장 중요한 작업, 바가바드 기타 번역을 마쳐야만 해." 그리고 내게 작별 인사를 했다. 나에 대한 그의 직접적인 관심은 이제 끝났다.

  나는 아주 이따금씩 요가난다가 와싱턴 산으로 오갈 때만 그를 볼 수 있었다. 나의 길이 내 앞에 놓여 있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요가난다의 삶과 영적인 미션을 경험했다. 이제 나의 길이 저 멀리 지평 위로 뻗어있었다. 나의 길은 명상 속에서 미리 보았던 대로 가파른 산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내 앞에 믿을 수 없는 환경의 환영들이 솟아올랐다.

  나는 이 지구 위에서의 삶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철저히 경험하고 목격하게 될 터였다. 그렇게 되었을 때, 아니 그렇게 되었을 때에만 나는 타인들을 도와줄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만일 누군가를 치유하고 도와주려면 우리는 반드시 질병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나는 금욕적인 수사의 생활방식이 아니라 인간들과 함께 일하고 땀을 흘려야만 한다. 나는 알았다, 내가 인간의 일상적인 문제들과 더불어 살아야만 한다는 것을.

  나는 아무 의심 없이 천국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 나는 지옥과 그것을 창조한 부정적인 타락 영들의 실재를 체험하게 될 것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생이 시작된 바로 그 순간부터 지상에 존재하는 어둠의 영들에 대한 경고를 받아왔다. 사탄, 루시퍼, 바알세불, 그리고 그 밖의 파괴적인 악마들로 알려진 살아있는 엔터티들의 존재는 내게 있어 살아있는 실재가 되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나의 존재와 나의 미션의 완성을 위한 투쟁 속에서 그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또한 나는, 그들이 거주하는 지옥이라 불리는 아스트럴적이고 물질적인 세계들을 두 눈 똑 바로 뜨고 지켜보게 될 것이다.

  나는 과학적인 성과를 통해 물질적인 부를 추구하고 있는 현대인이 우주에 있는 초자연적인 존재들에 대한 선조들의 오랜 믿음을 간과하고 있는 걸 보아왔다. 그 초자연적인 존재들은 인간들과 다른 진동 차원 상에 있다. 인간의 물리적인 감각들은 특정한 진동 인식에 국한돼 있다. 따라서 오감에 포착되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차원의 존재들을 배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인간들이 시공에 존재하는 그들의 진정한 상태를 볼 수 있으려면 예수가 말했던 '하나의 눈', 즉 진정한 영적인 비젼vision을 가져야만 한다. 비젼vision과 불사의 체험을 얻은 사람은 선과 악의 힘들 사이에 벌어진 시공 속에서의 믿기지 않는 치열한 전쟁을 본다. 신의 아들들, 빌더(건설자)들과 어둠의 영들, 타락 천사 사이에 시작된 고대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소위 루시퍼의 타락이라는 것은 사실일까, 허구일까? 인간들은 자신들이 자유의지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일상적인 자유 의지란 존재하지 않는다. 줄에 매달린 꼭두각시처럼 인간들은 미지의 힘들의 조종에 따라 춤을 춘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유의지를 가지지 않다는 걸 알게 되고,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고 나의 왕국도 그러하니라." 이 말 속에서 예수는 다른 왕국 다른 존재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상태 하에서 우리는 적극적으로 탐구하지 않는 한 초자연적인 존재들을 인식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욕망 또는 과거의 행위들에 의해 빛과 어둠의 힘들을 끌어당긴다. 특정한 미션을 위해 화신한 혼들은 그 탄생의 순간부터 반대편 힘들에 둘러싸인다. 아데프트가 지상에 돌아오는 길 위에는 장애물들이 놓인다. 나는 어둠의 힘을 과소평가하지 않는 걸 아주 빨리 배웠다. 나는 매 순간마다 깨어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당신은 누군가를 만나자 마자 전생에 알고 있던 사람이라고 느껴본 적이 있는가? 파라마한사 요가난다와 그의 몇몇 제자들의 경우가 바로 그러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만났었다. 어쩌면 함께 일을 했을 수도, 가족의 구성원으로 살았을 수도, 또는 신성한 존재 속에서 하나의 위치를 공유했을 수도 있다. 어떤 놀라운 마법적 힘이, 또는 지난 시대의 어떤 연계적 사건들이 우리를 다시 현 시대에 함께 끌어 모았을까? 앞으로 죽음과 환생의 지평선 너머로부터 어떤 새로운 친구들이 나타나게 될까?


  1951년 2월 3일. 노먼 폴슨의 생일날 요가난다가 보낸 축하 메시지.

  "친애하는 노먼에게. 너의 탄생이 많은 이들에게 영적인 행복을 가져다 주기를. 너의 생일이 신 의식으로 충만하기를. 생일 축하한다. 끝없는 축복을 주며.  파라마한사 요가난다."

  깊은 명상 속에서 나는 신성한 태양 로고스를 보고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모든 여행자들이 돌아가는 미지의 영역이자 만물의 위대한 센터, 만물이 회전하는 궤도의 축이다. 고대인들은 이 장소를 대 중앙 태양의 센터라고 불렀다. 이것은 신성한 영 아버지-어머니가 창조의 최초 빛인 그리스도의 관념을 심고, 점화시키고, 탄생시킨 초점이다. 영의 생명력은 가시적으로 만들어졌다.

  까마득한 과거에 창조의 위대한 천체는 대 중앙 태양의 센터로부터 모든 방향을 향해 외부로 여행하기 시작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확장해 가고 있다.

  우리 내면의 그리스도 옥좌에 대해 명상하면서 끈기 있게 귀를 기울이면 우리는 과거와 미래의 포효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 우주적 자류가 만나는 곳에서 강력한 파괴자들이 보좌 위에 앉아 고동치고 있다. 모든 이미지들의 투사자, 그리스도의 빛은 이제 앞에 뚜렷이 드러나 영원의 고요한 빛 속에서 우리에게 현시된다.

  우리 인간들은, 헌신과 소망 그리고 입증된 명상 행법을 통해 이 생에서 그리스도 의식을 성취할 수 있다. 우리는 꾸준한 명상과 이타적인 봉사를 통해 시간을 멈춰 서게 할 수 있다. 바로 그때 우리는 확장해 가는 창조의 구들의 중심 속에 떠 있는 그리스도의 몸, 대 중앙 태양을 볼 수 있다.

  그때 그리스도의 빛나는 이미지를 인식할 수 있는 힘인 우리의 혼속에 내재된 순수 자아는 우리의 의식적 자각 앞에 그 현존을 드러낸다. 천사들은 백색의 불로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은 인간 속으로 내려오려고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하나의 살아있는 의식적 존재가 편재하는 창조의 구들 속에, 영원 저 너머에 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사랑과 인식에 대한 소망이 투철하다면 우리는 신과 직접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낙엽들이 와싱턴 산의 길과 도로를 덮고 있었다. 이곳의 모든 젊은 형제들과 나이든 몇몇 형제들 앞에 브라마차리야의 최종 수계식이 다가오고 있었다. 브라마차리야가 된다는 것은 이 생에서 결혼을 하지 않고 교단의 수사로서 독신 생활을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파라마한사 요가난다는 그 수계식에 모든 사람들이 참석하기를 원했다. 누가 최종 계를 받게 될 지는 사실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 자리에 서자 나는 앞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내가 본 환영들을 다시 반추해 보았다. 아니야, 나는 결혼하게 될 거야. 그리고 아마 아이들도 가지게 될 거고. 나는 서약을 할 수 없었다. 요가난다가 거기에 서 있었다. 모든 형제들이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눈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난 네가 머물렀으면 좋겠어. 하지만 네가 떠날 거라는 걸 알아."

  그 순간에 나는, 이곳의 모든 사람들이 이제 내가 곤란에 처하거나 사역을 그만두고 떠나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는 걸 알았다. 그날 이후 나는 이방인이 되었다. 계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느낄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을 바꿀 수는 없었다. 깊은 고독감이 느껴졌다.

  어느 일요일 날 나는 헐리우드 교회로 갔다. 버나드가 설교를 하고 있었다. 나는 복도에 앉아있었다. 명상을 하려 했지만 몹시 혼란스러웠다. 그 순간 누가 내 곁에 서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 말소리가 들려왔다. "노먼, 노먼, 니 애비다. 내 말 들리니? 집으로 와라. 만나자." 나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는 순간 깜짝 놀랐다. 그가 정말로 거기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눈을 뜨고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아버지가 자신의 의식을 내게 투사한 것이었다. 우리는 그만큼 가까웠다. 그가 나의 불행을 인식했던 것이다.

  설교가 끝나자 버나드와 대화를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나는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 나는 그에게 나의 기분을 설명하려고 애썼다. 그의 유일한 충고는 이것이었다. "오, 이런! 세상에 나가서 혼자 무얼 할 수 있겠어? 너는 아직 풋내기라고!"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내 자신과 나의 길에 대해 정말로 의심이 갔다. 그것은 모두 사실일까? 그래 나는 풋내기일지 몰라. 나는 앉아서 그 문제에 대해 명상했다.

  파라마한사 요가난다가 1920년 9월 이 나라에 도착했을 때 그는 과학적인 명상 행법들과 고대 요가의 수행법을 통한 자아실현의 메시지를 가지고 왔다. 그는 제자들에게 그리스도 의식 속으로 들어가는 길을 단계적으로 입증해 보여주었다. 그는 서구 세계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가르친 최초의 동양 요가 스승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실재 속으로 들어가는 보다 위대한 비젼vision을 가지고 도그마적인 기독교 신앙의 얼음을 깨부수고 있었다. 그는 결코 크리스천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버리도록 강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깊은 명상을 통해 그들의 신앙을 고취시킬 수 있도록 노력했다. 매해 열리는 크리스마스 명상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가르침을 기억하도록 하는데 바쳐졌다.

  우리는 이제 예수가 대중들 말고 제자들에게 은밀히 전한 가르침들에 대해 사색할 수 있다. 예수가 명상법을 직제자들에게 전했다는 것은 과연 사실일까? 그렇다. 신약은 초기 교부들에 의해 많은 부분이 버려졌다! 우리는 성경에 포함되지 않은 외경들과 여타의 기록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집트 개종자들에 의해 씌어진 영지주의 복음서들과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견된 설형 문자판들에 대한 해설서 등. 이 타블렛들은 성경에 씌어진 것과 비교해 창조에 대한 심오하고 혁명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유프라테스 계곡에서는 인류의 창조와 지구의 역사를 묘사하고 있는 수천의 타블렛들이 발견되었다. 성경의 일부는 그것들을 바탕으로 하여 씌어졌다. 만일 에세네파에 의해 씌어진 쿰란의 두루마리들을 연구한다면 우리는 '의로운 교사들'로 언급되는 존재들의 영감에 넘치는 가르침들을 통해 신성한 깨달음을 향한 점진적인 진보를 얻게 될 것이다. 이 에세네 공동체는 예수와 마찬가지로 사두개파와 바리새파의 도그마적인 태도에 의해 말살되었다.

  에세네파에 의해 운영된 성공적인 영적 공동체에 질투심을 느낀 그들은 그 교사인 예수를 죽일 음모를 꾸몄다. 그리고는 마침내 그가 체제를 전복하려 하고 있다고 당국을 꾀어 당시의 잔인한 처형법인 십자가형을 받게 하였다.

  하지만 무려 2천년이 지난 오늘날 상황은 진정으로 변하였을까? 과거의 사두개파와 바리새파는 오늘날 다른 가면을 쓰고 돌아왔다. 그들은 예전에 했던 것과 꼭 같이 무지하고 질투심에 사로잡혀 있고 심판 행위를 하고 있다. 오늘날 그들의 위치는 예수 시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분명 그리스도는 그러한 행위들을 묵과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성 교회를 포함하여 오늘날 누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을까? 예수는 과거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박해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의 마음 속에 한 작은 인도인의 모습이 보인다. 어깨로 아래로 길게 드리워진 머리카락을 하고 스와미 교단의 전통 오렌지 색 법복을 입은 그가 보스톤 항구에 정박한 대양 정기선에서 걸어 나오고 있다. 때는 1920년. 그것은 그의 첫 미국 여행이었다. 1920년 10월 6일 그는 인도 스와미 교단의 대표로 보스톤에서 열린 세계 종교 회의에서 연설을 하였다. 그 후 그는 이곳 미국에서 크리야 요가로 알려진 고대 명상법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의식을 발현시켜 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이곳에 온 후 20여년 동안 박해로 고통을 받아야만 했다.

  긴 머리에 오렌지 법의를 걸친 스와미는 대중들에게 긍정적인 혹은 부정적인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그가 발산하는 자력적인 독특한 인성은 사람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그가 전하는 역동적인 메시지는 많은 무리들을 매혹시켰다. 시간이 흐르고 그의 명성이 널리 퍼져가자 기성 종교계는 위협감을 느끼고 그를 적대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낯선 이방의 땅과 사람들 사이에서 확고히 홀로 서 있었다. 그의 불굴의 의지와 모든 것을 감싸는 사랑은 그를 사랑하건 미워하건 모든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역사가 입증해 주듯이 기성 세력은 새로운 것에 대해 대개 부정적이다. 두려움 때문이든 질투심 때문이든 천상의 메신저들은 시달림과 박해를 받다가 결국 죽임을 당하거나 스스로 지쳐서 천명을 다하기 전에 죽음을 선택하게 된다. 그러나 낯선 땅의 외로운 전사였던 파라마한사 요가난다는 자신의 미션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였다.

출처 : http://blog.naver.com/PostList.nhn?blogId=eyeinhand&categoryNo=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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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초에 다니엘 분이 내게 와서 수사 생활을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다. 아내와 자식을 가지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것이었다. 그는 더 이상 독신 수사로서 살고 싶은 마음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한 가정을 거느린 가장의 삶을 원했다. 외로운 수사의 삶에 따르는 고난과 시련이 그로선 참기가 너무도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의 삶이 걸어야 할 진정한 길, 즉 자신의 뜻이 아니라 신의 뜻에 따라 걷는 길을 보여 주는 절대적인 통찰력을 얻을 때까지 요가난다와 함께 계속 머물러야만 한다고 그를 설득했다.

  1950년 9월 말, 다니엘이 내 방을 찾아왔다.

  "노먼, 나 이제 떠나. 더 이상 머물 수 없어."

  "그 문제에 대해 파라마한사지와 얘기해 봤어?"

  "응. 2주 전에 여행 가방을 들고 정문 앞을 걸어 나오고 있었어. 그때 나는 소란을 피우지 말고 혼자 조용히 떠나는 게 좋겠다고 마음먹었었지. 그런데 마침 그 순간 그의 차가 회전하며 도로로 진입하더군. 차 전조등이 가방을 들고 서 있는 내 모습을 비추었어. 그 바람에 바로 거기서 그에게 붙잡혔지. 나는 파라마한사지를 따라 그의 방으로 올라갔어. 거기서 우리는 밤새 대화를 나누었어. 물론 그는 내가 떠나는 걸 원치 않았어. 결국 나는 2주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지. 음, 노먼, 그 2주가 다 되었어. 떠나야만 될 거 같아."

  나중에 들은 바로는, 그 이야기는 아주 극적이었다. 당시 요가난다는 트웬티나인 팜스 은거지에서 비서에게 일을 지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펄쩍 뛰며 외쳤다. "차를 빨리 밖으로 대! 와싱턴 산으로 가야만 해. 가능한 빨리 차를 몰아!"

  요가난다는 가능한 최고 속도로 달리라고 재촉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정문에서 분을 잡았던 것이다.

  분은 내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책과 물건들을 주었다.

  "그럼, 잘 있어."

  우리는 서로 잠시 동안 끌어안았다. 그러고 나서 그가 여행 가방을 들고 도로 아래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노먼, 편지로 소식 전할게."

  다니엘이 떠나고 없자 심한 고독감이 밀려왔다. 힘든 것은 당연했다. 그는 내가 정말 좋아하던 친구였다. 거기다 요가난다마저 언젠가 떠나버린다면,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부들부들 떨려왔다.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젊은 남자 제자들은 모두 징집 대상이었다. 와싱턴 산에 있던 청년들 중 일부는 신학생으로서 징집되지 않는 행운을 누렸다. 분은 와싱턴 산을 떠난 뒤 징집을 기다리지 않고 해군에 지원했다.

  이제 나는 신성한 영이 나로 하여금 해군에 억지로 스스로 입대하게 만든 이유를 이해하였다. 만일 내가 의무 복무기간을 마치지 않았다면, 행여나 내가 와싱턴 산을 떠날 결심을 할 경우 나 역시 강제 징집되었을 것이다. 존 윈십은 징집되어 텍사스의 후드 훈련 캠프로 갔다.

  분이 떠나가자 와싱턴 산이 허전하게 느껴졌다. 그 결핍감을 메우기는 어려웠다. 나는 도날드 월터스를 거의 보지 못했다. 요가난다는 분이 떠나가자 깊이 상심했다. 수년 후 나는, 진정으로 사랑하던 사람이 영적인 사역을 그만두고 떠날 때 요가난다가 체험했던 비통함을 절실히 알게 되었다.

  마침내 크리스마스 명상 시기가 다가왔다. 우리는 모두 거기서 요가난다를 친견할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9월 이후로 파라마한사지는 사막에 있었다. 그는 바가바드 기타의 번역을 마무리 지을 결심을 하고 있었다. 직관적으로 나는, 그가 몸을 벗기 전에 자신의 일을 마무리 지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가 육신을 떠난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가 스스로 내게 그렇게 될 거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크리스마스 날 뵙게 되었을 때 그에게는 어떤 질병의 징후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발산되는 진동은 영원의 심연 같았다. 나는 그가 영원 속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의 축복을 받기 위해 올라갔을 때 그가 말했다. "어떻게 지내나, 빅 보이? 꾸준해야만 해.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어."

