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여름, 명상 속에서 나는 환영들을 체험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나는 다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는 젊은 사람들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러다가 이윽고 음악과 노래가 멀리 사라져 갔다. 그들의 낯익은 얼굴, 모습과 함께.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내 방으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
어느 날 오후 분과 나는 물건들을 사고 돌아오는 중이었다. 수도원을 향해 가파른 언덕을 걸어 올라가고 있을 때 분이 말했다. "이봐, 노먼. 어느 날 밤 내가 산책하러 나와 있는데 와싱턴 산 위로 거대한 우주선이 날아가는 걸 봤어. 지난 1947년 일이야."
"그랬어? 어떻게 생겼지?"
"글쎄, 그것은 기다란 구형이었어. 꼭대기는 둥글고 바닥은 평평했어. 우주선의 양 끝에서 밑으로 밝은 보라색 광선이 방사되는 게 보였어. 그것은 수도원 바로 위에 있었어. 우주선 상부 측면에 있는 창문들에서 반짝이는 빛들도 보였어."
나는 호기심이 동했다.
"분, 네가 본 걸 정말로 믿어? 신성한 어머니의 이름을 걸고 말해봐."
"그래, 그것은 정말로 저기 있었어."
"뭘 하고 있었던 거 같아?"
"글쎄, 노먼, 나는 우주선 속에 어떤 존재들이 있다고 정말로 믿어. 너도 알잖아, 불의 전차들 말이야. 그들은 우주선을 타고 날아가면서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어."
그때 나는 어린 시절부터 내가 알고 있었던 것에 대해 분도 의식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역주: 노먼은 오래 전부터 유에프오를 보는 체험을 했었다.)
"분." 내가 말했다. "나는 저 비행체에 탄 혼들이 지금 여기 지상에 화신하고 있다고 믿고 있어. 너와 나는 언젠가 그들을 보게 될 거야!"
내 입에서 튀어 나온 말은 이제, 노래하는 목소리들과 낯익은 얼굴들을 본 나의 환영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었다. 그것은 모두 함께 아귀가 들어맞기 시작했다.
"그 체험에 대해 누군가한테 말한 적이 있어?"
"아니, 노먼. 사람들이 날 믿지 않으리라는 걸 알거든."
"그렇다면 어째서 나는 믿을 거라고 생각하지?"
"왜냐하면 내 생각에 너는 그들에 대해 알고 있으니까!"
분과 나는 그로부터 수년 동안 유에프오에 대해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았다.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파라마한사지는 SRF 헐리우드 교회로부터 네 블록 가량 떨어진 선셋 대로에 있는 한 건물을 구입했다. 그는 그것을 교회 부지로 옮기고 그 건물을 레스토랑으로 만들고 아울러 거기에 지하 강당까지 만들길 원했다. 대공사가 임박한 것이다!
힘든 작업이었다. 수개월의 작업 후 우리는 모두, 처음부터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게 더 쉬울 뻔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거대한 구덩이를 파내고 흙들을 퍼 나르고, 지반 속에 콘크리트를 붓고, 벽의 안팎에 이중 거푸집을 만들고 그 위에 건물을 얹었다. 그러고 나서 건물 전체를 시가 정한 법정 표준에 맞추는 작업을 했다. 우리는 여분의 마루 장선들을 끼워 넣고, 벽에는 좀 더 많은 샛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들을 보강하고, 전기 배선을 전부 새로 해야만 했다. 건물 전체 내부에 회반죽을 발랐고, 건물 외부에 치장벽토 세공을 다시 했다. 이 모든 일을 마치기까지 몇 달 동안 우리는 중노동을 해야만 했다. 요가난다는 하루걸러 한 번씩 그곳에 들러 작업 진척 상황을 지켜보았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레스토랑에는 인디아 하우스 카페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카페는 문을 연 날부터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공식 개장일에는 요가난다를 비롯한 많은 제자들과 친구들이 참석했다. 요가난다가 주도한 짧은 명상을 시작으로 연회가 열렸다. 건물의 돋보이는 특징 중 하나는 지붕 라인을 따라 두른 총안 흉벽이었다. 그것은 요가난다가 제안한 것이었다. 그것은 오래된 성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흉벽이었다. 그 작업은 축조작업도 벽토 세공도 어려웠다. 내가 목공일, 시멘트, 회반죽 일 등을 마스터한 것은 바로 거기에서였다. 그 기술은 나중에 나에게 유용한 도움이 되었다.
