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2월 4일 스스로 있는 자(I AM THAT I AM)에 대한 놀라운 체험을 통해 나는 꿈같은 황홀경에 빠졌다. 나는 3차원 질료의 환영적 껍질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내부로부터 그 환영을 지탱하는 빛의 입자들을 볼 수 있었다.

  이 최근의 계시를 통해 모든 외부 형상들은 내게 있어서 마치 영화 세트와 같은 비실재성을 띠었다. 내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마치 자신의 대본에 몰입해서 일시적으로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망각하고 있는 영화배우들처럼 느껴졌다. 그렇다. 지구는 사실상 하나의 무대였다. 인생의 드라마가 계속 연출되고 있는 무대.

  드라마 속에서 영적으로 계명된 배우의 역할은 다른 배우들을 영적으로 계명시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자기 내면의 순수 자아, 그리스도를 망각하였을 때 고통이 실제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인생을 빛과 그림자의 일시적인 놀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이곳 지상에서의 인생의 드라마를 즐길 수 있다.

  고대의 황금시대에 펼쳐진 연극은 환희에 찬 사건들이었다. 우리는 삶의 무대인 이 세상을 파괴하지 않고 우리의 신성한 유산인 그리스도 의식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해야만 한다. 우리는 오늘날 신성한 극작가(신)에 대한 반역을 목도하고 있다. 그 반역은 종국적으로 재앙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인류는 다른 대본을 쓸 능력도 시간도 없다.

  신성한 어머니-아버지와의 합일에 대한 체험의 영향 때문에 나는 잠시 동안 전화회사에서의 일을 그만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육체가 여러 가지로 불편하게 느껴졌다. 신성한 지침에 반하는 물질계의 거칠고 시끄러운 환경을 참아내기가 어려웠다. 이방인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고 할까. 나의 세대는 신성한 일루미네이션(깨달음)을 추구하는데 전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일부는 지적인 측면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이상 더 나아가기를 원치 않는다. 이제 나는, 마스터 요가난다가 세상에 세계 형제 공동체를 실현시키지 못한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에게는 그것에 참여할 배우들이 부족했던 것이다.

  형제 공동체에 대한 꿈을 실현시킬 시간이 다음 세대와 그 후손들에게 다가오게 될 것이다. 나는 거의 20년을 기다려야만 했다. 나는 무엇을 해야만 하지? 나는 전에 체험했던 신성한 영과 무시無時의 영원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을 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내 앞에 나타나 말하는 것이었다. "만일 네가 지금 신성한 영 속으로 들어가 버리면 너는 이 삶 속에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신성한 의지가 내 위에 작용하고 있었다. 도망칠 도리가 없었다. 나는 사람들의 고통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야만 했다. 어떻게 하면 외적인 물질과 오감에 대한 집착을 부술 수 있을까? 그것은 외부 사물보다 우리 내면의 그리스도에 대한 자각욕이 더 클 때만 가능하다. 이정표를 세워야만 했다.

  요가난다는 언젠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리글리(껌 회사)도 사람들한테 껌을 씹으라고 광고하는데, 나라고 해서 사람들에게 좋은 이상을 향유하도록 광고하지 못할게 무엇이 있는가?" 신성한 일루미네이션의 과실을 향유하는 것은 반드시 공개적으로 입증되어야만 한다. 인류는 사후의 구원과 천국을 믿는 유치한 단계를 넘어서야 한다.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스스로의 힘으로 천국, 즉 그리스도 의식을 체험해야만 한다. 오직 그랬을 때에만 사람들은 알고 믿을 수 있다. 오늘날 일부 교회에서 볼 수 있는 미숙한 감성주의는 사람들을 일시적으로 신에게로 이끌 수 있다. 그러나 신 안에 거하기 위해서는 매일 깊은 기도와 명상을 실천해야만 한다.

  예수는 말했다, 장님이 장님을 인도할 수 없다고. 왜냐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영적인 계명을 얻은 인간들은 사람들에게 길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신성한 천사들이 그들을 돕기 위해 여기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여타 위대한 스승들의 가르침은 원래 주어진 그대로 실천에 옮겨져야만 한다. 나는 이상적인 세계를 마음속에 그리려 노력했다. 사람들이 바로 살아있는 신의 자식들이라는 것을 모두 깨닫는 그런 세계를.