  나는 그 말의 의미를 물어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은 그가 이제 육신을 떠날 시기가 가까워 오고 있다는 뜻일 지 몰랐다.

  나의 스승 속에서 깊은 슬픔이 느껴졌다. 요가난다는 엔시니타스에 있는 기혼 커플들 중 몇몇의 문제 때문에 세계 형제 공동체의 꿈이 실패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다니엘 분과 여러 형제 수사들을 잃게 된 터라 그의 상심은 더했다. 게다가 이곳에서 자신의 사역을 마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신성한 어머니(성모)께서 나를 데려가길 원해." 그가 한 무리의 제자들에게 말했다. "그 문제로 나는 신성한 어머니께 간구하고 있어."

  또 다른 무리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 빌려온 시간을 살고 있어. 신성한 어머니는 나를 언제든 데려갈 거야."

  그가 이곳저곳에서 자신의 죽음에 대한 암시들을 던졌지만 아무도 진진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무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것을 믿길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1951년 2월 내 생일 즈음에 나는, 머지않아 산타 바바라로 떠나야할 지 모른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요가난다는 내가 저술 작업을 하거나 강연을 하도록 시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그 일들을 위한 다른 형제자매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건축일이나 수리일을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하는 것으로 보였다.

  진 하우프트와 나는 자주 함께 일했다. 그는 무척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진은 명상하며 보내는 시간을, 금화를 은행에 맡기는 것처럼 생각했다. 그는 문자 그대로 하루에 적어도 대여섯 시간을 명상했다. 시간을 낼 수 있으면 그것보다 더 했다.

  "명상을 하면 할수록 나는 신으로부터 더 멀어지는 거 같아." 그가 슬프게 말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진은 이 문제로 요가난다와 상담했다. 요가난다로부터 그가 받은 대답은 이러했다.

  "주님의 축복에 의해서만 우리는 신과 만날 수 있어요."

  "그 말은 신이 선택한 사람들에게만 임재하신다는 뜻입니까?"

  그의 말에 요가난다가 대답했다.

  "중요한 것은 크리야 요가를 얼마나 많이 하느냐가 아니야. 정말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신을 얼마나 사랑하느냐는 거지. 그를 우리에게 끌어당기는 힘은 그에게 바치는 우리 가슴의 진실한 사랑이야."

  진은 혼란에 빠졌다. 진은, 만일 신이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임재한다면 아무리 몇 시간씩 명상을 해봤자 신을 볼 수 없을 지 모른다고 느꼈다.

  "이봐, 진." 내가 말했다. "명상은 밭을 가는 것과 같아. 우리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릴 준비를 해야 해. 신은 네가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분명 알고 있어. 스승님도 말씀하셨잖아, 주님은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온다고. 그러니 우리는 항상 준비해야만 해."

  진이 머리를 흔들었다. 그는 몇 년 동안 명상을 해봐도 우주 의식 속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내면에서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자 정말로 상심하였다. 진은 단념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잠시 동안 와싱턴 산을 떠나는 문제에 대해 얘기했다. 그리고 마침내 1952년 봄에 그는 떠났다.

  수도원에서의 삶은 우리에게 육체적인 안락도 교우도 거의 주지 않았다. 우리는 오랫동안 명상하고 기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고 나면 반드시 창조적인 어떤 일을 해야만 했다. 호수 사원이 완성되고 인디아 하우스가 개장되자 요가난다는 더 이상의 프로젝트를 시작하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저술 작업을 마치는 데만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1951년 3월 초순 어느 날 그가 나를 사막 은거지로 부른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내가 도착하자 그가 나를 맞았다.

  "차고에 새 지붕을 만들어야 할 거 같아서 널 여기로 불렀어. 하지만 사실 나는 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어. 이리와, 산책이나 같이 하지."

 

  우리 수사들이 길을 따라 설치한 철조망 울타리가 아직도 있었다. 동쪽 하늘에 보름달이 떠오르면 사막은 황금빛으로 빛나는 요정의 땅으로 변했고 하늘은 짙은 청자색으로 물들었다. 사막 저 멀리에는 조슈아 나무들이 저마다 녹색과 황금빛의 오라를 발산하고 있었다. 내 발밑의 사막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막의 모래 속에 있는 미세한 석영들이 금빛 안개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오, 이런!" 요가난다가 외쳤다. "이곳이 이토록 아름다운 곳일 줄이야. 이제까지 이걸 보지 못하다니." 이 무렵 그는 아직도 다리가 다 낫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내 오른 팔을 잡고 의지했다. 우리는 천천히 은거지 주위를 거닐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은 필요 없었다. 이제껏 경험해 본 것 중에서 가장 깊은 축복과 사랑 속에서 나의 생명력이 그의 것과 융합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에게 언제 떠날 것인지 묻고 싶었다. 내 생각을 읽었는 지 그가 큰 소리로 외쳤다.

  "곧, 아주 곧."

  나는 그가 내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에게 산타 바바라에 대해 묻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떠나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그가 대답했다. "아직 좀 더 기다려. 네가 해야만 할 일이 있어. 신성한 어머니는 지금 여기 너와 함께 있어."

  갑자기 나는 모든 머리카락이 곤두 서는 것처럼 느껴졌다. 대기는 황홀한 에너지로 충만해 있었다. 나는 우리가 함께 허공을 거니는 듯이 느껴졌다.

  "내게 약속해줘. 이 생에서 네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만일 쓰러지면 성공에 대한 더 큰 확신을 가지고 바로 일어서. 그렇게 할 수 있나?"

  "예, 선생님." 내가 대답했다. "약속하겠습니다."

  "좋아. 아주 좋아."

  내가 머지않아 SRF를 떠나리라는 사실을 그도 알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항상 산타 바바라에 센터가 있었으면 하고 바랬지."

  "예, 선생님." 내가 대답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 일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빨리 오지는 않을 거야."

  나는 세속에서 살아야만 할 운명이었다. 처음에는 친구도 거의 없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우리의 대화가 특별한 작별인사라는 걸 깨달았다. 그때 나의 가슴은 사랑과 헌신의 감정으로 벅차올라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잘 자, 빅 보이."

  "잘 주무세요, 선생님."

  나는 그가 영원 속을 들여다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출처 : http://blog.naver.com/PostList.nhn?blogId=eyeinhand&categoryNo=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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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8월 어느 날, 요가난다로부터의 메모가 내게 전달되었다.

  "3층으로 즉시 와. 긴히 할 얘기가 있어."

  나는 계단을 올라가 그의 방문을 노크했다.

  "나의 자이언트, 어떻게 지내나?"

  "잘 지냅니다, 선생님."

  "들어봐, 너한테 들려줄 놀라운 소식이 있어. 나는 인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어. 네가 나와 동행했으면 해."

  나는 그의 말에 쇼크를 받았다. 인도 여행이라니!

  "어때, 빅 보이? 가고 싶지 않아?"

  "물론 가고 싶죠, 선생님."

  "좋아, 이 일에 대해서는 아무한테도 얘기해서는 안 돼. 내가 네게 말할 때까지 비밀을 지켜야 돼." "예, 선생님."

  "좋아. 오늘 나가서 네 여권을 신청하고 와. 그리고 여기, 우리가 인도에서 머물 주소가 있어. 여권 서류 작성하는 데 이게 필요할 거야. 너는 SRF 성직자로서 여행하는 거야. 여권에 그걸 써야해."

  요가난다가 내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건 오늘 네가 가야할 곳의 거리 주소."

  그 날로 나는 모든 수속을 마칠 수 있었다. 여권은 1950년 8월 23일자로 발행되었다. 나는 며칠 후 우편으로 여권을 받았다. 일주일 후 와싱턴 산으로 차를 타고 오는 요가난다를 보았다. 그가 나를 곁으로 불러 말했다.

  "증기선 티켓을 구입했어. 짐은 꾸렸나? 여권은 갖고 있고?"

  "예, 선생님. 저는 준비가 되었습니다."

  "음, 좋아. 좋아."

  그가 대답했다.

  그 순간 나는 그의 입에서 새어나온 말의 진동을 감지했다. 그걸 해석하면 이랬다. ‘나는 인도에 갈 수 없을지도 몰라.’

 
                      엔시니타스 은거지에서의 요가난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밤 한 자매가 나를 불렀다. "파라마한사지께서 당신 보고 즉시 오라고 하십니다."

  내가 지하실에 도착해 보니 그가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빅 보이,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어."

  그가 말을 멈추더니 돌아섰다. 지하실에는 제자들이 가득했다. 요가난다가 들어오고 나갈 때는 대개 그랬다. 모든 사람들이 잠시라도 그를 보고 싶어 했다.

  요가난다가 거기에 있던 사람들에게 모두 지하실에서 나가달라고 부탁하고는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나는 많은 혼들의 카르마를 소진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어. 어떤 것은 육체적으로 갚아야만 해. 다리가 아파서 계단을 오를 수 없군. 3층까지 나를 데려다 주겠나?" "예, 선생님."

  그가 주위를 둘러보며 사람들이 모두 나갔는지 살폈다. 우리 둘 만 있다는 걸 확인한 그가 내 등에 업혔다. 나는 손으로 그의 다리를 안고 섰다.

  "문을 열어주세요, 선생님."

  엘리베이터 통로 주위로 계단이 있었고 각 층마다 문이 있었다. 요가난다의 몸무게는 내 어림으로 한 175파운드 정도 나가는 듯했다. 우리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3층에 이르자 나는 그를 바닥에 내렸다. 그는 몸 상태 때문에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를 부축해서 방으로 걸어갔다.

  "저기 계단들을 오르는데도 숨을 헐떡이지 않더군."

  "예, 저는 꽤 튼튼합니다."

  "좋아. 그렇게 건강을 유지해. 너는 이 생을 마칠 때까지 가능한 많은 힘을 필요로 할 거야."

  그러고 나서 그가 말했다.

  "잘 자."

  그리고 내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이 무렵 엔시니타스에서는 신선한 채소들이 자라고 있었다. 때때로 나는 차를 몰고 내려가 와싱턴 산에서 쓸 채소들을 한 차씩 싣고 돌아오곤 했다.

  한 번은 내가 엔시니타스에 도착하자 이런 전갈을 받았다. "이번에 잡지 기사에 낼 아사나 사진들을 찍는 데, 당신이 포즈 모델이 되길 파라마한사지께서 원하세요."

  다니엘 분, 빌 브라운, 조 카본을 비롯한 젊은 남자 제자들 몇몇이 이미 현장에 있었다. 사진사가 실내와 실외 잔디 위에서 우리들 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기사가 잘 나오기를 바랐다.

 

                            엔시니타스의 황금연화탑

  1950년, 당시 엔시니타스 공동체는 아름다웠다. 채소 농장들이 곳곳에 있었다. 건물 앞에 위치한 작은 레스토랑은 잘 운영되고 있었다. 요가난다가 생각해 낸 버섯 버거가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다. 엔시니타스에 황금연화탑이 완성되자 사람들은 큰 관심을 가졌다. 그 해 SRF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해 고속도로 변에 호텔이 개장되었다.

  엔시니타스 은거지의 주위 풍경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숨은 길들, 이국적인 열대 식물들, 금붕어가 떼 지어 노니는 백합 연못들. 은거지는 푸른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벼랑 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은거지와 벼랑 끝 사이에는 푸른 잔디가 빽빽이 자라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종종 방문자들을 위해 요가 자세와 행법 시범을 보이곤 했다.

  특히 한번은 유명한 힌두 뮤지션이자 라비 샹카르의 형인 우다이 샹카르를 위해 시범을 보인 적이 있다. 그 후에 우다이 샹카르는 우리를 위해 유명한 힌두 시타르를 연주해 주었다. 버나드와 나, 레오 칵스, 빌 브라운, 그리고 다른 두 명의 소년이 요가 시범을 보였는데 그 자리에는 아멜리타 갈리 커시, 에반스 웬츠를 비롯한 여러 방문자들이 요가난다와 함께 있었다.

  <티벳 요가와 비밀 교의>의 저자 에반스 웬츠는 요가난다의 친구였다. 인도와 티벳 일대를 여행하는 동안 에반스 웬츠는 요가난다의 스승인 스와미 스리 유크테스와르를 만났다. 그는 자신의 책에 인도 퓨리 아쉬람 앞에서 찍은 스리 유크테스와르의 사진을 게재했다.그의 책에는 스리 유크테스와르를 비롯한 다섯 명의 현인들이 근대 인도의 구루, 성자들로 묘사되고 있다.

  에반스 웬츠는 산 디에고의 남부에 살았는데 그곳은 캘리포니아-멕시코 경계가 내려다 보이는 높은 산맥에 자리하고 있다. 요가난다는 과거에 그의 집에 수차례 방문한 적이 있었다.

  엔시니타스에 머무는 동안 파라마한사지는 내가 은거지 도서관에서 몇 차례 잠을 잘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나는 그와 가까이 있기만 하면 늘 어떤 특별한 영적인 체험을 하곤 했다. 어느 날 밤, 나는 도서관 마루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휘황찬란한 황금 빛이 나를 감쌌다. 빛이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지 이해하려고 애쓰며 누워 있는 데 또 다른 섬광이 나타났다. 그것은 믿기 어려울 만큼 밝았다. 마치 번개 같았다. 그때 요가난다가 문 입구에 서 있었다.

  "빅 보이, 뭘하고 있지?"

  "음, 선생님, 빛나는 황금빛 섬광들을 보고 있습니다. 눈을 감으나 뜨나 빛이 보입니다."

  "좋아. '섬광이 당신의 얼굴에 빛나고 있습니다, 어머니. 당신을 보며 저는 전율하고 전율합니다!'"

  요가난다가 자신의 우주 찬송가 중 하나의 가사를 인용했다.

  "그것은 신성한 어머니가 너를 보고 있는 거야. 그것을 기억해!" 그러고 나서 그가 몸을 돌려 방을 떠났다.

  나는 절반쯤 깨어 있는 상태로 명상하며 밤을 지샜다. 나는 신성한 영이 아버지-어머니 창조주로서 살아 있고 내 곁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 내가 얼마나 그들을 사랑하는 지! 그리고 그들이 내게 보내준 스승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오, 주여, 저는 당신을 직접 대면해야만 합니다.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당신을 내게 나타내소서."

  내가 기도했다.

  나는 와싱턴 산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언제 인도 여행을 떠나게 될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요가난다는 몇 주 동안 그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침내 어느 날 밤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빅 보이, 슬픈 소식을 전해야겠어. 인도 여행을 갈 수 없게 되었어. 주님이 말씀하셨어. '안 된다. 만일 네가 인도에 가게 되면 와싱턴 산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게 돼.'"

  "선생님, 그 말은 당신이 다시는 결코 인도로 갈 수 없다는 의미인가요?"

  "그래." 그가 대답했다. "나는 곧 몸을 떠날 거야."

  "뭐라구요!" 나는 큰 해머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느낌이었다. "그 말씀은 선생님이 영원히 떠난다는 뜻인가요?"

  "맞아!"

  그러고 나서 나의 재촉에 그는 그 시기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자신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작별 인사를 해야 할 사랑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군. 지금 먼저 네게 말하는 거야. 지금 네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있어. 내가 몸을 떠나고 난 뒤 너를 보러 다시 돌아올 거야."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선생님." 내가 간청했다. "당신이 떠나신다면 저도 따라가고 싶습니다."

  "안 돼, 안 돼. 너는 머물러야만 해. 네게는 해야만 할 일이 있어."

  산타 바바라 지역에 대해 내가 보았던 환영들이 떠올랐다.

  "산타 바바라에서인가요, 선생님? 제가 본 환영들은 사실인가요?"

  "그래, 그것들은 사실이야. 너는 전생에 내 친구였어. 지금 나는 네게 작별 인사를 해야만 해. 신과 상위의 존재들이 네가 미션을 성취할 수 있도록 도울 거야."

  그의 마지막 말과 함께 수화기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지금으로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1950년 9월 말경, 요가난다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도 여행 계획을 발표했다. 그런데 지금 그것은 불분명하게 연기되었다.

  그날 밤 대화 이후 그는 결코 다시 육체를 떠나는 얘기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나는 이 모든 일들이 환상이 아닌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아마도 그는 내가 어떻게 나오나 보려고 나를 시험하고 있는 것일지 몰랐다. 나는 더 이상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명상할 때마다 그가 우리와 함께 오랫동안 여기에 머물고 있는 장면을 심상했다.

출처 : http://blog.naver.com/PostList.nhn?blogId=eyeinhand&categoryNo=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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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싱턴 산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버지로부터 온 편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얘야, 도로시(노먼의 새엄마)와 나는 올해 크리스마스를 LA에서 베티, 로우와 함께 보내게 될 거야." 베티는 도로시의 누이였다. "LA에 갔을 때 와싱턴 산을 방문하고 싶다. 내가 파라마한사 요가난다와 몇 마디 나눌 수 있도록 주선을 해주렴. 얘야, 이 늙은 애비가 너를 본지도 오래 되었구나."

  갑자기 시간이 너무 빨리 흘렀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엄격한 수사의 삶을 살면서 나의 행동반경은 오로지 공동체의 일에만 국한되었다. 아버지와 나는 한 달에 한 번 서신이나 전화로 소식을 주고 받았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하루 온 종일 명상하는 것이 와싱턴 산의 전통이었다. 모든 형제와 자매들은 요가난다가 참여하는 이번 크리스마스 명상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때 오랜 시간의 명상을 끝까지 해낸 모든 사람들은 신성한 영으로부터 어떤 식으로든 영적인 고양감을 얻었다.