  나는 직관적으로 고대 세계에 많은 진보된 문명들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알았다. 내적 차원상의 불의 전차들은 어떤 신성한 드라마의 수행을 위해 먼 태양계에 대량의 식민을 했다. 고대의 황금시대에 우리 세계에도 그런 문명들이 존재했었다. 오늘날 우리는 폐허가 된 돌더미들 속에서 그 유물들을 볼 수 있다.

  불의 전차를 타고 있는 존재들은 '빌더Builder'라고 불린다. 지구는 지금 고대 황금시대와 같은 상태로 변화하려 하고 있다. 다음 세대에는 빛의 힘들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할 것이다. 빌더들의 귀환이 지금 진행되고 있다. 이 신성한 종족의 장로인 예수는 예정된 재림을 이룰 것이다. 나는 내적 감각들을 통해 다가올 미래의 사건들을 읽고 느끼고 있다. 앞으로 어떤 시련이 닥쳐오든 나는 그것을 이겨낼 것이다. 내 의식 속에는 빛과 어둠의 세력을 대표하는 존재들의 이름이 새겨지게 될 것이다.

  요가난다는 이 혹성에 존재하는 세 가지 커다란 유혹을 이렇게 정의했다. 육욕(육체적 감각을 충족시키려는 욕망), 술(일시적인 도피의 욕망), 부와 권력(자기 의식적인 에고의 만족을 위한 욕망)에 대한 집착. 이 세 가지 유혹을 통해 어둠의 세력은 사람들을 미망의 그물 속에 가둔다. 사람들이 그 그물에 걸려들 때 기만의 영들은 웃음짓는다.

  이 세계의 사람들은 ‘원인과 결과의 법칙’을 배우지도 존중하지도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뿌린대로 거둔다고 가르치지 않았는가! 불행히도 위대한 성자들의 가르침은 무시되거나 부정적인 영들에 의해 고의적으로 잘못 해석되고 있다. 우리는 어둠의 존재들을 덮고 있는 베일을 찢어버려야만 한다. 사람들은 그 거대한 사기를 직시해야만 한다.

  파괴의 존재들은 실재한다. 지구와 천상이 실재하듯이. 타락 천사들은 신성한 드라마를 붕괴시키기 위해 세계 위에 진을 친 채 빛의 세력과의 총력전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내던져지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천사들의 군대에 대해 언급하면서 자기가 신성한 빛의 전사들을 부릴 수 있다고 말하였다. 나는 이 빛과 어둠의 투쟁에 관여하게 될까? 떨린다. 얼음처럼 차가운 바람이 느껴진다. 내 인생에는 많은 역경들이 닥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찌되었든 결국에는 승리할 것이다.

  1952년 2월 22일 나는 전화회사의 일자리로 복귀했다. 한 주의 일을 끝낸 뒤 나는 금요일 저녁에 요가난다를 만나기 위해 와싱턴 산으로 가리라 마음먹었다. 나는 그에게 최근 내가 겪은 놀라운 체험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헐리우드에 도착한 나는 그날 밤을 지내기 위해 방 하나를 빌렸다. 그리고 나는 토요일 아침 은거지로 차를 몰고 갈 결심을 했다. 그날 밤 나는 차라리 요가난다에게 전화를 거는 편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떠올라 그렇게 했다. 그의 비서가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내가 파라마한사지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으면 전해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마 그를 볼 수는 없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선셋 대로의 SRF 교회 근처 공중전화 박스에 서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육신을 입은 나의 사랑하는 스승과 마지막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수화기를 들고 기다리고 있으려니 전화기 너머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다른 방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여보세요, 어떻게 지내, 빅 보이?"

  "잘 지냅니다, 선생님. 제게 일어난 일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그래, 그래. 나도 알아. 지금 무척 바빠. 말해."

  "내일 가능하다면 뵙고 싶은데요."

  오랫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한 숨 소리가 들리더니 그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는 곧 떠날 거야. 3월 7일이 빅 데이가 될 거 같아."

  "내일 만나뵐 수는 없을까요?"

  "이제부터 너는 나를 영안 속에서 찾아야만 해. 신성한 어머니가 말했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그녀는 내가 더 이상 어떤 사람도 만나는 걸 허락하지 않을 거야."

  "제게 일어난 일에 대해 조금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래, 그래. 하지만 빨리 서둘러."

  나는 가능한 짧게 내게 일어났던 일에 대해 간단히 말했다.

  "오래 전에 내가 말했었잖아. 너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될 거라고. 이제 너는 강해져야만 해. 너는 나의 자이언트야. 내가 떠난 후 너는 날 보게 될 거야. 기억해!"

  "예, 선생님. 기억할게요."

  "이제 너는 주님을 너의 영원한 동반자로 만들어야만 해. 그러면 결코 외롭지 않을 거야. 이제 끊어야겠군."

  "은거지에 찾아가도 되나요?"

  "그래, 네게 문은 항상 열려있어. 안녕."

  "잘 지내세요, 선생님."

  전화가 찰칵 소리를 내며 끊겼다. 나는 이것이 그와의 마지막 대화가 되리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공중전화 박스에서 나와 교통 소음과 도시의 불빛 속으로 들어갔다. 요가난다의 목소리가 내 마음 속에서 메아리치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도시의 밝은 불빛들 때문에 별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차를 몰고 갈 때 요가난다의 말들이 떠올랐다. "나는 곧 떠날 거야. 3월 7일이 빅 데이가 될 거 같아." 갑자기 나는, 실제로 그가 육신을 떠날 날짜가 3월 7일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나? 아니야. 이것은 그의 길이다. 나는 침묵한 채로 있어야지. 언젠가 그가 한 말이 귓가에 울렸다. "내가 떠나고 난 뒤에야 사람들은 내가 누구였는지 알게 될 거야."

  나는 산타 바라라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음 며칠 동안 안절부절 못했다. 불안은 끔찍했다. 직관적으로 그가 3월 7일 날 육신을 떠나는 것이 맞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그날이 다가왔다.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감지한 것은 오후 늦은 시간이었다. 그 날 밤 전화를 걸어본 후에 나는 그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요가난다는 LA 빌트모어 호텔에서 열린 인도 대사 비나이 R. 센을 위한 연회에서 몸을 버리고 떠났다. 그는 거기 모인 많은 청중들 앞에서 떠났다. 그는 짧은 연사를 마치고 자신이 쓴 시 '나의 인도'를 읊었다.

  거기서 갠지스 숲들,

  히말라야 동굴들,

  그리고 인간들이 신을 꿈꾸나니.

  나는 성화聖化되고,

  나의 몸은 그 뗏장에 닿았다.

  이 마지막 시구와 함께 그는 바닥에 쓰러졌다. 그는 떠났다.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그렇다.

  제자들이 그의 육신을 와싱턴 산으로 옮겨와 그의 침대에 눕혔다. 거기서 그들은 한 사람씩 차례로 마지막 작별 인사를 드렸다. 어떤 이들은 그가 사마디 상태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다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다음 날 그의 시신은 포리스트 론 기념 공원으로 옮겨졌다.

  요가난다의 초기 제자들 중 한 사람인 제임스 J. 린(요가난다의 사후, 자아실현회의 회장이 되었다)이, 파라마한사지가 그에게 자신은 다시 깨어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이것이 자신의 마하 사마디(진보된 요기들이 의식적으로 자신의 육신을 버리고 영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라고 말했다고 발표했다. 요가난다가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고 염려하여 장의사에게 시신을 넘기기를 꺼려했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의견은 무시되었다. 


            요가난다의 임종 모습

  나는 그날 밤 가능한 빠른 속력으로 와싱턴 산을 향해 차를 몰았다. 나도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것이 허락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한 사람씩 그의 곁에 다가가 그를 본 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그의 방에 들어갔다. 침대 위에 뉘인 그의 육신을 보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렇다! 그는 떠난 것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의 육신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의 곁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얼굴에는 엷은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마치 막 잠이 든 것처럼 보였다. 그를 만지자 그의 살에서 아직도 생기가 느껴졌다.