  크리스마스 날에는 모두 함께 성찬 시간을 가진다. 요가난다는 대개 하루 종일 또는 저녁 시간의 일부를 우리와 함께 보내곤 했다. 그 시간에는 모든 사람들이 그와 대화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아버지가 요가난다를 보고 싶어한다는 걸 알게 된 나는 그에게 아버지를 만나봐 줄 수 있는 지 메모를 전했다. 답변이 왔다. "그래. 나도 네 아버지를 만나고 싶군."

 

  맨 앞줄 좌측으로부터 첫번째 두르가 마타, 두번째 아난다 마타(버지니아 라이트) 세번째 다야 마타. 요가난다 뒤로 보이는 키 큰 남자가 노먼 폴슨, 그 우측이 버틀러(벅스), 그 오른쪽이 크리야난다(도날드 월터스). (이것은 엔시니타스 은거지에서 열린 부활절 명상 모임 때의 사진)

  1949년 12월 24일이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올데이Allday 명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명상은 보통 아침 10시경에 시작되어 초저녁에 끝났다. 중간에 잠깐씩 휴식 시간을 가졌다. 때때로 요가난다는 특정한 개인들을 위해 신성한 영으로부터 직접적인 메시지를 받았다. 침묵의 시간. 어떤 이들에게 그것은 축복이었고 또 다른 이들에게 그것은 오래 버티고 앉아 있어야 하는 지독한 고역이었다. 그날 밤 명상 후 요가난다는 앉아서 잠시 얘기를 했다.

  그 해 크리스마스 명상 시간 동안 나는 다시 미래의 산타 바바라 지역 공동체 사람들의 모습을 다시 명확하게 보았다. 다시 그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그 에너지는 더 강해지고 있었다. 나는 알았다, 언젠가 내가 와싱턴 산을 떠나 산타 바바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그것이 나의 운명이라는 것을. 거기서 모종의 영적 공동체의 기초가 시작될 것이었다. 그러나 ‘어떻게’가 문제였다. 나는 알 수 없었다.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이들로 구성된 그 공동체는 결국 자급자족하는 공동체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개개인이 필요로 하는 모든 측면들이 주의 깊게 돌보아져야만 했다. 만일 진실로 신이 모든 인간들에 대한 모든 것이라면 그 기초는 반드시 모든 남녀가 관련된 개인적인 노력을 포함해야만 한다.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모든 기술들이 공동체 자체 내에서 양산될 수 있어야 한다. 과일과 야채 재배, 양봉, 고기와 우유, 그리고 의복과 신발용 가죽과 털을 얻기 위한 목축업 등. 씨앗의 형태로 있던 에너지가, 이렇게 투사된 멘탈 이미지들 주위에서 성장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나는 그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크리스마스 성찬식. 좌측으로부터 스웬슨, 제임스 린(자나카난다. SRF 2대 회장), 버나드 경, 요가난다, 루이스 박사(훗날 SRF 부회장 역임)

  아버지와 도로시가 크리스마스 날 오후 5시경에 도착했다. 홀 안은 제자들과 손님들로 가득했다. 아버지와 나는 무리 사이를 간신히 비집고 요가난다에게 다가갔다. 내가 두 분을 요가난다에게 소개했다. 아버지와 요가난다는 오랫동안 손을 잡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의 상념과 에너지를 교환했다.

  이윽고 아버지가 큰 소리로 외쳤다. "좋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제 자식 놈을 무척 사랑합니다." 그들은 자리에 앉아서 영적인 문제들과 아버지의 눈에 대해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역주: 노먼의 아버지는 장님으로, 불교 성직자이다.) 나중에 보니 아버지는 무척 기뻐하는 것 같았다. 내 생각에 아버지는 내가 당신과 함께 있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굳이 내가 요가난다를 떠나도록 설득하려고 애쓰지는 않았다.

  아버지와 도로시가 산타 바바라를 향해 떠날 때 아버지가 나를 힘껏 끌어안으며 말했다.

  "얘야, 너와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만 그건 물론 불가능한 일이지. 방은 비워두었으니 언제든 올 때마다 들러라."

  나는 아버지의 낡은 시보레 패널 트럭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예, 아버지." 내가 조용히 말했다. "우리는 항상 함께 있어요. 그리고 항상 같이 있을 거예요."

  최근 몇 년 동안 존 윈십은 종종 나를 보러 차를 몰고 올라오곤 했다. 어느 일요일 존이 헐리우드에서 열린 요가난다의 강연에 참석했다. 그는 전혀 인상을 받지 못한 듯 보였다. 집으로 가는 도중 그가 말했다. "이봐, 네가 이곳에서 저 요기와 줄곧 같이 지낸 후 내가 네게서 본 유일한 변화는 네 눈이 더 크고 밝아졌다는 거야. 저런 요기와 살면 내 눈도 더 커지고 맑아질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존, 환영의 껍질에 싸인 이 물질계를 초월한 세계를 좀 볼 수 없니?' 나는 그냥 이렇게만 대답했다. "그렇고 말고."

  "나도 한 번 여기서 살아볼까?"

  "그건 그렇게 쉽지 않아, 존. 요가난다가 허락하지 않으면 이곳에 살 수 없어."

  나는 화제를 돌려버렸다. 존이 신의 실현과 같은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2주 후 그가 다시 와서 말했다.

  "이런 삶의 방식을 한번 정말로 엄밀하게 시험해 보기로 결심했어."

  나는 그 문제에 대해 기회가 있을 때 요가난다에게 말했다.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두 달을 버티지 못해. 척 보면 알지. 하지만 그가 좋은 카르마의 씨앗을 심도록 하자구. 그가 머물 수 있는 만큼 머물게 하도록 하지."

  존은 어느 여름 화창한 날에 나타났다. 그는 큰 가방에 짐을 싸들고 왔다. 존이 처음 힘들어한 것은 채식이었다. 그는 체중이 줄어드는 것을 감지했다. 존은 샐러드와 야채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명상을 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몸무게가 좀 더 빠지자 그의 눈이 더 커지고 맑아졌다. 이 사실에 고무된 그는 체류를 계속해 나갔다.

  마침내 석 달 가량 지난 후 그가 나를 찾아왔다.

  "굶어죽기 전에 여기서 떠나야겠어. 너는 토끼풀만 먹으면서 견딜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난 못해. 젠장, 노먼, 난 20 파운드나 빠졌어! 간디를 닮아가고 있다구!"

  존은 어깨에 커다란 백을 짊어지고는 말했다.

  "나중에 보자."

  그리고는 차에 올라탔다.

  다니엘 분은 항상 영능력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헐리우드에 살고 있는 한 여성에 대해 소문을 듣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을 '마더 메리'라고 불렀다. 분은 그녀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아내고는 전화 연락을 취하는데 성공하였다. 마더 메리는 다니엘을 초대하였다. 그가 내게 물었다.

  "노먼, 나하고 같이 가지 않을래?"

  나는 잠시 생각했다. 가야겠다는 느낌이 왔다. 이 여성이 내게 어떤 메시지를 줄 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물론, 다니엘, 같이 가자."

  내가 대답했다.

  토요일 아침, 분과 나는 버스를 잡아타고 마더 메리의 집으로 갔다. 헐리우드에 도착한 뒤 우리는 집 주소를 찾아 헤매 걸었다. 마침내 마더 메리의 집 문 앞에 서게 되었다. 노크하자 한 젊은 남자가 나오더니 우리를 안으로 안내했다. 마더 메리가 우리를 반기며 거실로 맞아 들였다. 그녀는 50대 후반의 키가 작고 뚱뚱한 여자였다. 우리는 그녀에게 우리를 소개하였고 요가난다의 제자라고 말했다.

  곧 그녀와 다니엘은 영적인 심령 체험들에 대해 깊은 토론에 들어갔다. 다니엘은 자신이 체험한 특이한 환영들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내 머리 위 왕관 차크라에 에너지가 내려와 압박감이 느껴지는 게 아닌가! 갑자기 마더 메리가 나를 올려다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당신의 고급 센터들을 열고 있어요. 머리에 감각이 느껴지나요?"

  그녀의 직관력에 놀란 내가 대답했다.

  "예."

  "걱정하지 말아요, 노먼." 그녀가 말했다. "당신은 정말 행운아에요."

  우리가 방문할 무렵 마더 메리는 캘리포니아 샤스터산 기슭에 있는 오래된 호텔을 구입하려 하고 있었다. 그녀는 거기로 옮겨 영적인 센터를 열 예정이었다. 그녀를 처음 방문한 지 수 주 후 다니엘은 다시 그녀를 방문하고 싶어했다.

  "노먼, 마더 메리가 짐을 모두 싸고 이사하려고 한다는군. 그녀가 샤스터 산으로 옮겨가기 전에 한 번 더 찾아가 보도록 하자."

  나는 그의 말에 동의했고, 우리는 그녀의 집을 다시 찾아갔다. 우리는 그녀와 다소 깊은 토론을 하였다. 마더 메리는 현 남태평양 지역에 한 때 거대한 대륙이 존재했었다고 믿었다. 그녀는, 수만 년 전 지구는 거대한 재앙을 겪었다고 말했다. 이 대격변으로 대홍수가 일어났고 당시 지상에 존재하던 많은 문명들이 파괴되었다.

  이 대격변의 원인은 오늘날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많은 고대 기록에 의하면 당시 지상에 존재하던 두 문명 사이에 발생한 크고 작은 전쟁들이 그 원인이었다고 한다.

  많은 고대 문헌과 전설들은 천상에서 내려와 인간들을 창조한 신들 사이에 벌어진 대 전쟁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이런 기술記述과 전설들은 세계 각지의 모든 고대인들 사이에 존재한다. 마더 메리는 산 안드레아스 단층의 서쪽 캘리포니아 지역은 한 때 무 또는 레무리아라 불리는 고대 문명의 일부분이었다고 말했다. 마더 메리는 무 대륙을 침몰시킨 이 대격변의 생존자들 중 일부가 샤스터 산과 남부 캘리포니아의 연안 섬들 일대로 피신했다고 믿었다. 오랜 후 나는 마더 메리의 주장과 믿음을 뒷받침할 강한 증거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우리가 떠나려 할 때 마더 메리는 우리에게 언제 샤스터 산으로 자기를 찾아오라고 초대했다. 우리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수년 후 마더 메리는 척추를 감싸고 있는 두 개의 신경 흐름과 관련된 특정한 힘을 상승시키는 데 있어서 나를 도와주었다. 이 신경 흐름을 동양 요가 교사들은 이다와 핑갈라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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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7년 말, 워싱턴 산으로 옮긴 직후 나는 요가난다로부터 크리야 요가 테크닉을 전수 받았다. 어느 날 분과 나는 크리야 요가와 여타 명상 테크닉들을 비교, 토론하고 있었다. 분이 모든 요가 무드라의 왕이라고 하는 케차리 무드라에 대해 언급했다.

  "케차리 무드라가 뭐지, 분?"

  "음, 혀하고 관련된 거야. 혀의 포즈를 독특하게 취하는 거지."

  분은 생명력이 어떻게 척추의 신경 센터들을 통과해 뇌의 고급 센터들을 향해 상승하는지, 그리고 뇌하수체와 송과선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설명해 주었다.

  이윽고 그가 말했다.

  "입천장과 목젖을 본 적 있어? 목젖은 연구개 중간부분으로부터 아래로 매달려 있지.“

  "그래, 본적 있어."

  "음, 케차리 무드라는 혀를 뒤로 말아 올리는 거야. 혀가 연구개의 뒷부분으로 미끌어져 넘어갈 때까지 말이야. 그러고 나서 혀를 계속 위로 밀어 올려야 돼. 혀가 비인두鼻咽頭 뒤에 닿을 때까지. 입 안에서 혀끝으로 콧구멍을 닫을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해. 혀끝을 계속 위로 올리다 보면 뇌하수체 바로 아래 돌출 돼 있는 뼈에 도달하게 돼. 최종적인 연결이 이루어지는 곳은 바로 거기야.

  뇌하수체가 활성화되면 송과선이 진동하기 시작해. 그리고 뇌하수체 센터에 있는 영안에서 두 힘이 자기적으로 끌리며 합쳐지게 되지. 케차리 무드라는 일종의 황홀한 자류를 일으켜 몸 안의 다른 힘들을 각성시키고, 신의 옥좌인 이 의식의 센터에 합류시켜 주지.“

  나는 케차리 무드라를 시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혀를 뒤로 밀어 올렸다. 혀끝에 목젖이 닿을 때까지. 연구개 뒤로 혀가 미끌어져 넘어갔다. 계속 혀를 위로 움직이자 혀 끝에 비인두와 비공의 내측이 닿는 게 느껴졌다. 이윽고 혀는 비공을 넘어 다니엘이 설명해 준 돌출된 뼈에 닿았다. 정말이네! 곧 바로 마음속에 매우 깊은 상태의 의식이 퍼져가는 게 느껴졌다. 눈을 감자 찬란한 빛이 내 주위에 너울거렸다.

  다니엘은 내가 처음 단 한 번의 시도로 이 어려운 무드라를 성공시키자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는 케차리 무드라를 한 상태에서 크리야 행법을 하기 시작했다. 놀라운 결과를 경험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메시지가 도착했다. "파라마한사지께서 당신을 보기 원해요." 3층으로 올라가 요가난다의 방으로 갔다. 그는 부엌에 있었다.

  "빅 보이, 무얼 하고 있지?"

  "테니스 코트장에서 일하고 있어요, 선생님."

  "잠깐 이리와 봐. 듣자니 요즘 다른 방식으로 크리야를 하다면서?"

  "예, 그래요."

  "혀를 뒤로 삼킬 수 있나?"

  "예, 할 수 있어요."

  "잠깐 보여줘 봐."

  파라마한사지가 손전등을 들었다. 나는 케차리 무드라를 실행해 보여줬다. 그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오, 이런!" 그가 소리쳤다. "넌 모를 거야, 네가 얼마나 축복을 받은 몸인지. 혀를 이렇게 뒤로 올린 채 크리야를 행하나?"

  "예."

  "좋아, 좋아. 그것이, 바바지가 라히리 마하사야한테 처음 크리야 요가를 전수할 때의 방법이야. 너는 전생에 요가의 달인이었어. 그래서 너는 무드라의 왕이라는 케차리 무드라를 쉽게 할 수 있게 된 거야. 그만 가봐. 명상을 계속해. 이 일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한테 얘기하지 마! 너는 놀라운 체험들을 하게 될 거야."

  당시에 마스터는 사람들이 신을 발견하기 위해 혀를 뒤로 삼켜야만 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주의하고 있었다. 그것에 매여 혹시나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단순화된 형태의 크리야 요가를 시도조차 하려 하지 않을까 하고.

  그때 요가난다는 내게 다른 많은 것들을 말해 주었다. 그는 그것들을 내 가슴 속에 개인적으로 간직하도록 당부했다. 나는 그렇게 하겠노라고 그에게 다짐했다. 이 신성한 통찰을 받게 된 데 대해 나의 혼은 그에게, 그리고 신성한 영 어머니-아버지께 무한한 감사를 느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신성한 진리에 대해 지적인 자극들을 찾고 있을 뿐 그것들을 실천에 옮기는 데 필요한 노력을 기꺼이 하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명상을 향한 깊은 열망을 지닌 내 자신이 얼마나 행운아인지 깨달았다. 나는 일찍이 많은 사람들이 인내력 부족으로 영적인 길에 들어섰다가 떠나는 것을 보아왔다. 그들은 명상을 일반적인 습관 이상의 것으로 행하지 못했다.

  요가난다의 예언은 맞아 떨어졌다. 케차리 무드라와 함께 크리야를 이삼십 회 행하자 나는 깊이 계명된 의식 상태에 들게 되었다. 어느 일요일 날 교회 예배가 끝난 뒤 나는 밤새 내내 명상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 명상 방에 앉아 있을 때 갑자기 너울거리는 빛이 내 주위를 감쌌다. 너무도 생생해서 나는 그것이 실제 물질적인 것인지 아니면 내적인 차원상의 것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저녁 6시쯤이었다. 몇 차례 크리야를 행한 뒤였다. 나는 갑자기 원형의 방에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거기에는 내가 이전의 환영들 속에서 보았던 남녀들이 있었다.

  거대한 포털을 통해 보자 내 눈에 LA시의 옥상들이 들어왔다. 우리는 그 위를 움직이고 있었다. 잠시, 아래로 호수 사원이 보였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조용히 우리는 높이 더 높이 올라갔다. 캘리포니아에서 산타 바라바 쪽으로 올라가는 해안선이 보였다. 한 농장 하우스 주위에 많은 익숙한 얼굴의 사람들이 서서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우리가 다시 해안선으로 돌아올 때, 산맥 꼭대기에 있는 한 작은 호수 주위에 서 있는 낯익은 얼굴의 사람들이 다시 보였다.

  갑자기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이곳이 바로 네가 사역을 시작할 곳이다. 네가 지금 보고 있는 저 젊은 사람들과 함께."

  내 주위에서 빛이 폭발했다. 눈을 떠 보니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내 명상 방이었다. 이것은 나의 첫 아스트랄 투사를 통한 미래 여행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유사한 환영들을 체험했다. 한 번은 젊은이들이 말들과 함께 농사를 짓는 모습이 보였다. 다른 환영 속에서 나는 이 많은 남녀들이 지금 화신해 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명상 속에서 자각과 통제를 얻게 되자 나는 과거와 미래의 사건들의 에너지를 현재 속에 연결시킬 수 있게 되었고, 실제적인 진실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제 알게 되었다, 장차 이 환영들이 산타 바바라와 그 밖의 지역에서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게 될 거라는 사실을.

  우리는 사실상, 확장해 가는 창조의 세계들에 존재하는 내적인 공간의 광대한 차원들 - 태양들이 빛나고 아스트랄 혹성들이 궤도 속을 미끌어져 움직이는 필설로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닌 - 에서 온 하나의 숨결이다.

  그날 나는 의식 속에서 이 세계의 이미지들과 마주했다. 내적인 공간의 세계들이 저 멀리 사라져갔다. 내가 진정으로 바란 것은 더 큰 확신이었다. 왜냐하면 의심들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내가 환영 속에서 본 모든 것들을 성취할 수 있을까? 나는 인내심을 가져야만 했다. 기다려야만 했다. 그렇게 기다리는 데 거의 20여년의 세월이 걸렸다.

  요가난다는 한 평생 스와미 샹카라에 의해 설립된 고대 수도승 교단의 한 분지로서 SRF를 세웠다. 그는 또한 '단순한 삶, 높은 생각.'의 이상에 바탕을 둔 영적인 환경 속에서 기혼자들과 아이들이 살 수 있는 세계형제 공동체를 마음 속에 품고 있었다. 그는 일상 모든 삶의 측면들이 신적 자아의 실현을 향해 조화롭게 통합된 영적인 삶을 소망하는, 가정을 지닌 제자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원래 그는 우선 엔시니타스를 자급자족하는 세계형제 공동체로 만들려고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신성한 영이 거기에 다른 계획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씨앗이 이미 심어졌고 어느 날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요가난다는 구세대 사람들을 다루어야만 했다. 그는 그들을 종종 '심리학적인 유물'이라고 언급하곤 했다. 심지어 1920년대 말에서 30년대 초에 태어난 나의 세대조차 내적 신의 실현을 추구하고자 하지 않았다. 그들은 신성을 향한 탐구를 위해 필요한 만큼 충분히 세속적인 욕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형제단 속에서 평화롭게 함께 살 수 있는 세대는 40년대 초 이후부터 태어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들은 여기 있고 그 시간은 바로 지금이다. 요가난다는 시기가 무르익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필요성을 인식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없었다. 그의 꿈은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이들이 공동체 속에서 함께 사는 것이었다.

  파라마한사지는 사막 은거지에서 저술 작업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도날드 월터스와 나는 그곳으로 부름을 받았다. 은거지에 형제자매들의 레크리에이션을 위한 수영장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땅을 파는 작업은 굉장히 힘들었다. 화강암 지층을 뚫고 나자 높은 온도와 압력으로 딱딱하게 굳은 경질 지층이 나왔다. 그것은 아주 오랜 옛날 마른 호수의 지표 진흙이었다. 그것을 뚫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강철 굴착 바를 사용하는 것뿐이었다. 도날드와 나는 여러 주 동안 뜨거운 사막의 태양 아래서 굴착작업을 계속 해나갔다. 끔찍하게 힘든 노동 속에서 단 하나의 좋은 점은 거의 매일 요가난다가 차가운 음료를 가지고 와서 신의 실현에 대해 얘기해 주는 것이었다.

  굴착 작업이 끝나자 우리는 콘크리트 벽을 지탱하기 위한 목재틀을 만들어야 했다. 미리 섞어놓은 콘크리트를 들여오면 한 시간이면 마칠 수 있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요가난다는 몇 달러를 아끼기 위해 그것을 수작업으로 하길 원했다. 하지만 내 생각에 사실상 요가난다는 우리가 땀을 흘리고 더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기 원하는 것 같았다.

  나는 트웬티나인 팜스로 가서 시멘트 믹서를 빌려왔다. 그리고 모래와 자갈, 시멘트를 주문해서 싣고 왔다. 다음 날 아침 6시경 우리는 일을 시작했다. 나와 버나드, 다니엘, 도날드, 그리고 그밖의 여러 형제 수사들이 거기에 있었다. 우리는 16시간만에 작업을 끝냈다. 그 날 밤 만큼 내 생에서 곤죽이 된 날은 다시는 없을 거 같았다. 이틀 후 우리는 목재틀을 떼내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다음 우리는 내벽 주위를 돌아가며 컬러타일들을 붙였다. 그러고 나서 하우스와 매치시키기 위해 크림 색의 벽토 작업을 했다. 정말 아름다웠다.

  작업이 완공되고, 마침내 풀에 물을 채워 넣는 날이 다가왔다. 요가난다는 기뻐했다. 그는 풀장에 뛰어들어 수영을 했다. 그는 우리 모두 풀장 안에 들어와 수영을 즐기도록 했다. 우리는 그날 하루를 다 함께 짧은 명상으로 마무리지었다. 일이 끝나자 우리는 와싱턴 산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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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9년 여름, 명상 속에서 나는 환영들을 체험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나는 다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는 젊은 사람들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러다가 이윽고 음악과 노래가 멀리 사라져 갔다. 그들의 낯익은 얼굴, 모습과 함께.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내 방으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

  어느 날 오후 분과 나는 물건들을 사고 돌아오는 중이었다. 수도원을 향해 가파른 언덕을 걸어 올라가고 있을 때 분이 말했다. "이봐, 노먼. 어느 날 밤 내가 산책하러 나와 있는데 와싱턴 산 위로 거대한 우주선이 날아가는 걸 봤어. 지난 1947년 일이야."

  "그랬어? 어떻게 생겼지?"

  "글쎄, 그것은 기다란 구형이었어. 꼭대기는 둥글고 바닥은 평평했어. 우주선의 양 끝에서 밑으로 밝은 보라색 광선이 방사되는 게 보였어. 그것은 수도원 바로 위에 있었어. 우주선 상부 측면에 있는 창문들에서 반짝이는 빛들도 보였어."

  나는 호기심이 동했다.

  "분, 네가 본 걸 정말로 믿어? 신성한 어머니의 이름을 걸고 말해봐."

  "그래, 그것은 정말로 저기 있었어."

  "뭘 하고 있었던 거 같아?"

  "글쎄, 노먼, 나는 우주선 속에 어떤 존재들이 있다고 정말로 믿어. 너도 알잖아, 불의 전차들 말이야. 그들은 우주선을 타고 날아가면서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어."

  그때 나는 어린 시절부터 내가 알고 있었던 것에 대해 분도 의식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역주: 노먼은 오래 전부터 유에프오를 보는 체험을 했었다.)

  "분." 내가 말했다. "나는 저 비행체에 탄 혼들이 지금 여기 지상에 화신하고 있다고 믿고 있어. 너와 나는 언젠가 그들을 보게 될 거야!"

  내 입에서 튀어 나온 말은 이제, 노래하는 목소리들과 낯익은 얼굴들을 본 나의 환영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었다. 그것은 모두 함께 아귀가 들어맞기 시작했다.

  "그 체험에 대해 누군가한테 말한 적이 있어?"

  "아니, 노먼. 사람들이 날 믿지 않으리라는 걸 알거든."

  "그렇다면 어째서 나는 믿을 거라고 생각하지?"

  "왜냐하면 내 생각에 너는 그들에 대해 알고 있으니까!"

  분과 나는 그로부터 수년 동안 유에프오에 대해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았다.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파라마한사지는 SRF 헐리우드 교회로부터 네 블록 가량 떨어진 선셋 대로에 있는 한 건물을 구입했다. 그는 그것을 교회 부지로 옮기고  그 건물을 레스토랑으로 만들고 아울러 거기에 지하 강당까지 만들길 원했다. 대공사가 임박한 것이다!

 

  힘든 작업이었다. 수개월의 작업 후 우리는 모두, 처음부터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게 더 쉬울 뻔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거대한 구덩이를 파내고 흙들을 퍼 나르고, 지반 속에 콘크리트를 붓고, 벽의 안팎에 이중 거푸집을 만들고 그 위에 건물을 얹었다. 그러고 나서 건물 전체를 시가 정한 법정 표준에 맞추는 작업을 했다. 우리는 여분의 마루 장선들을 끼워 넣고, 벽에는 좀 더 많은 샛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들을 보강하고, 전기 배선을 전부 새로 해야만 했다. 건물 전체 내부에 회반죽을 발랐고, 건물 외부에 치장벽토 세공을 다시 했다. 이 모든 일을 마치기까지 몇 달 동안 우리는 중노동을 해야만 했다. 요가난다는 하루걸러 한 번씩 그곳에 들러 작업 진척 상황을 지켜보았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레스토랑에는 인디아 하우스 카페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카페는 문을 연 날부터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공식 개장일에는 요가난다를 비롯한 많은 제자들과 친구들이 참석했다. 요가난다가 주도한 짧은 명상을 시작으로 연회가 열렸다. 건물의 돋보이는 특징 중 하나는 지붕 라인을 따라 두른 총안 흉벽이었다. 그것은 요가난다가 제안한 것이었다. 그것은 오래된 성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흉벽이었다. 그 작업은 축조작업도 벽토 세공도 어려웠다. 내가 목공일, 시멘트, 회반죽 일 등을 마스터한 것은 바로 거기에서였다. 그 기술은 나중에 나에게 유용한 도움이 되었다.

 

  1949년 말엽에 요가난다는 캘리포니아 산타 모니카 인근의 퍼시픽 팔리세이즈에 위치한 호수 사원을 구입했다. 그것은 해변으로부터 다섯 블록 떨어진 외딴 계곡에 자리한 아름다운 곳이었다. 호수는 대략 1에이커정도 되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 곳은 요가난다의 안목에 따라 완전히 다시 개조되었다. 부지에는 독일 풍차 하우스 등 여러 개의 독특한 건물들이 있었고, 바이킹 배, 하우스보트가 호수의 한쪽 기슭 작은 만에 놓여 있었다. 하우스보트는 철제 프레임 속에 함께 용접된 강철 원통들 위에 얹혀 있었다. 배기관들은 그 원통들과 접착돼 있었다. 배기관이 수면 위로 올라와 있는 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요가난다는 한 무리의 친구, 제자들과 함께 왔다. 그는 새로 구입한 그곳에 와 보고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그곳을 보기를 원했다.

  "명상을 위해 하우스보트에 우리 모두 모입시다." 그가 말했다. 우리는 모두 하우스보트로 갔다. 거실이 꽉 찰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일부는 밖에 서 있어야 했다. 하우스보트는 한 번에 백여 명이 탈 수 있게 설계된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3-4 톤의 중량을 초과하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어둠 속에서 기도 소리를 들으며 바닥 위에 앉아 있었다. 그때 호수 물이 갑판 위로 넘쳐 올라왔다. 문 아래 쪽으로 대량의 물이 밀려왔다. 요가난다가 소리쳤다. "자, 모두 보트에서 내려요. 빨리! 빨리!"

  배기관이 물에 잠기자 탱크들이 서서히 차올랐다. 하우스보트가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일부 나이든 여자들은 물이 바닥으로 치솟아 올라오자 비명을 질러댔고 그 바람에 난장판이 될 뻔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재미 있다는 생각에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요가난다가 나를 불렀을 때까지 말이다. 그가 내게 말했다.

  "빅 보이, 뛰어 내려서 보트를 들어올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호수 속으로 풍덩 점프해 들어가 안간힘을 다해 하우스보트를 들어 올리려고 애썼다. 그가 농담하고 있는 거겠지. 아니면 진담인가? 알 수 없었다. 당연히 보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안 돼요, 선생님." 내가 소리쳤다. "너무 무거워요."

  "그래, 좋아, 내일까지 보트를 세워놔."

  "예, 선생님."

  내가 대답했다.

  하지만 사실상 하우스보트를 물 위에 다시 띄우는 데는 3주가량이 걸렸다. 그것은 고된 노동이었다.

 

  어느 날 하우스보트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점심 식사 후 명상을 하기 위해 벤치 위에 앉아 있었다. 눈을 감은 뒤 신성한 영에게 깊이 기도하고 있었다. 잠시 후 축복이라도 하듯 두 개의 손이 내 얼굴의 양 볼을 감쌌다. 물질적인 감촉이 느껴졌다. 나는 눈을 뜨고 앞에 누가 있는 지 보았다. 하지만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요가난다는 호수 사원 전체에 조경 작업을 하길 원했다. 그가 LA의 한 거리에 종려나무들이 뽑혀진 채 죽 늘어져 있는 것을 어떻게 본 모양이었다.

  "빅 보이," 내게 메모가 전달되었다. "즉시 가서 종려나무들을 가지고 와. 그것들을 호수 사원으로 가지고 와서 심어."

  나는 그곳에 가서 종려나무들을 가지고 왔다. 그 나무 하나하나의 무게는 적어도 2톤은 되었다. 나는 맥 트럭에 연결시킬 견인 트레일러를 빌렸다. 다행히 맥에는 윈치가 있었다. 그것은 내가 전에 장착해 둔 것이었다. 나는 트레일러를 나무뿌리 끝에 바짝 뒤로 대고 스키드를 이용해서 그것들을 트레일러에 윈치로 감아올렸다. 이런 방식으로 나는 12 그루의 종려나무들을 옮겼다. 나무를 옮기는 것은 비교적 쉬웠다. 하지만 그것들을 심는 것은 정말로 힘든 작업이었다.

  어느 날 우리가 커다란 종려나무를 심기 위해 철사 줄을 매고 낑낑대며 간신히 위치를 잡은 상태였다. 그런데 요가난다가 보고는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왼쪽으로 10 피트가량 더 옮겨." 하마터면 나는 줄을 놓칠 뻔했다. 하지만 요가난다가 우리에게 자기 컨트롤을 가르쳐주기 위한 것이라는 걸 깨닫고는 이를 악물고 나무를 다시 옮겼다.

  조경 작업을 진행해 가면서 동시에 우리는 야외 원형극장에 거대한 연화탑도 만들고 있었다. 요가난다가 호수 사원을 위한 개관식을 가지고 정기적인 공개 강연을 가진 곳은 바로 거기서였다.

  모든 작업을 마치고 역사적인 개관을 위한 준비가 마무리 된 날, 요가난다가 연화탑과 사원 일대를 최종 시찰하러 왔다. 그는 아름다운 길을 따라 호수의 저 먼 기슭까지 걸었다. 작업에 참여했던 모든 형제 수사들이 거기에 있었다.

  요가난다가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자, 내가 여러분 모두에게 물로 세례를 주고 싶습니다."

  우리는 모두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바지를 말아 올린 뒤 요가난다와 함께 호수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는 두 손으로 물을 떠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머리 위에 부었다.

  "내 그대를 SRF의 성직자로 세례하노라."

  모두에 대한 세례가 끝난 뒤 우리는 모두 잠시 동안 앉아서 짧은 기도와 명상을 했다. 그는 우리가 한 모든 것들에 매우 흡족해 했다.

  인도에 있는 요가난다의 한 친구가 마하트마 간디의 재 중 일부를 보내왔다. 개관 의식 때 그 재는 석관 속에 안치되었다. 많은 고관들과 시 공무원들이 개관식에 초대되었다. 모든 SRF 학생들과 그들의 친구들 또한 초대되었다. 개관식은 마지막 세부 공사가 끝나고 나서 불과 며칠 후에 열렸다.

  개관일이 다가왔다. 1500여명의 사람들이 참석한 가운데 행사는 완전히 성공적이었다. 요가난다는 이 모든 것에 크게 기뻐했다. 호수 사원은 이제 명상과 영적인 고양을 위한 센터 역할을 하고 있다.

  나는 다음 프로젝트를 위해 와싱턴 산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에 나는 돈을 모아 3백 파운드짜리 역기를 샀다. 나는 그 역기로 운동을 하지 못해서 아쉬웠다. 문제는 도날드 형제였다. 그는 내 방에서 흘러나오는 덜거덕거리는 소리를 몹시 싫어했다. 내가 웨이트 운동을 하고 싶어 하는 이유를 도날드가 이해할 리 만무했다. 그에게 있어서 그것은 이해 불능의 세계일뿐이었다.

  도날드의 방과 내 방 아래에는 깊은 콘크리트 구덩이가 있었다. 마루 장선들이 그 위를 덮고 있었고 도날드 방쪽으로 뚜껑 문이 있었다. 그 구덩이에는 전동기와 윈치 케이블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과거 20년대 이 와싱턴 산 건물이 잘 나가던 리조트 호텔이었을 때 사용되던 레일 케이블카를 작동시키던 장치들이었다.

  도날드는 그 구덩이 밑에 들어가 명상을 하곤 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언제 거기에 갈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시간이 불규칙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큰 문제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도날드가 밑에서 명상하는 시간에 운동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내가 운동하고 있으면 아래에서 벽을 쾅쾅 치는 소리와 함께 도날드의 고함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그 위에 소음 좀 멈춰줄 수 없겠어? 나는 명상하고 있단 말야." 도날드와 나는 그 문제에서 어떤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당시에 도날드는 SRF의 일부 레슨들을 편집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요가난다는 도날드에게 보다 많은 육체적인 운동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도날드에게 바깥 뜰에서 일하는 나의 일을 하루 두세 시간 동안 돕도록 시켰다. 어느 날 요가난다가 말했다. "빅 보이, 산 아래 부지 끝까지 도로변의 모든 덤불과 잡초들을 제거해."

  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오후 2시쯤, 내가 작업을 거의 다 마쳐가고 있을 때 도날드가 나타났다. 나는 마지막 남은 약간의 덤불과 잡초들을 트럭에 싣고 있는 중이었다. 도날드가 그 마지막 싣는 작업을 도와주었다.