  그가 진정으로 떠나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떠났다. 그는 이미 1년 반 전에 내게 작별 인사를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다시 며칠 전에도. 나는 그의 발치에서 조용히 명상했다. 어린 시절 내가 보았던 크고 반짝이는 그 두 눈이 이제 영원히 세계를 향해 감겨있다. 우리는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나의 상실감은 몹시 컸다. 지칠 때 힘을 얻을 그가 이제 여기에 없다. 그의 제자들은 홀로서기를 했다. 오로지 그의 설법들만이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리고 그와 함께 했던 소중한 기억만이. "잘 가세요, 선생님. 당신의 형상에 절을 합니다. 당신은 죽음을 정복하고 최종적인 승리를 거둘 것입니다. 나는 압니다, 당신이 다시 일어설 것을. 예. 나는 당신의 형상을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약속하셨잖아요."

  요가난다의 시신은 염습을 위해 포리스트 론 기념 공원으로 옮겨졌다. 기적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요가난다의 시신은 장례식을 위해 와싱턴 산으로 돌아왔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도 장례식에 참석했다. 무리 중에는 그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마지막 순간에 마음의 변화를 느끼고, 마지막으로 한 번 그를 보려고 달려온 것이었다.


  요가난다 장례식. 좌측에서 두 번째가 SRF 2대 회장인 제임스 린(자나카난다). 세번째는 부회장 루이스 박사.

  장례식은 요가난다의 초기 제자인 제임스 린과 루이스 박사에 의해 집전되었다. 그러나 기억나는 것은 거의 없다.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그 모든 의식儀式들으로 인해 혼란에 빠져 있었다. 장례식 끝부분에 정신 차려 보니 어찌어찌 내가 요가난다의 관 머리 쪽을 잡고 리무진으로 옮기고 있었다. "오, 파라마한사 요가난다, 어쩌다 보니 또 당신의 몸을 옮기고 있군요." 그의 시신이 와싱턴 산의 구비진 길 아래로 마지막 여행을 하는 동안 우리는 모두 조용히 함께 서 있었다.

  그로부터 20여일 후, 요가난다에 대한 뉴스가 신문들에 실렸다. 로스앤젤레스 미러와 로스앤젤레스 타임즈의 기사 제목은 ‘죽음을 이긴 요기’였다. 포리스트 론 기념 공원의 영안실 실장인 해리 T. 로우가 보내온 인증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관 속에 안치된 요가난다

  "파라마한사 요가난다의 시신에 부패의 징후가 보이지 않는 것은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지극히 특이한 케이스입니다. 사후 무려 20일이 지났는데도 그의 시신에는 육체적 부폐 현상이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의 피부에는 곰팡이의 흔적도 보이지 않습니다. 육체의 이런 완벽한 보존 상태는 우리 영안실 역사상 전례가 없는 특이한 현상입니다.

  3월 27일 청동 덮개의 관 속에 안치시키기 직전의 요가난다의 육체적 외관은 3월 7일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3월 27일 그의 모습은 부패에 의해 손상되지 않고 죽은 날 밤의 모습 그대로 생기가 감돌았습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우리의 경험상 파라마한사 요가난다의 사례는 독특한 것이라고 다시 진술하는 바입니다."

  인도에 있던 두 명의 제자가 그를 보기 위해 미국으로 올 수 없을 것 같다는 전갈이 도착하자 그의 관은 봉인되었다. 그것은 사후 20일 후의 일이었다. 나는 장례식을 마친 뒤 산타 바바라로 돌아왔다. 요가난다의 사역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가 없이 지속될 수 있을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를 알고 사랑했던 나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어려운 일이 되리라는 걸.