  "도날드, 이걸 하치장에 버리고 올 테니까 밑에 있는 잡초들을 계속 베."

  하치장까지는 약 50피트의 거리였다. 내가 하치장에 풀들을 막 버리자마자 요가난다의 차가 언덕 위로 올라왔다. 그가 멈춰서더니 도날드를 차에 태웠다. 요가난다의 차가 지하실 입구에 이르자 나는 그를 보기 위해 서둘러 올라갔다. 도날드가 요가난다와 같이 차에서 내렸다.

  "빅 보이, 월터(요가난다는 도날드를 보고 항상 월터라고 불렀다)가 도로변을 깔끔하게 정리해 놓은 것 좀 봐. 정말 잘 해 놓았더군."

  "예, 선생님." 내가 대답했다. "정말 좋아 보여요. 그렇죠?"

  내 마음 속에 이런 생각이 일었다. '도날드는 이제야 와서 막 잡초를 베기 시작했고, 나는 몇 시간동안 작업했다는 걸 스승님이 알까?'

  도날드가 자초지종을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요가난다는 이미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결국 도날드는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도대체 나는 누구를 위해서 이 모든 일을 하고 있지? 음, 파라마한사지를 위해 하고 있지. 그를 돕기 위해서. 그래. 하지만 사실상 나는 신성한 영, 신성한 어머니, 아버지를 위해 일하고 있어. 분명 신은 누가 이 일을 했는 지 알아. 그러니 내가 한 일이라고 굳이 밝힐 필요는 없지. 다시는 이런 일로 마음 상해서는 안 돼.’ 나는 그 일이 좋은 교훈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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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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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개월이 흘렀다. 버나드의 도움으로 나는 목공일뿐만 아니라 회반죽과 치장벽토 세공에도 숙달되게 되었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알아서 척척하게 되었다. 진 하우프트와 나는 썩은 가지와 덧자란 가지들을 쳐서 정원을 말끔하게 다듬었다. 요가난다와 같이 있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평균 한 달에 한 번 그를 보았다. 그것은 주로 그가 차로 들어오고 나갈 때였다. 나는 실망했다. 왜냐하면 그와의 개인적인 만남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식으로 어떻게 내가 배울 수 있지?

  어느 날 아침 나는 요가난다가 내게 보내온 쪽지를 전달받았다.

  "당장 옷 갈아 입고 와. 오늘 너와 같이 나가고 싶어. P.Y."

  나는 여행에 그와 함께 동반하게 되었다.

  버지니아 라이트는 처음부터 요가난다의 운전기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요가난다는 갑자기 나를 임시 수행원 겸 운전기사로 쓰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때는 1948년 크리스마스 직후였다. 요가난다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중고 캐딜락 세단을 생일 선물로 받았다. 내가 지하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자 그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내게 다가왔다.

  "빅 보이, 운전 잘하나? 너는 좋은 업을 가지고 있어. 그러니 사고 걱정은 안 해도 될 거 같군."

  "글쎄요, 선생님. 꽤 합니다."

  "알았어. 자, 이제 오늘 너는 내 운전 기사가 돼 줘야겠어. 여기 키 있어. 가서 차를 가져 와."

  나는 그날, 그가 만족스러울 만큼 수행을 잘 할 수 있었다. 그 후 수차례 나는 업무상 도시 이곳저곳으로 그를 차로 모시고 다니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

  파라마한사지는 트웬티나인 팜스 사막 지역에 있는 한 은거지를 구입했다. 그것은 1 에이커 부지에 있는 방 세 개짜리 집이었다. 동시에 그는 같은 지역 3마일 떨어진 곳에 남자들을 위한 은거지도 구입했다. 어느 날 버나드가 나를 불러 말했다. "파라마한사지가 사막 은거지에 나가 계셔. 그가 너와 분, 빌 브라운, 그리고 내가 오기를 바라셔. 아마도 뭔가 우리에게 시킬 일이 있나 봐."

  분과 나는 버나드가 모는 트럭 뒷좌석에 탔다. 그때까지 나는 사막을 본 적이 없었다. 트웬티나인 팜스에 가까워 가자 사막의 풍광이 매혹적이 되었다. 지형의 색상들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조슈아 나무와 유카 관목들이 바위와 모래가 펼쳐진 풍광을 장식하고 있었다. 조슈아 나무는 지구상에서 단지 두 지역에만 서식하고 있다. 여기 트웬티나인 팜스 사막 일대와 저 멀리 이스라엘. 한 번도 조슈아 나무를 본적이 없던 나는 그 독특한 아름다움에 넋이 나갔다.

  사막은 삼사십 마일 가량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것을 보자 바다가 떠올랐다. 밤하늘의 별들이 너무도 밝게 빛났고 고요했다. 마치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사막을 즐겼다. 그것은 내게 새롭고 특이한 환경이었다. 나는 언젠가 이곳에 와서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요는 한 없이 깊었다. 모든 곳에 편재하는 옴Om이나 훔Hum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요가난다가 우리에게 맡긴 작업은 1 에이커의 은거지 주위에 뱀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치는 것이었다. 그 지역에는 방울뱀들이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뱀에 물리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길을 따라 울타리를 세우는 작업은 곧 끝났다. 우리는 그 길에 아름다운 사막 돌들을 가지런히 늘어놓았다.

  나는 시간이 나자 사막을 오랫동안 산책했다. 어느 날 홀로 사막을 걷는데 놀라운 정적 속에서 직관적으로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 사막이 장차 내 인생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될 거라는.

  나는 저 멀리 북서쪽을 바라보았다. 색색의 컬러 띠를 이루고 있는 지평선을 아름다운 캘리코 언덕이 장식하고 있었다.

  이 무렵 내게 처음으로 후배 형제 수사가 생겼다. 어느 날 나는 헐리우드 교회에서 요가난다의 일요일 설교가 끝난 뒤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때 흰색 파나마 슈트를 입은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흰색 셔츠와 검은 타이 차림을 하고 있었다. 와우! 옷차림 좀 봐! 그는 먼 거리를 여행해 왔지만 선약이 필요하다는 사실만을 확인하게 되자 난감한 표정이 역력했다.

  나는 한 눈에 그가 우리 무리에 합류하게 될 거라는 걸 알아보았다. 저런 흰색 수트 차림을 하고 어디서 온 거지?

  마침내 그는 한 자매 수녀에게, 요가난다에게 가서 자신을 만나줄 수 없는지 물어봐 달라고 청했다. 확실히 영이 그와 함께 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사원 대기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45분 정도 시간이 흐른 뒤 그가 나타났다. 한껏 고양된 모습이었다.

  그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당신은 파라마한사지의 제자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아, 제 이름은 도날드 월터스입니다. 파라마한사지가 방금 저를 제자로 받아주셨습니다."

  "그래요? 잘 됐군요, 도날드."

  나는 그를 따스하게 감싸 안아 주었다.

  "가방을 가지고 왔어요. 당신과 함께 워싱턴 산 본부로 가면 안 될까요?"

  "음, 버나드와 여러 형제들이 곧 떠날 겁니다. 우리와 같이 트럭을 타고 가면 되겠군요."

  도날드는 궁금한 것투성이였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질문들을 통해 나는 그가 고등 교육을 받은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를 다니엘에게 소개시켰다. 그리고 다니엘이 그의 질문에 답하는 걸 도와주길 바랐다.

 

도날드 월터스(크리야난다)

  우리는 그날 오후 워싱턴 산에 도착했다. 도날드에게는 케이블카 건물에 딸린 내 방의 옆방이 주어졌다. 나는, 그가 자기한테 배정된 그 방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는 걸 알았다. 벽을 통해 그가 혼자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올바른 태도를 가지고 있었고, 이곳에 머물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어디서든 살 각오가 되어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도날드가 마음에 들었다. 그는 진지한 가슴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가 잘 헤쳐나가리라 믿었다.

  요가난다는 내가 온 날부터 모든 요가 아사나와 무드라들을 배우도록 했다. 그는 분과 버나드를 시켜 나를 가르치도록 했다. 어떤 아사나들은 아주 힘들어서 실행이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수련 후 일 년이 지나자 나는 약 84개의 아사나와 무드라들을 마스터할 수 있었다. 요가난다는 자주 버나드와 다니엘, 그리고 나를 불러 사람들 앞에서 아사나 시연을 하도록 했다.



  버나드는 척추에 이중 만곡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요가난다에게 오기 전에는 오래 살지 못할 것으로 여겨졌다. 그는 한쪽 폐 역시 함몰돼 있었다. 건강 상태 때문에 그는 전염병들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있었다. 요가난다를 만난 뒤 버나드의 건강은 개선되기 시작했다. 그의 척추 상태 때문에 나는 그가 각종 아사나 자세를 취하는 것을 보면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가난다는 사람들에게 이런 것들을 보여주길 좋아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깊은 인상을 받고 떠났다.

  1949년 여름, 새로운 형제들 몇이 들어왔다. 레오 칵스는 그중 한 명이었다. 그의 가족은 모두 수년 동안 장미십자단의 회원이었다. 제임스 버틀러는 그의 어머니와 같이 워싱턴 산으로 옮겨 왔는데, 진국인 사람이었다. 버나드는 그를 분과 같이 인쇄소에서 일하도록 했다. 그는 곧 벅스로 불리게 되었다. 그는 항상 엉뚱한 농담으로 사람들을 웃겼다.

  어느 날 나는 5톤짜리 중고 맥 트럭을 발견하고는 요가난다에게 말해 구입하도록 했다. 우리는 항상 쓰레기나 건축 폐자재들을 버리고 있었기 때문에 일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는 큰 트럭이 한 대 필요했다. 파라마한사지는 그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아침 목재들을 실으러 갈 때 나는 벅스에게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밝게 웃으며 낡은 맥에 뛰어 올라 내 곁에 앉았다. 와싱턴 산 아래로 달릴 때 나는 트럭을 서행시키기 위해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런데 브레이크 페달이 문자 그대로 바닥에 푹 꺼져버리는 게 아닌가? 나는 경악했다.

  처음에 나는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경사는 무척 가파랐다. 순식간에 언덕 가장자리를 지나갔고 탈주범의 차처럼 미친 속도로 치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벅스를 보고 말했다. "브레이크가 안 먹혀. 브레이크가 안 먹힌다구!" 그 말에 벅스의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해지더니 마침내 어두운 녹색 빛을 띠었다.

  "뭐라구? 브레이크가 안 먹힌다구!" 벅스가 소리쳤다.

 

  그는 문을 열더니 차밖으로 뛰어내리려 했다. 하지만 트럭은 이미 최소 시속 40마일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벅스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나는 이 끔찍한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나는 기도했다. "오, 주여, 여기 제가 왔습니다. 이 궁지에서 벗어날 뾰족한 방법이 없습니다." 집이나 주차된 자동차를 들이 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어쩌면 사람을 치여 죽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을 다치지 않게 하려면 차라리 벼랑으로 차를 내던지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운전대 아래 바닥으로 몸을 굽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오른 손으로 브레이크 페달을 움켜쥐고 힘껏 위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삼십 번 그렇게 움직이자 브레이크가 먹히는 게 느껴졌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그것을 내리 눌렀다.

  그동안 트럭은 주님이 운전하고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벅스는 사색이 된 채 얼어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한 번 펌프질을 했다. 그러자 타이어가 도로 위에 끌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낡은 맥이 벼랑으로부터 백 피트 앞에서 멈춰 설 때까지 결코 위를 올려다보지 않았다.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나는 우리를 구해 준 보이지 않는 존재들에게 다시 감사를 드렸다.

  벅스는 너무 공포에 질려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쇼크 상태에 빠진 그는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서서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엔진도 움직이고 있었고 브레이크도 작동했다.

  나는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나서 말했다.

  "이봐, 벅스, 일하러 가자."

  "뭐라고?" 벅스가 비명을 질렀다. "난 다시는 저 트럭을 타지 않을 거야!"

  재빨리 몸을 돌린 그가 워싱턴 산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수차례 브레이크를 테스트했다. 작동하고 있었다. 나는 맥을 아래로 옮긴 뒤 모퉁이를 돌아 언덕 아래로 갔다. 나는 수리소에서 멈춰선 뒤 가스를 샀다. 그리고 그곳 수리공과 함께 트럭의 브레이크 시스템 전체를 점검했다. 하지만 왜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았는지 그 사유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브레이크 자체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 후 그 트럭의 브레이크는 다시는 전혀 말썽을 부리지 않았다. 정말로 미스터리였고 소름끼치는 체험이었다! 그 모든 것의 가장 큰 부분은 나의 보이지 않는 수호천사가 나의 몸을 조종하였고 내 스스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을 행하게 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날 오후 목재를 싣고 집에 도착하자 수도원의 모든 사람들이 벅스로부터 사건 내용을 들어 이미 알고 있었다. 다음 번 내가 요가난다를 만났을 때 그가 나를 보며 말했다.

  "굉장히 위험한 운전이었어. 그렇지?"

  내가 대답했다.

  "예, 선생님. 정말 그랬어요."

  "신이 너와 같이 있어. 그렇지 않니?"

  "예, 선생님. 정말 그래요."

  1949년 여름 끝 무렵이었다. 요가난다로부터 호출이 왔다. 내가 도착하자 그가 웃음 띤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의 자이언트, 어떻게 지내나?"

  "잘 지냅니다, 선생님."

  내가 대답했다.

  "좋아, 좋아. 이봐, 내가 널 여행에 대동하려고 해." 그가 웃었다. "보디가드가 필요해서 말이야."

  "예, 선생님."

  내가 기꺼운 마음으로 말했다.

  "좋아, 좋아." 그가 계속 말했다. "먼저 날 샌프란시스코까지 데려다 줘. 그러고 나서 인도의 수상 네루를 방문할 거야."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너무 기분이 좋았다.

  "빅 보이, 여기 2백 달러가 있어. 시내로 가서 남색 정장과 오버코트를 한 벌씩 사고 신발도 새로 사. 알겠니? 빨리 서둘러야만 돼."

  "예, 선생님. 알겠습니다."

  "좋아."

  그가 지폐 다발을 내 셔츠 주머니에 밀어 넣고는 내게 미소를 크게 지어 보였다.

  "자, 서둘러."

  "예, 선생님."

  다음 날 나는 LA행 시내 전차를 탔다. 나는 돈을 절약하기 위해 중고 옷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한 중고 옷 가게에서 나는 낙타털과 라마털로 만든 오버코트를 발견했다. 주인은 60 달러를 불렀다. 흥정 끝에 나는 40 달러를 주고 코트를 샀다.

  그러고 나서 나는 정장을 찾기 위해 애썼다. 매번 상의가 맞으면 하의 허리가 너무 컸다. 마침내 나는 어떤 양복점으로 들어갔다. 재단사는 70대쯤 되어 보였다. 내가 나의 문제점을 그에게 설명했다.

  그가 나를 여러 차례 쳐다보고 나서 말했다. "손님한테 적당한 수트가 있을 거 같네요. 한 2년 전에 키가 큰 남자 손님이 찾아온 적이 있었어요. 그는 맞춤 정장을 원했지요. 옷을 다 만들었지만 그 손님은 옷을 찾으러 오지 않더군요." 노인은 가게에 걸린 오십여 벌의 수트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여기 있군요! 예, 여기 있네요." 나는 그 정장의 상의를 입어 보았다. 딱 맞는 듯 했다. "잘 맞는군요." 재단사가 중얼거렸다. "자, 그럼 바지를 입어보도록 하세요." 접단이 1인치정도 짧은 거 빼고는 바지도 딱 들어맞았다.
  "아, 그 정도는 순식간에 고쳐드릴 수 있지요." 재단사가 말했다.

  "정장 값으로 얼마를 원하세요?"

  내가 물었다.

  주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곧 나를 올려다보았다.

  "50달러에 가져가세요. 제가 단도 고쳐드릴게요."

  "그렇게 하죠."

  내가 말했다.

  한 시간 후 나는 정장을 입고 오버코트를 걸쳤다. 남은 것은 흰색 드레스 셔츠 두 벌과 타이 두 개, 그리고 신발이었다. 좋은 정장과 오버코트를 구입하게 되자 나는 신발도 좋은 것으로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결국 나는 플로어샤임 한 켤레를 샀다. 이제 나는 새 흰색 셔츠를 입고 남색 타이를 맨 뒤 그 위에 양복을 걸치고 새 구두를 신은 뒤 한 쪽 팔에 오버코트를 두른 뒤 집으로 향했다. 좀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때까지 정장차림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중학교 이후 타이는 매 본 일이 없었다.

  수도원을 향해 언덕을 오르면서 나는 생각했다. 신이 나를 이렇게 처처에 올바른 곳으로 인도해 주시니 경이롭지 아니한가. 내가 필요로 한 것들을 다 구입하게 되고 80 달러나 남았으니.

  다음 날 요가난다로부터 차를 점검하고 세차하라는 전갈이 왔다. 나는 언덕 아래 주유소로 차를 몰고 가서 세차하고 광을 냈다. 그날 밤 요가난다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우리는 내일 떠나게 될 거야. 만반의 준비를 하도록."

  마침내 출발 시간이 다가왔다. 요가난다가 세 명의 수녀들과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 왔다. 그 중에 한 명은 요가난다의 운전 기사인 버지니아 라이트.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마더 글로리아. 이 분은 최근에 방문차 왔는데 스승님과 같이 사역에 참가할 결심을 한 것으로 보였다.

  "빅 보이, 네가 운전해." 요가난다가 말했다. "대양을 볼 수 있도록 해안 도로를 따라갔으면 좋겠군."

  우리가 산타 바바라를 지날 때 요가난다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항상 이곳에 센터가 있었으면 하고 원했지.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더군."

  갑자기 그가 뒷좌석에서 소리쳤다.

  "빅 보이, 여기 태생이지. 그렇지? 해변에 자리한 이곳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야."

  "예, 선생님."

  내가 대답했다.

  우리의 목적지는 오크랜드였다. 우리는 좋은 시간을 보낸 뒤 오후 4시경에 그 도시에 도착했다. 호텔은 그 시에서 가장 큰 것 중 하나였다. 방 예약은 이미 돼 있었다. 네루 수상은 다음 날 저녁 샌프란시스코에서 연설하기로 되어 있었다. 강연 후에 요가난다는 그를 방문할 예정이었다.

  요가난다는 우리가 도착한 날 저녁, 내게 이런저런 심부름들을 바쁘게 시켰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차이나타운에서 점심을 먹기로 결심했다. 나는 베이 다리를 건너 차를 몰며 동시에 거리 지도를 보느라 애썼다. 마침내 나는 차이나타운으로 가는 길을 찾았다.

  우리가 좁은 언덕길을 오르고 내리는 동안 마스터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그가 한 레스토랑을 가리켰다. "저곳이 좋겠군. 우리가 먹어야 할 곳이 저곳이야." 그가 소리쳤다.

  레스토랑으로 들어선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레스토랑은 무척 붐볐다. 한 웨이터가 주문을 받기 위해 왔다. 마스터는 버섯을 곁들인 중국 야채 음식을 주문했다. 보통 이상의 엄격한 채식주의자가 된 마더 글로리아를 비롯해 우리는 모두 요가난다가 주문한 음식을 같이 주문했다.

  마침내 주문한 음식들이 왔다. 모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요가난다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쟁반들이 테이블 위에 내려지자마자 피가 얼어붙을 듯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마더 글로리아가 낸 소리였다. "아, 이런 여기 죽은 닭이 있어요. 보기도 싫어요. 어서 치워주세요!" 그녀가 또 째지는 비명 소리를 질렀다.

  나는 요가난다를 보았다. 요가난다가 당황해 하는 것을 본 것은 그 때가 유일하지 않나 싶다. 이제 레스토랑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 마스터는 테이블 아래로 나를 발로 차며 말했다. "먹어, 먹어!" 나는 내 음식과 닭을 모두 먹어치워야 했다!

  매니저가 우리 테이블로 다가와 무슨 잘못된 일이 있는 지 알아보려고 애썼다. 웨이터가 마더 글로리아의 쟁반을 치워갔다. 요가난다는, 우리가 야채만을 주문했지 고기를 주문하지는 않았다는 걸 설명하려고 애썼다. 마더 글로리아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차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게 낫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를 가게 둬. 가게 둬."

  요가난다가 속삭였다.

  우리는 계속 식사를 해 마쳤다. 나중에 마스터가 말했다.

  "이 일은 너에게 교훈이 될 거야. 다른 모든 사람들을 소화불량에 걸리게 만들고 그렇게 난리법석을 떠느니 고기를 먹는 게 나아."

  그날 밤 우리는 네루 수상이 연설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인도가 서구 테크놀로지를 절실히 필요로 하며 낡은 농법 때문에 식량 부족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연설 후에 우리는 네루의 호텔 방으로 갔다. 네루 수상은 이미 요가난다와 미국에서의 그의 사역에 대해 알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초대를 받았다. 네루 수상은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았다. 나는 매우 강한 영적인 에너지를 느꼈다. 요가난다와 네루 수상은 우리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적인 대화를 위해 거실로 향했다. 오래지 않아 그들이 돌아왔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서로 작별 인사를 했다.

  요가난다는 네루 수상을 와싱턴 산의 수도원 본부에 방문해 달라고 초청했다. 우리는 11시경에 호텔로 돌아왔다. 요가난다는 활기가 넘쳐 있었다. 그는 홀에서 내게 잘 자라고 인사했다.

  "너는 오늘 깊이 명상해야만 해. 그러면 신이 네게 강렬히 임할 거야."

  나는 침대 위에 연화좌 자세로 앉았다. 무릎 위에는 담요와 방석을 덮었고, 밑에는 베개를 깔았다. 나는 깊이 집중하였다. 그리고 "아버지, 아버지, 내게 당신을 나타내소서." 하고 반복했다. 나는 전에 마스터의 방에서처럼 신성한 영이 내게 임하는 것을 느꼈다.

  명상 속으로 깊이 들어가자 문득 내가 원형의 방에 있다는 걸 인식하게 되었다. 나는 태양과 같은 밝은 빛을 반사하고 있는 어떤 돔 아래 바닥의 한 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연화좌 자세인 채로 내 몸이 바닥으로부터 뜨는 것을 느꼈다. 나는 척추 위 아래로 움직이는 생명력 때문에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황홀경의 상태에 잠겼다.

  내가 다시 호텔 룸을 의식하게 되었을 때는 새벽이 되어 있었다. 나는 여전히 연화좌 자세로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침대 커버가 내가 깔고 앉았던 베개와 나란히 바닥에 놓여 있었다. 황홀한 에너지 파장들이 여전히 내 몸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내 머리 위 왕관 차크라로부터 척추 끝까지 소용돌이치며 내려갔다.

  내 육체가 정말로 공중 부양한 것일까? 나는 내 몸의 무게를 없앨 수 있는 힘을 느낀 것일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중 소용돌이 에너지의 존재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하나는 척추의 기저부를 통해 상승하였고 다른 하나는 머리의 왕관 차크라를 통해 하강하였다. 이 각성은 위대한 센터, 그리스도의 몸, 신성한 태양 로고스를 향한 내 귀향 여정의 시작이었다.

  다음 날 요가난다가 나를 보고 말했다.

  "내가 말했지, 신이 너에게 임할 거라고."

  나는, 내가 정말로 공중부양을 한 것인지 그에게 묻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아무튼 그것은 정말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그리스도의 우주력을 느꼈던 것이다!

  꿈속을 헤매는 듯한 상태에서 나는 간신히 차 뒷부분에 짐들을 실었다. 11시경에 우리는 본부로 향했다.

  요가난다는 낯선 장소에서 물건 사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마침내 우리는 피스모 해변에 이르렀다. 그가 애호하는 쇼핑 장소였다. 우리는 그와 같이 이 상점 저 상점 다니며 몇 시간을 보냈다. 그는 사람들을 위해 선물 사기를 무척 즐겼다. 그는 끊임 없이 선물들을 샀다.

  우리는 그날 밤 12시 경에 와싱턴 산에 도착했다. 3층으로 마지막 짐들을 나르고 나니 피로가 몰려왔다. 하지만 나는 이런 체험을 하게 되어 너무도 감사했다. 내게 있어서 이 며칠은 고도의 헌신과 사랑을 느낀 날들이었다. 내 앞에 어떤 일이 놓여 있는 지 나는 알지 못했다. 지금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파라마한사 요가난다와 모든 피조물들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인 신뿐이었다.

출처 : http://blog.naver.com/PostList.nhn?blogId=eyeinhand&categoryNo=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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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7년 5월 중순 어느 일요일 아침 나와 큰 가방을 실은 포드 차가 와싱턴 산 부지의 커다란 두 개의 철문 사이로 덜컹거리며 지나갔다. 나는 차를 세워 주차시켰다. 오래된 3층짜리 건물이 주변의 풍광 위로 우뚝 솟아 있었다. 나는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정면 계단을 올라 선 뒤 커다란 로비 안으로 들어갔다. 한 나이든 자매가 내게 다가오더니 용무가 무었인지 물어왔다.

  나는 대답했다. "파라마한사지께서 체류 제자로 여기서 살도록 저를 초대했습니다." 다소 놀란 기색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녀가 건물의 저편 끝에 자리한 큰 사무실을 향해 황급히 갔다. 이윽고 아래 지하층으로부터 계단을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저는 버나드입니다. 파라마한사지로부터 당신이 올 거라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일찍 오시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네요. 아무튼 여기서 우리와 함께 있게 되어서 기쁩니다." 버나드가 내게 악수를 청했다. "저를 따라 오세요."

  버나드가 계단을 내려가며 어깨너머로 말했다. "남자들은 일층을 비롯해서 여러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나는 그를 따라 층계를 내려갔다. 지하실은 창문 하나 없이 어두웠다. 홀 끝을 향해 걸어간 버나드가 꽤 큰 방의 불들을 켰다. 그곳은 커다란 식탁과 의자들이 놓인 작은 부엌이었다. 곁의 작은 방에는 욕조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보시다시피 제자 수사인 우리들은 여기서 누추하게 살고 있습니다." 버나드가 설명했다. 그리고 나서 그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저를 따라 오세요." 우리는 홀을 걸어올라 외부 입구로 갔다. 그곳은 메인 빌딩 뒤편의 넓은 주차 공간을 향해 열려 있었다. 버나드는 입구 바로 안쪽의 방에서 살고 있었다. 버나드는 그곳을 지나치며 손가락으로 자신의 방을 가리켰다.

  "자, 구경시켜 드릴 곳이 있어요. 오래된 케이블 카 건물로 가 봅시다. 아마도 당신은 그곳 룸에서 기거하게 될 거 같아요."

  케이블 카 건물은 한 때 공을 들여 지어졌다가 버려진 것이 틀림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방이 두 개 있었다.

  "자, 이것이 모두 당신 것입니다. 원한다면 수리해서 사용하도록 하세요. 목수일 같은 건 해본 적 있나요?" 버나드가 물었다.

  "예, 잘합니다."

  "회반죽과 치장 벽토 일은요?"

  나는 그 두 가지 일은 자신이 없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좋아요.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기꺼이 가르쳐 드리도록 하지요. 주 건물을 포함해서 이 곳 전체에 치장 벽토를 다시 발라야만 하겠어요." 버나드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그리고 당신 보아 하니 그 일에는 안성맞춤이겠는데요." 버나드는 농담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곧 충분히 그것을 알 수 있었다.

  방 하나에는 목재 벤치가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침대처럼 보였다.

  "저것은 요기 침대라고 불리는 겁니다." 버나드가 말했다. "스프링도, 매트리스도 없어요. 저 위에 담요 한 장 얹어놓고 곧게 몸을 뻗습니다. 익숙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해요. 하지만 당신은 곧 적응할 거 같네요."

  나는 그 방 안에 내 가방을 놓아두고는 버나드를 계속 따라갔다.

  "이리 오세요. 우리 인쇄소를 보여드리도록 하지요."

  건물의 동쪽 끝에 들어서자 기계 돌아가는 소음이 들려왔다. 한 방에 들어가자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키 큰 한 젊은이가 프레스 기계 곁에 서 있었다.

  "분!" 버나드가 소음 때문에 목소리를 높여 불렀다. "잠깐 이리 와봐!"

  그 젊은 사내가 미소를 지으며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노먼, 다니엘 분을 만나보세요. 그는 원조 다니엘 분(미국 켄터키의 개척자)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 조상으로부터 몇 세대 후손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맞지, 분?"

  "맞아요." 다니엘이 말했다.

  "자, 분,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여기 새로운 형제님이 오셨네." 버나드가 말했다. "이 형제님을 데리고 이곳저곳 구경시켜 드리고 다른 모든 수사들에게도 소개시키게."

  "알았어요, 버나드. 그럴게요." 다니엘이 대답했다. "따라오세요, 노먼. 우리 여기저기 둘러보도록 하지요."

  버나드는 하던 일을 마치기 위해 어디론가 서둘러 떠났다. 다니엘 분은 텍사스 출신이었다. 그는 텍사스 특유의 느린 말투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분은 낡은 테니스 코트를 가리켰다. 나중에 손을 봐야할 거 같았다. 다음 순간 우리는 정원 손질을 하는 한 남자와 마주쳤다.

  "이봐요, 진." 다니엘이 소리쳤다. "잠깐 이리 와봐요." 진이 작업하고 있던 화단에서 걸어나왔다. "진, 새로운 형제님 노먼 폴슨을 만나봐요. 이분은 이제 제자의 한 사람으로 우리와 함께 머물기 위해 오셨어요."

  진 호프트가 손을 뻗어 악수를 청했다. 진은 60이 가까웠고 약간 대머리였다. 그의 얼굴에는 진정한 미소가 함빡 피어 올랐다. 나는 진과 다니엘 모두 처음 보자마자 좋아졌다.

  분이 도로로 나왔다. "노먼, 저기 3층 동쪽 끝 창문들이 보이죠?"

  "예." 내가 대답했다.

  "저것이 파라마한사지가 거처하는 방의 창문입니다. 그는 지금 엔시니타스에 내려가 있어요. 엔시니타스는 우리 형제단 공동체가 있는 곳이죠. 아이들을 두고 있는 모든 기혼 커플들은 엔시니타스에서 살아요. 거기에는 네다섯 가족들과 새로운 형제들 몇이 같이 살고 있죠. 거기서 우리는 우리가 먹을 채소들을 모두 자급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나는 <어느 요기의 자서전>에서 엔시니타스의 사진들을 본 것이 떠올랐다.

  "형제님, 여기에는 해야 할 일들이 많아요." 분이 한숨을 쉬었다. "돈 한 푼 받지 않고 중노동 하는 걸 기꺼이 감수할 수 있어야 해요. 여기서 우리 모두는 삶을 주님께 바쳤어요. 남자들은 사적인 생필품 구입 명목으로 달마다 약간의 임금을 받아요. 옷은 기부를 받아요. 그러니 옷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요."

  나는 다니엘에게 어린 시절에 본 환영에 대해 말했다. 긴 머리, 크고 검은 눈에 '악당이 아닌 바바'.

  우리는 웃었다. "당신은 수염 기른 남자들을 ‘악당 바바’라 불러요?" 분은 정말로 관심이 있는 듯이 보였다.

  "예, 그래요."

  "바바가 힌두어로 ‘아버지’라는 뜻이라는 걸 알아요?"

  "예." 나는 요가난다의 자서전을 통해 그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분과 나는 항상 영적인 형제로 남아있다. 요가난다는 언젠가 우리에게 말했다. "너희 두 사람은 평생 친구가 될 거야."

  요가난다에게는 젊은 남자 수사들이 거의 없었다. 약 12명가량의 나이든 남자들과 여섯 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18세에서 30세 사이의 젊은 남자들은 거의 없었다. 당시 요가는 서구 세계에 알려져 있지 않았다. 대체로 우리 세대의 젊은 사람들은 자아수련을 통해 신을 발견하는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들은 그런 것에 흥미조차 갖지 않았다. 하물며 금욕을 통한 구도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음, 노먼, 파라마한사지는 업무 관계를 제외하고 우리가 수녀 자매님들과 얘기하는 것을 금하고 있어요. 여기 있는 우리들은 독신 수사들이에요. 사적인 정분을 나누어서는 안 돼요. 또 우리는 일 관계를 제외하고 수도원을 떠나서는 안 돼요."

  나는 이곳의 삶이 지극히 엄격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 달에 한 번 간단한 쇼핑을 위해 버나드가 우리를 시내로 데리고 갔다. 나는 그런 규칙들이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만일 요가난다가 그런 방식을 원한다면 그가 정해놓은 규칙들을 엄수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가 모든 아버지들의 아버지, 모든 어머니들의 어머니, 즉 신을 알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왔던 것이다. 그것이 여기에 온 나의 목적의 전부였다. 나의 목적은 신을 직접 만나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 유년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꿈이었다.

  나는 일하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나는 낡은 것들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기를 좋아했다. 나는 케이블카 건물 수리 작업을 시작했다. 창문과 문을 다시 세팅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새로운 치장 벽토 작업을 준비했다. 버나드가 와서 흙받기와 흙손 사용법, 시멘트 섞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처음에는 서툴렀다. 하지만 곧 손에 익기 시작했다. 마침내 나는 작업을 마쳤다. 주 건물과 매치시키기 위해 흰색 옷을 입혔다.

  2주가 흘렀다. 언제 요가난다를 보게 되지? 나는 그와 만나기를 갈망했다. 지금까지 버나드가 내게 홍소Hong-Sau라 불리는 간단한 명상 행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나는 크리야 명상법을 배우고 싶었다. 그것이 보다 빠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밤 8시 경이었다. 분이 내 방에 찾아왔다. "노먼, 파라마한사지 차가 방금 들어왔어. 그는 3층으로 올라갔어. 네가 올라오기를 바라셔."

 

  마침내 2주의 기다림 끝에 나는 그와 만나 이야기하게 된 것이다. 나는 로비로 가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3층에 이르렀을 때 한 젊은 자매가 나의 용무를 물었다.

  "요가난다 님이 불러서 왔습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왔어요."

  그녀가 홀의 동쪽 끝으로 걸어가더니 다른 자매에게 속삭였다. 그러고 나서 다시 돌아와 말했다. "따라 오세요."

  나는 거실로 들어갔다. 거기에 요가난다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잘 지내고 있나, 빅 보이Big Boy?"

  그가 물었다.

  나는 잘 지내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낡은 케이블카 집을 새로 수선했다고 말했다.

  그가 아주 진지하게 나를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너와 같이 명상하라고 신이 내게 말씀하셨어. 거기 앉아." 내가 앉자 그가 등을 껐다. "이제부터 조용히 반복해. '아버지, 아버지, 당신을 내게 나타내소서'라고. 버나드가 영안靈眼에 대해 가르쳐 주던가?"

  "예, 선생님. 제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좋아. 정신을 미간에 집중해. 그리고 조용히 반복해. '아버지, 아버지, 제게 당신을 나타내소서.'"