  나는 전화회사에서 일을 계속했다. 일을 한 덕분에 시간은 잘 갔다. 명상은 좋았다. 하지만 답보상태였다. 금요일의 놀라운 체험들이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의 전부였다. 여전히 주님은 내가 육체를 떠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체험들은 깊은 황홀경의 빛 속에서 생겨났다. 그 밖의 모든 세속적 추구들은 내게 있어서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나의 커다란 소망은 나의 영원한 거처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 밖의 어떤 다른 것도 나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나는 요가난다가 몹시도 그리웠다. 그는 내게 돌아온다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제 석 달이 흐르자, 나는 그가 약속을 지키지 못할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잊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올 수 없는 것일까? 나는 포기상태가 되어, 그가 돌아올 수 없는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1952년 어느 무더운 여름 오후 나는 나의 단칸방 집에 돌아왔다. 침대에 누워 나는 월트 휘트먼의 <풀잎>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돌개바람이 문을 때렸다. 놀란 내가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거기 사랑하는 파라마한사 요가난다가 방안으로 걸어 들어와 문을 닫고 있는 게 아닌가. 그는 내 침대 발치까지 걸어와 나를 내려다 보았다. 어린 시절 환영 속에 보았던 그 반짝이는 눈동자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그가 거기에 서 있는 동안 두 개의 형체가 그의 좌우편에 물질화 되었다. 그들은 허리에 걸치는 간단한 옷만 입은 채 연화좌 자세로 공중에 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저들은 파라마한사지가 어린 시절 환영 속에서 본 히말라야의 요기들이 틀림없다.’ 요가난다가 어린 시절의 소망대로 그들과 같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고요히 허공에 떠서 그의 곁을 맴돌고 있었다. 요가난다는 낯익은 오렌지 색 스와미 교단 법의를 입고 있었다. 그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벽들만큼이나 실제적이고 고형적으로 보였다. 나는 즉각 연화좌 자세로 일어나 앉았다. 파라마한사 요가난다가 이제 약속대로 돌아온 것이다.

  그는 기혼자들과 아이들로 구성된 영적인 공동체의 창설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기혼 남녀는 기본적인 목표 중 하나로 절제의 삶을 지켜야만 한다고 말했다. 요가난다의 부모는 아기를 갖기 위한 목적으로만 부부관계를 가졌다. 기혼 커플들은 자신이 짝을 통해서만 성적인 욕망을 해소해야 한다. 그리고 욕망과 진정한 영적인 사랑 사이의 차이점을 깨달아야만 한다. 성적인 충동이 일 때마다 창조력을 낭비한다면 의식이 고급한 상태의 성취를 위해 필요로 하는 에너지가 고갈되게 된다.

  영적인 공동체의 창설은 모든 참여자들의 지극한 절제의 성취와 더불어 덕성의 진정한 개념들에 바탕 두어져야만 한다. 욕망으로 인해 육체의 생명력을 계속 낭비한다면 영적인 공동체의 형성과 그리스도 의식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의 성취에 대한 모든 참여자들의 관심을 파괴하게 될 것이다.

  요가난다로부터 이런 메시지를 받고 나자 순간적으로 나의 눈에 영적인 공동체 속에서 성공적으로 함께 살고 있는 많은 커플들의 모습이 보였다. 덕성을 실천하고 명상을 하고 함께 일하면서 그들은 빌더들이 계획했던 에덴 동산의 본래 목적을 분명코 성취하게 될 것이다. 필연적으로 그들은 열매를 생명나무에 다시 돌려놓게 될 것이다.

  마스터가 손가락을 모은 채 칼처럼 손을 위로 들어올렸다. 이 포즈는 ‘나는 당신 안에 있는 무한한 영에게 절합니다.’라는 뜻이다. 그가 이제 막 떠나려 하고 있었다. 이제 나는, 우리가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걸 알았다. 요가난다가 몸을 돌리자 그 곁에 있던 두 사람이 사라졌다. 그가 문을 향해 걸어가 그것을 열었다. 그가 문 밖으로 나가려하자 나도 막 그를 따라나서려 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지금은 안 돼! 나중에!"

  문이 닫혔다. 요가난다는 삶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죽음을 통해서도 우리의 진정한 신적 본성, 그리스도 의식, 내면의 순수한 자아를 증명하였다. 그는 불멸의 존재가 되었고, 그것을 내게 증명하였다.

출처 : http://blog.naver.com/PostList.nhn?blogId=eyeinhand&categoryNo=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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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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