  나는 눈을 감고 반복하기 시작했다. 어려웠지만 나는 눈을 일점에 고정시키려고 노력했다. 어둠 속에서 나는 언구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몇 분이 흘렀다.

  갑자기 나의 내적인 시야 앞에 빛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두운 극장 안의 무대처럼 푸른 안개가 점점 밝아왔다. 각광처럼 보였다. 이전까지 캄캄한 어둠이던 곳에서 빛이 보였다. 확장해 퍼져가는 빛에 의식을 집중했다. 나의 부름은 신께로 향했다. 신의 존재가 감지되었다.

  하나의 링이 지극히 밝은 황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불덩어리들이 내 앞에서 실제로 불타오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황금빛 유체들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황금빛 불의 링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것은 불꽃이 아니라 불과 같았다. 그것은 내면의 원천으로부터 밖으로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석탄 같았다.

  여기 내 앞, 내적인 공간의 극장 안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빛 링이 떠다녔다. 나의 의식이 이 링의 중심에 고정되었다. 그 링은 터널처럼 저 멀리 오팔 빛 청색 안개 속으로 확장돼 갔다. 나는 터널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저 멀리서 휘황찬란한 백색 빛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였다. 나는 이 빛을 알고 있었다!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기억이 떠올랐다. "이것은 너의 천상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이다. 네가 찾는 것은 이제 네 앞에 있다. 그것은 너의 신성한 원천, 창조의 최초 빛,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 빛이 나를 손짓해 부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 빛이 자기를 향해 나를 끌어당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황금빛 터널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외부에서 소음 소리가 들렸다. 마스터 요가난다가 등을 켰다. 그리고 내가 본 것에 대해 물었다. 나는 눈을 뜨고 나의 체험을 설명했다.

  "아주 좋아. 이제 돌아가서 같은 방식으로 홀로 명상해. 너는 영안 속에서 그 빛을 꿰뚫어야만 해. 만일 성공한다면 그때 너는 신과 영원히 함께 하게 될 거야."

  그가 내게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그가 팔을 뻗더니 내 이마에 손을 댔다.

  "신은 너를 무척 사랑하고 계셔. 너는 이 삶에서 타인들을 돕는 큰 사역을 가지고 있어. 하지만 신중해야만 해. 자, 그만 가. 내가 너와 항상 함께 있다는 걸 알길 바래."

  나는 일어서서 방을 나왔다. 방금 일어난 일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출처 : http://blog.naver.com/PostList.nhn?blogId=eyeinhand&categoryNo=10

Posted by 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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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과 나는 알함브라 목재소에서 일자리를 찾아 일했다. 때는 1947년 4월 말엽이었다. 일자리는 괜찮았다. 화물차에 가득 실린 목재를 내리는 작업이었다. 우리는 매 주말마다 남부 해안에서 하역 작업을 했다. 장소는 주로 산타 모니카의 머슬 해변이었다.

  어느 일요일 아침 나는 내 삶에서 어떤 특별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감을 가지고 잠에서 깨었다. 어떤 긍정적인 방향이 발견될 것임에 틀림 없다는 인식이 들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그게 올지는 알 수 없었다.

  존과 나는 그날 아침 해안가로 내려가기로 했다.

  "잠시 멈춰. 에드 스미스 노인을 만나보고 가지."

  존이 말했다.

  우리는 차고에 살고 있는 에드를 발견했다. 그는 우리를 보고는 반가워했다. 그리고는 마을의 온갖 새 소식들을 우리에게 쏟아 붓기 시작했다.

  그는 베니스가街에 살고 있는 한 예술가를 만났다. 에드는 그의 예술품이 지극히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 화가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오호, 에드 스미스의 초상화라!"

  우리는 모두 웃었다. 존은 흥미가 동했다.

  "에드, 그가 내 초상화도 그려줄까요?"

  "음, 아마 그려줄 거야." 에드가 대답했다. "하지만 돈이 좀 들겠지."

  "그 사람 좀 만나고 싶은데요. 그의 거처에 갈 수 있을까요?"

  존이 잔뜩 기대를 가지고 물었다.

  "물론이지." 에드가 말했다. "그는 집에 있을 거야. 그는 해안가 우측에 살고 있어."

  존과 나는 에드를 뒷좌석에 태우고 차를 몰았다.

  "자, 베니스를 향해 한껏 밟아 보자구." 

  에드가 소리쳤다.

  나의 직관은 아침에 느꼈던 예감을 타고 벌써 작동하고 있었다. 나는 오늘 이 화가와의 만남이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놓게 되리라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의 집에 가까워갈 수록 나의 기대는 한껏 더 부풀어갔다. 그래, 어떤 큰 사건이 내게 벌어지려 하고 있다. 내가 올바른 결단을 내리게 될까?

  "다음 모퉁이를 돌아서면 되네." 에드가 소리쳤다. "길가 끝에 그의 집이 있어."

  작은 오두막이 대양을 바라보며 모래 위에 앉아 있었다. 나는 집 앞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차에서 내려 문 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에드가 벨을 눌렀다. 집안에서 종소리 음악이 흘러나왔다. 문이 열렸다. 50대 후반의 숱이 적은 회색 머리 사나이가 나타났다.

  "하이, 에드." 그 남자가 말했다. "보아하니 친구들을 데리고 온 모양이군요."

  "그..그래요." 에드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스토이츠, 내 오랜 친구 두 명을 소개하고 싶어요. 여기, 존 윈십과 노먼 폴슨. 이 친구들이 당신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내가 이 두사람한테 당신에 대해 말을 했죠."

  "그래요? 들어오세요."

  스토이츠가 우리를 집안으로 초대했다.

  내가 앞문을 지나 집안으로 들어서자 불안감이 닥쳐왔다. 온갖 종류의 유화들로 뒤덮인 벽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응접실 끝에 유명한 발레 무용가 파블로바의 초상화가 있었다. 스토이츠는 그 그림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그림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말했다. 그 그림은 한 쪽 벽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다. 힌두 여신의 옷을 입은 모습의 파블로바가 그려져 있었다. 그녀는 아름다웠다.

  스토이츠는 우리에게 의자를 건넸다. 의자에 앉으면서 우연히 나의 시선이 커피 탁자로 향했다. 내 눈에 어떤 책의 커버가 들어왔다. 그런데 거기에 오래전 어린 시절 본 환영 속의 사람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물기 젖은 두 개의 커다란 눈망울, 기다란 검은 머리카락. 바로 그였다! 내 삶 속에서 종종 보아온 그의 실제 사진이 여기에 있다니! 진짜였던 것이다. 환영 속의 그 사람은 실제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나는 책을 향해 다가갔다. 갑자기 꿈속을 헤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제 정신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이 사람은 누구에요?"

  "파라마한사 요가난다입니다." 스토이츠가 대답했다. "그 책은 그 분의 자서전이에요."

  나는 다시 이렇게 묻고 있었다.

  "그는 어디 살고 있죠?"

  "바로 여기 로스엔젤레스에 살아요. 그는 로스엔젤레스 북쪽 하일랜드 공원 산 위에 수도원을 가지고 있어요."

  그 책의 제목은 '어느 요기의 자서전(Autobiography of a Yogi)'이었다. 나는 요가나 요기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저 얼굴과 눈을 알고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그 책의 커버 안에 적힌 주소를 적었다. '자아실현회(SRF).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스 산 라파엘가街 3880.' 그러고 나서 나는 스토이츠에게 여러 질문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열정적으로 대답해 주었다.

  그는 요가난다의 많은 강연에 참석했고 와싱턴 산의 수도원에 수차례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한 번은 그가 요가난다와 만나려고 애썼지만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마당에 내게 있어서는, 오로지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막 바로 와싱턴 산으로 가는 것. 나는 그를 당장 만나야만 한다는 걸 직감했다. 존을 포함하여 방 안에 있던 누구도 나의 내적인 체험의 깊이를 알지 못했다. 나는 이미 요가난다의 영과 접촉하고 있다고 느꼈다. 시간은 중요했다. 나는 서둘러 가야만 한다!

  무례하게 보이지 않도록 노력하며 나는 방안의 사람들에게 이 분을 오늘 찾아가야만 한다고 설명했다.

  "지금?"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존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 이런, 가봐, 노먼. 여기서 에드와 함께 있을게. 내일 나를 데리러 와."

  스토이츠는 어떤 이상한 일이 내게 벌어지고 있다는 걸 이해하는 듯 보였다. 그가 나를 문가까지 배웅해주었다. 나는 작별 인사를 하고는 차를 탔다. LA로 차를 몰며 나는 마침내 나의 가야할 길을 발견했다는 걸 알았다. 환영 속에 본 그 검은 눈망울의 사람이 지금 실제로 존재한다니! 내가 만나기로 운명 지어진 이 특별한 사람이 이제 내 삶에 들어 온 것이다.

  나는 곧장 하일랜드 공원으로 차를 몰았다. 지도를 찾아보니 산 라파엘가街는 LA를 내려다 보는 와싱턴 산 정상에 있었다.

 

  와싱턴 산 정상에 있는 SRF 본부

  나는 마침내 와싱턴 산 부지 입구에 도착했다. 나는 차를 주차시킨 뒤 철문을 열었다. 나는 종려나무들이 양 옆으로 늘어선 길을 따라 걸었다. 눈앞에 호텔처럼 보이는 커다란 3층 건물로 향했다. 도로를 따라 계속 올라가 정문 앞 계단에 이르렀다. 정문에 도착하자 한 나이 지긋한 여성이 나를 반기며 도와줄 일이 있는 지 물었다. 나는 파라마한사 요가난다를 만나기 위해 여기에 왔다고 대답했다.

  "아, 예." 그녀가 말했다. "약속을 하셨나요?"

  "아니오." 내가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분을 지금 당장 뵈어야만 합니다. 그분께 드릴 말씀이 많아요."

  "글쎄요, 그건 불가능할 거 같은데 어쩌죠? 그분의 약속 일정은 몇 달치 미리 예약돼 있어요."

  "하지만 그분을 뵐 어떤 방법이 분명 있을 겁니다." 내가 고집을 부렸다.

  나는 그날 그의 책을 보게 된 경위를 말했다. 그녀가 내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그(그녀는 요가난다를 파라마한사지라고 불렀다. 지ji는 존칭형 접미사이다.)가 다음 일요일 헐리우드에 있는 SRF(자아실현회)의 교회에서 설교를 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뿐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어디서 <어느 요기의 자서전>을 구입할 수 있는 지 물었다. 그리고는 마지못해 떠나왔다.

  나는 다음 한 주 동안 일을 하면서 동시에 틈틈이 그 책을 읽으며 보냈다. 그 책은 낯선 힌두 용어들 때문에 내가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웠다. 그리고 나는 요가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한 상태였다. 존은 내가 틀림없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난데없이 어떤 요기가 쓴 책을 공부하고 있으니 말이다. 1947년 당시, 일반인들에게 힌두 요기들에 대한 것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존이 뭐라고 한다고 해서 물러설 내가 아니었다.


                               헐리우드의 SRF 교회

  마침내 일요일 아침이 다가왔다. 나는 일찍 출발하여 10시 경에 헐리우드의 SRF 교회에 도착했다. 작지만 아름다운 사원에 도착했을 때 긴 여운을 남기는 파장이 강렬해졌다. 거기서 한 자매님이 만일 이번이 첫 방문이면 방명록에 사인을 해달라고 내게 부탁했다.

  "오늘 요가난다 선생님을 친견할 수 있나요?"

  "아니오. 예약돼 있지 않으면 불가능해요."

  그녀가 대답했다.

  나는 그녀의 말에 순응했다. 어차피 어떻게든 오늘 그를 볼 수는 있기 때문이다. 나는 되도록 앞쪽 통로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작은 사원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오르간 연주가 시작되었다. 거기 앉아 있는 데 갑자기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마침내 휘장이 열렸다. 그리고 거기에 길고 검은 머리카락을 어깨에 늘어뜨린 파라마한사 요가난다가 오렌지 색 법복을 입고 서 있었다.

  나는 눈에 힘을 한껏 준 채 그의 눈을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그가 나를 쳐다보았다. 우리는 서로의 눈에 시선을 고정한 채 에너지를 교환했다. 나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는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설교 내내 나를 쳐다보았다.

  설교가 끝나자 모든 사람들이 일어서서 성가를 불렀다. 서서히 휘장이 닫히고 사람들은 일어서서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나는 밖으로 나와 베란다를 거닐었다. 베란다는 연단의 측면 입구로 이어졌다. 선약을 한 사람들이 거기서 요가난다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안쪽 문이 열렸다. 스크린 도어를 통해 그가 보였다. 그는 나를 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스크린 도어가 열리고 한 자매님이 밖으로 나와 나를 향해 걸어왔다.

  "실례합니다." 그녀가 말했다. "파라마한사 요가난다와 상담하려고 기다리고 있나요?"

  "예. 하지만 예약을 하지 못했습니다."

  "예약이 없어도 상관 없어요. 파라마한사지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면담하기를 원하는 지 당신에게 물어보라고요. 기다릴 수 있나요?"

  "아, 예! 예! 기다릴 수 있고 말고요!"

  "좋습니다. 그에게 말씀드리도록 하지요." 그 자매님이 돌아서서 안쪽으로 사라졌다.

  예약된 사람들이 하나 둘 차례로 연단 뒤의 방으로 불려갔다. 나는 앉아서 기다렸다.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억누르느라 혼났다. 마침내 자매님이 나를 손짓해 불렀다. 나는 계단을 올라 방안으로 들어갔다.

  요가난다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그가 나를 곧바로 쳐다보았다. 우리의 시선은 다시 한참 동안 고정되었다. 이윽고 그가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나는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그의 곁에 무릎을 꿇고 앉자 다시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가 나를 가까이 끌어당기며 말했다. "나의 거인이 돌아왔구나. 얼마나 빨리 올 수 있지?"

  나는 눈을 감았다. 시간이 뒤로 거슬러 올라갔다. 색색의 많은 생들이 파노라마처럼 나의 내적인 환영 앞에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우리는 전생에 숱하게 많이 함께 있어왔다. 우리는 어둠의 영들과의 투쟁에서 전사처럼 서로의 곁에서 일하고 건설하고 싸워왔다.

  (저자주: 수년 후 요가난다는 나를 '돌아온 거인'이라고 부른 이유에 대해 말해 주었다. 요가난다는 전생에 정복자 윌리엄이었다. 나는 환시 속에서 윌리엄 왕이 잉글랜드를 정복한 싸움인 헤스팅스 전투를 보았다. 그 전투에서 나는 그의 곁에 있었다. 나는 그가 말 위에 걸터앉았을 때 곁에 서서 바로 그의 눈을 마주볼 수 있을 만큼 등치가 컸다. 나는 거대한 도끼를 지니고 다니며 그의 곁을 지켰고, 그래서 당시에 누구도 그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었다.)

  "사랑하는 벗이여, 마침내 우리가 다시 만났군. 또 다른 시간, 또 다른 공간에서." 말없는 말들이 우리 사이에 오갔다. 다시 그가 입을 열었다.

  "얼마나 빨리 올 수 있지?"

  나는 그 말의 의미가 자기 곁에 머물라는 것임을 알았다.

  "내일요, 선생님."

  내가 대답했다.

  "좋아! 좋아!"

  그가 나를 포옹했다. 마치 아빠나 엄마가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아들을 포옹하듯이.

  "널 기다리고 있으마. 자 서둘러."

  나는 돌아서서 방을 나왔다. 적어도 15명에서 20명 가량의 사람들이 우리의 재회를 지켜보았다. 어떤 이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존의 집에 있는 내 방에 돌아왔을 때 나는 마치 꿈속을 헤매고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얼마 안 되는 나의 소지품들을 살핀 뒤 다시 가방을 쌌다.

  이제 나는 존과 그의 부모에게 애써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내가 어디로 가려 하는지, 그리고 SRF의 수도원에서 수사修士로 살려는 계획 등. 당연히 그들은 모두 내가 갑자기 정신이 나가서 어떤 미친 요기와 살러 간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간의 배려와 도움에 대해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리고 언젠가 그들이 나를 이해해 주리라 기대했다.

  나는 알함브라를 향해 차를 몰았다. 그리고 그날 밤 차 안에서 잠을 잤다. 다음 날 아침 나는 고용주에게 내가 떠난다는 사실을 알리고 그간의 임금을 받았다. 그때까지 나는 아버지한테 내 앞에 펼쳐진 이 새로운 사실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착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결심했다. 그리고는 요가난다가 있는 와싱턴 산을 향해 차를 몰았다. 내 인생의 여로에 있어서 나는 분기점에 이르렀다. 이제 내 앞에 새로운 방향과 목적이 놓여 있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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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나는 요가난다의 미국 시절이 궁금하곤 했었다. 그는 인도에서 산 날보다 미국에서 산 날이 더 많다. 그런데 요가난다 자서전을 보면 대부분 인도에서의 구도 과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요가난다 자신이 미국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났고 어떤 과정을 거쳐 SRF를 창설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후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언급이 없다.

  요가난다는 어떤 식으로 제자들을 제접했고, 그 제자들은 또 어느 정도의 영적인 성취를 이루어냈을까? 이 문제는 배경이 인도가 아닌 서양이라는 점에서 좀 더 특별한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내 생각에, 이런 궁금한 점들을 가장 잘 알 수 있는(풀 수 있는) 대표적인 통로가 노먼 폴슨이라고 여겨진다.

  요가난다 자서전을 보면 육체적 사후의 부활에 대한 얘기들이 종종 언급된다. 라히리 마하사야의 부활, 유크테스와르의 부활 등. 수천 년 전 예수 같은 구세주나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부활의 기적을 근현대의 크리야 스승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시현해 보였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가능성이 어느 정도까지인가, 몸서리 쳐지도록 경이로웠던 기억이 새롭다. 어떤 의미에서 부활은 크리야 요가의 막강한 초월적 힘을 세상에 보여주는 예로써 요가난다가 일부러 사용한 이야기 도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즉 영적인 무지 속에 잠들어 있는 세상 사람들을 일깨우는 강력한 충격 요법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요가난다 자신의 경우는 어떠했을까? 자서전의 말미에는 요가난다가 사후에 시신이 썩지 않는 기적을 보였다는 얘기만이 언급된다. 하지만 실제로 요가난다도 부활했었다. 그는 사후에 부활하여 자신의 제자 몇몇에게 나타남으로써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본래 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그가 사후에 부활하여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 보인 극소수 제자들 중의 한 명이 노먼 폴슨이다. 그만큼 그는 노먼 폴슨을 각별히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서양의 제자로서 이론이 아닌 실제적 체험으로 크리야 요가의 가치를 세상에 생생히 보여준 이는 노먼 폴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다른 여러 크리야 요기들이 있지만 일반인에게 크리야 요가를 통한 영적인 깨달음의 과정을 이렇게 알기 쉽게 알려준 이도 드물기 때문이다. 그의 글에는 이론이 거의 없다. 오로지 체험만을 담을 뿐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크리야 요가의 세계를 알리는 첫 인물로 노먼 폴슨을 선택했다. 그를 통해 먼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가장 쉽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노먼 폴슨과 그의 유년시절

  노먼 폴슨(Norman Paulsen. 미국 산타바바라 태생. 1926-2006)은 요가난다의 직제자 중 한 명으로, 한 때 SRF의 수사였다. 그는 나중에 SRF로부터 나와 선버스트 공동체를 창설하였다. 1969년 설립된 선버스트 공동체의 정식 명칭은 ‘선버스트 성소Sunburst Santuary’이다. 

 

  노먼 폴슨은 어릴 때부터 영적인 성향이 강했다. 여섯 살 때 할머니와 함께 도서관에 갔다가 거기서 그는 멜기세덱의 환영을 보게 된다. 당시 그는 어린이 도서 룸에서 할머니가 그를 위해 골라준 책들 중 한 권을 읽고 있었다. 할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두건 달린 흰 수도사 복장의 한 존재가 어린 노먼에게 나타났다. 머리를 온통 덮고 있는 두건 아래로 빛나는 눈빛의 노인이 그를 고요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작은 책 한 권을 어린 노먼에게 주면서 말했다. “노먼, 이것이 네 것이다. 가져라. 너를 위한 책이다. 그리스도의 신약 성경이야.” 어리벙벙한 노먼의 귀에 멀리서 할머니가 그를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노먼은 생각했다. “가야만 해. 할머니가 나를 찾고 있군.” 그가 할머니에게 가서 방금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할머니와 도서관 사서는 이상하다는 듯 서로 쳐다보았다. 거기에 그런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랑 사서와 함께 다시 그 룸에 가보았지만 그 노인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 노인도 없었고 책도 없었다.

 

  당시 어린 노먼은 신을 직접 보고 싶은 열망에 사로 잡혀 있었다. 어느 날 그는 할머니에게 이제까지 신을 직접 본 사람이 누가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모세가 보았다고 대답했다. 그 후 그는 자기도 반드시 모세처럼 신의 얼굴을 직접 보고야말겠다고 굳은 다짐을 하게 되었다.

  이 무렵 어린 그의 눈에, 미소 지으며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한 존재의 환영이 보이곤 했다. 세월이 흐른 뒤 그는 그 존재가 바로 요가난다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성장하여 해군에 입대하게 된다. 그가 요가난다를 만나게 된 것은 해군에서 제대한 뒤 친구 존 윈십과 같이 살면서 일을 할 때였다. 이제 자서전 <그리스도 의식 Christ Consciousness>에서 노먼 폴슨 자신이 직접 들려주는 그의 구도와 깨달음의 과정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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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야 요가의 세계

 

들어가는 글

 

  내가 요가난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고2 때였다. 아마 현충일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공휴일이었기 때문에 무작정 집에서 나와 한가하게 도로를 따라 산책하고 있었다. 그러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평소에 내가 종종 들르곤 하던 헌책방에 자연스레 들어가게 되었다.

  뭐 새로 들어온 중고 책이 없나, 하고 서가를 훑다가 <명상 365일>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당시 왠지 ‘명상’이라는 단어에 끌리던 때라 호기심에 꺼내 들었다.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말 그대로 1년 365일, 날짜 별로 영감에 넘치는 문구들이 적혀 있는 다이어리 형식의 책이었다.



  책 서두에 저자 ‘요가난다의 생애’가 예닐곱 페이지에 걸쳐 소개돼 있었다. 나는 서가 앞에 선 채로 그 글을 읽었다. 짧은 글이었지만 정말 놀라웠다. 이제까지 내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초자연적인 세계가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 아닌가!
나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뭔가 찾아야 할 것을 찾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얼른 돈을 지불한 뒤 집으로 오는 발길을 재촉했다. 집에 오자마자 나는 책을 펼쳐 영감어린 구절들을 읽어나갔다. 짧은 글이었지만 힘이 느껴졌다. 나의 영혼이 순식간에 고양되는 느낌이었다. 하늘로 수직 비상하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 후 나는 책에 실린 요가난다의 사진을 보고 또 보는 습관이 들었다. 정말 특이했다. 깨끗이 면도된 얼굴에 웨이브지게 머리를 길게 기른 모습 속에서 남자도 여자도 아닌 중성적인 묘한 분위기가 풍겨나왔다. 요즘은 남자들이 머리를 길게 기르는 걸 종종 볼 수 있지만 당시만해도 아주 특이한 모습이었다.

  왠지 목소리도 여성처럼 맑고 낭랑할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요가난다의 실제 목소리를 듣고는 환상이 팍 깨졌다는 거 아닌가. 뭐 당시로서는 요가난다의 모습을 접한 게 달랑 그 사진 한 장 밖에 없었으니 그런 선입견을 가질 만도 하긴 했다.

  아무튼 나는 나중에 요가난다의 자서전을 서점에서 보게 되었지만 일부러 사지 않았다. 아니 사기가 좀 두려웠다. 왜냐하면 그의 생애 전부를 낱낱이 알게 되면 왠지 실망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에 대해 짧게 알고 있는 지금 이대로가 좋았다. 그냥 나만의 환상 속에 살고 싶었다.

  몇 개월이 흘러 걱정반 기대반의 심정으로 그의 자서전(당시 제목은 <구도자 요가난다>)을 사서 읽게 되었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실망하게 될까봐 읽지 않는다는 건 이성적으로 볼 때 말이 되지 않는 얘기니깐. 그러나 기우였다. 이걸 읽지 않았으면 정말 큰 일 날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좋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막연히 상상했던 그 모든 것 이상이었다.

  그 후로 나는 이삼년 동안 요가난다에 푹 빠져서 지냈다. 그의 자서전을 읽고 또 읽었다. 아무리 반복해서 읽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당시에 그 책은 내게 성경과 동급의 책이었다.

  그 책을 읽을 때마다 내가 마치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인도의 갠지스 강가에 앉아 이글거리는 불덩이처럼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아침 명상을 하는 듯 신선한 감동에 젖고는 했다.

  대학에 입학해서는 SRF에 가입하여 정식으로 통신 레슨을 받게 되었다.

  여름 날 저녁 뜨듯하게 덥혀진 옥상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명상하면서 왠지 모를 그리움에 울컥하기도 했다. 언젠가 한 번은 SRF에 편지를 보내면서 'I pine for you.'라는 글을 써 보내기도 했다. 그때 영작을 하면서 ‘애타게 그리워한다’는 뜻의 동사 pine이 명사 소나무(pine)와 같다는 사실에 신기해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당신을 향한 소나무다.’ 어원적으로야 다른 계열이겠지만 그리움을 나타내는 정말 시적인 표현이라는 생각에 굳이 그 표현을 사용했었다.

  나중에 나의 관심이 오컬트와 그 밖의 여러 형이상학 분야로 확장되면서 나는 SRF에게 늘 푸른 상록수인 소나무가 되지는 못했다. 이런저런 분야의 영적인 색깔로 나의 모습은 가을날의 단풍처럼 날로 알록달록해져만 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가난다가 내게 남긴 영적인 충격은 영원히 남겨지게 되었고, 그 후로도 크리야 요가의 세계에 대해 항상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이 글들은 아마도 그 결과물이 아닌가 한다. 

- 조하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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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야 요가 계보

 

* 마하바타르 바바지



  1861년, 마하바타르 바바지가 고대 크리야 요가 행법을 라히리 마하사야에게 전수함으로써 크리야 요가의 법맥이 현대에 이어지게 되었다.

 

* 라히리 마하사야 Lahiri Mahasaya(1828 - 1895)



크리야 요가의 초조初祖.

 

* 라히히 마하사야의 제자들

1. 판차난 바타차리야 Panchanan Bhattacharya

2. 스와미 마하비르 Swami Mahabir

3. 스와미 케발라난다 Swami Kebalananda

4. 스와미 프라나바난다 Swami Pranabananda

5. 브라마차리 케사바난다 Brahmachari Kesavananda

6. 틴코리 라히리 Tinkori Lahiri (라히리 마하사야의 장남. 1863생.)

7. 두코리 라히리 Dukori Lahiri (라히리 마하사야의 막내 아들. 1865생.)

8. 스와미 스리 유크테스와르 Swami Sri Yukteswar (1855 - 1936)

9. 브라잘랄 아디카리 Brajalal Adhikari

10. 프라스드 다스 고스와미 Prasad Das Goswami

11. 칼리 쿠마르 바네르지 Kali Kumar Banerjee

12. 케사브 찬드라 바네르지 Kesav Chandra Banerjee

13. 람 다얄 마줌데르Ram Dayal Mazumder

14. 하리 나라얀 팔로디 Hari Narayan Palodhi

15. 부펜드라나스 산얄 Bhupendranath Sanyal (1877-1962)

16. 브라잘랄 아디카리 Brajalal Adhikari [Nadia, West Bengal]

17. 조이람 바타차리야 Joyram Bhattacharya

18. 라마루파 바타차리야 Ramarupa Bhattacharya

19. 카일라쉬 찬드라 베네르지 Kailash Chandra Benerjee

20. 칸티 아차리야 Kanti Acharya

 

판차난 바타차리야의 제자들

1. 스리스 무케르지 Sris Mukherjee

2. 나겐드라나스 초우두리 Nagendranath Choudhuri

3. 하리 모한 판도파드야야 Hari Mohan Bandopadhyaya

4. 보디사타 바타차리야 Bodhisatta Bhattacharya

5. 바만 다스 반도파드야야 Baman Das Bandopadhyaya

6. 슈리 네타이차란 바네르지 Shri Netaicharan Banerjee

7. 아드야나트 로이 Adyanath Roy

8. 시바모야 바타차리야 Sibamoya Bhattacharya

9. 니타이 차란 반도파드야야 Nitai Charan Bandopadhyaya

10. 슈리 다르멘드라 바트스 Shri Dharmendra Vats

  

스와미 케발라난다의 제자들

1. 판치코리 데 Panchkori De

2. 틴코리 데 Tinkori De

 

스와미 프라바난다의 제자들

1. 즈나넨드라 나트 무케르지Jnanendra nath Mukherjee

2. 브라마차리 사난다 Brahmachari Sananda

 

브라마차리 케사바난다의 제자들

1. 스와미 사트야난다 Swami Satyananda

2. 스와미 니트야난다 Swami Nityananda

3. 스와미 비드야난다 Swami Vidyanada

 

틴코리 라히리의 제자들

1. 타라 차란 라히리 Tara Charan Lahiri

2. 사트야 차란 라히리 Satya Charan Lahiri

3. 아바야 차란 라히리 Abhaya Charan Lahiri

4. 바나말리 라히리 Banamali Lahiri

 

두코리 라히리의 제자

1. 아난다 모한 라히리 Ananda Mohan Lahiri

 

스와미 스리 유크테스와르의 제자들

1. 모틸랄 무케르지 Motilal Mukherjee (1885-1992)

2. 스와미 사트야난다 Swami Satyananda

3. 파라마한사 요가난다 Paramahansa Yogananda (1893 - 1952)

4. 스와미 바바난다 Swami Bhabananda Giri (1894-1984)

5. 스와미 파라마난다 Swami Paramananda

6. 스와미 나라야난 Swami Narayana

7. 아물리야 차란 산트라 Amulya Charan Santra

8. 비조이 쿠마르 차테르지 Bijoy Kumar Chatterjee

9. 비핀 찬드라 부미아 Bipin Chandra Bhumia

10. 스와미 디라난다 Swami Dhirananda

11. 스리 사이렌드라 베조이 다스 굽타 Sri Sailendra Bejoy Das Gupta

12. 골라카난다 기리 Golakananda Giri

13. 다사라티 차테르지 Dasarathi Chatterjee

14. 네드 왈레르 Ned Waller

 

하리나라야나 팔로디의 제자

1. 비나파니 데비 Binapani Devi(팔로디의 손녀)

 

부펜드라나트 산얄의 제자들

1. 니킬 데이 Nikhil Dey

2. 사일렌드라나트 무케르지 Sailendranath Mukherjee

3. 즈왈라 프라사드 티와리 Jwala Prasad Tiwari

4. 수닐 쿠마르 고쉬 Sunil Kumar Ghosh

5. 스리 기리자파티 Sri Girijapati

6. 카쉬파티 산얄 Kashipati Sanyal

 

사트야 차란 라히리의 제자들  

1. 사일렌드라 샤르마 Shailendra Sharma

2. 아쇼케 쿠마르 차테르지 Dr. Ashoke Kumar Chatterjee

3. 쉬벤두 라히리 Shibendu Lahiri

 

모틸랄 무케르지의 제자들

1. 트리푸라리 하르 Tripurari Har

2. 브라마차리 아닐라난다 Brahmachari Anilananda

 

스와미 사트야난다의 제자들

1. 스와미 수다난다 Swami Sudhhananda

2. 스와미 하리하라난다/우샤난다 Swami Hariharananda/Ushananda

3. 스와미 디라난다 Swami Dhirananda

4. 스와미 니란자난다 Swami Niranjanananda

5. 스와미 자가다난다 Swami Jagadananda

6. 스와미 스티예스와라난다 Swami Satyeswarananda Giri

 

파라마한사 요가난다의 제자들 

1. 스와미 아트마난다 Swami Atmananda

2. 스와미 세바난다 Swami Sevananda

3. 스와미 사다난다 Swami Sadananda

4. 스와미 비나야난다 Swami Binayananda

5. 스와미 비드야난다 Swami Bidyananda

6. 스와미 사치다난다 Swami Satchidananda

7. 스와미 프레마난다 Swami Premananda

8. 스리마티 카말라 Srimati Kamala

9. 페기 디츠 Peggy Deitz

10. 도날드 월터스(스와미 크리야난다) J. Donald Walters

11. 스와미 하리하라난다 Swami Hariharananda (1907 - 2002)

12. 로이 유진 데이비스 Roy Eugene Davis

13. 스와미 자나카난다 Swami Janakanada

14. 스리 다야 마타 Sri Daya Mata

15. 노만 폴슨 Norman Paulson

16. 그밖의 SRF와 YSS의 미니스터들

 

스와미 바바난다의 제자

1. 스와미 사다난다 Swami Sadhanananda Giri

 

즈왈라 프라사드 티와리의 제자들 

1. 쉬리마티 찬드라칸타 아가르왈라 Shrimati.Chandrakanta Agarwala

2. 파드마칸트 타쿠르 Padmakant thakur

3. 인드라나트 차크라보르티 Dr Indranath Chakraborty

4. 수닐 쿠마르 고쉬 Sunil Kumar Ghosh

 

스와미 하리하라난다/우샤난다의 제자들  

1. 스와미 자나난다 Swami Jnanananda

2. 브라마차리 부바네스와라난다 Brahmachari Bhubaneswarananda

 

스와미 아트마난다의 제자들 

1. 스와미 스라다난다 Swami Sradhhananda

2. 스와미 브라마난다 Swami Brahmananda

 

스와미 하리하라난다의 제자들  

1. 스와미 프레마난다 Swami Premananda

2. 스와미 아트마난다 파라마한사 Swami Atmananda Paramahansa

3. 스와미 샹카라난다 Swami Shankarananda Giri

4. 파라마한사 프라즈나난다 Paramahamsa Prajnananda

5. 스와미 슈다난다 Swami Shuddhananda Giri

6. 스와미 브라마난다 Swami Brahmananda Giri

7. 스와미 비드야디샤난다 Swami Vidyadhishananda Giri

8. 스와미 사르베스와라난다 Swami Sarveshwarananda Giri

9. 스와미 망갈라난다 Swami Mangalananda Giri

 

  * 우리나라에 크리야 요가가 소개된 것은 1980년대 초반, 요가난다의 자서전을 통해서이다. 그래서 ‘크리야 요가’ 하면 먼저 요가난다가 창설한 SRF를 떠올리게 된다. 물론 오늘날 크리야 요가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가장 활발한 조직이 SRF임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크리야 요가는 SRF 외에도 다른 여러 크리야 계보 조직들을 통해 세계에 알려지고 있다. 여기서 이제 크리야 요가의 다양한 세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출처 : http://blog.naver.com/PostList.nhn?blogId=eyeinhand&categoryNo=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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