1949년 말엽에 요가난다는 캘리포니아 산타 모니카 인근의 퍼시픽 팔리세이즈에 위치한 호수 사원을 구입했다. 그것은 해변으로부터 다섯 블록 떨어진 외딴 계곡에 자리한 아름다운 곳이었다. 호수는 대략 1에이커정도 되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 곳은 요가난다의 안목에 따라 완전히 다시 개조되었다. 부지에는 독일 풍차 하우스 등 여러 개의 독특한 건물들이 있었고, 바이킹 배, 하우스보트가 호수의 한쪽 기슭 작은 만에 놓여 있었다. 하우스보트는 철제 프레임 속에 함께 용접된 강철 원통들 위에 얹혀 있었다. 배기관들은 그 원통들과 접착돼 있었다. 배기관이 수면 위로 올라와 있는 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요가난다는 한 무리의 친구, 제자들과 함께 왔다. 그는 새로 구입한 그곳에 와 보고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그곳을 보기를 원했다.
"명상을 위해 하우스보트에 우리 모두 모입시다." 그가 말했다. 우리는 모두 하우스보트로 갔다. 거실이 꽉 찰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일부는 밖에 서 있어야 했다. 하우스보트는 한 번에 백여 명이 탈 수 있게 설계된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3-4 톤의 중량을 초과하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어둠 속에서 기도 소리를 들으며 바닥 위에 앉아 있었다. 그때 호수 물이 갑판 위로 넘쳐 올라왔다. 문 아래 쪽으로 대량의 물이 밀려왔다. 요가난다가 소리쳤다. "자, 모두 보트에서 내려요. 빨리! 빨리!"
배기관이 물에 잠기자 탱크들이 서서히 차올랐다. 하우스보트가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일부 나이든 여자들은 물이 바닥으로 치솟아 올라오자 비명을 질러댔고 그 바람에 난장판이 될 뻔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재미 있다는 생각에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요가난다가 나를 불렀을 때까지 말이다. 그가 내게 말했다.
"빅 보이, 뛰어 내려서 보트를 들어올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호수 속으로 풍덩 점프해 들어가 안간힘을 다해 하우스보트를 들어 올리려고 애썼다. 그가 농담하고 있는 거겠지. 아니면 진담인가? 알 수 없었다. 당연히 보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안 돼요, 선생님." 내가 소리쳤다. "너무 무거워요."
"그래, 좋아, 내일까지 보트를 세워놔."
"예, 선생님."
내가 대답했다.
하지만 사실상 하우스보트를 물 위에 다시 띄우는 데는 3주가량이 걸렸다. 그것은 고된 노동이었다.
어느 날 하우스보트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점심 식사 후 명상을 하기 위해 벤치 위에 앉아 있었다. 눈을 감은 뒤 신성한 영에게 깊이 기도하고 있었다. 잠시 후 축복이라도 하듯 두 개의 손이 내 얼굴의 양 볼을 감쌌다. 물질적인 감촉이 느껴졌다. 나는 눈을 뜨고 앞에 누가 있는 지 보았다. 하지만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요가난다는 호수 사원 전체에 조경 작업을 하길 원했다. 그가 LA의 한 거리에 종려나무들이 뽑혀진 채 죽 늘어져 있는 것을 어떻게 본 모양이었다.
"빅 보이," 내게 메모가 전달되었다. "즉시 가서 종려나무들을 가지고 와. 그것들을 호수 사원으로 가지고 와서 심어."
나는 그곳에 가서 종려나무들을 가지고 왔다. 그 나무 하나하나의 무게는 적어도 2톤은 되었다. 나는 맥 트럭에 연결시킬 견인 트레일러를 빌렸다. 다행히 맥에는 윈치가 있었다. 그것은 내가 전에 장착해 둔 것이었다. 나는 트레일러를 나무뿌리 끝에 바짝 뒤로 대고 스키드를 이용해서 그것들을 트레일러에 윈치로 감아올렸다. 이런 방식으로 나는 12 그루의 종려나무들을 옮겼다. 나무를 옮기는 것은 비교적 쉬웠다. 하지만 그것들을 심는 것은 정말로 힘든 작업이었다.
어느 날 우리가 커다란 종려나무를 심기 위해 철사 줄을 매고 낑낑대며 간신히 위치를 잡은 상태였다. 그런데 요가난다가 보고는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왼쪽으로 10 피트가량 더 옮겨." 하마터면 나는 줄을 놓칠 뻔했다. 하지만 요가난다가 우리에게 자기 컨트롤을 가르쳐주기 위한 것이라는 걸 깨닫고는 이를 악물고 나무를 다시 옮겼다.
조경 작업을 진행해 가면서 동시에 우리는 야외 원형극장에 거대한 연화탑도 만들고 있었다. 요가난다가 호수 사원을 위한 개관식을 가지고 정기적인 공개 강연을 가진 곳은 바로 거기서였다.
모든 작업을 마치고 역사적인 개관을 위한 준비가 마무리 된 날, 요가난다가 연화탑과 사원 일대를 최종 시찰하러 왔다. 그는 아름다운 길을 따라 호수의 저 먼 기슭까지 걸었다. 작업에 참여했던 모든 형제 수사들이 거기에 있었다.
요가난다가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자, 내가 여러분 모두에게 물로 세례를 주고 싶습니다."
우리는 모두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바지를 말아 올린 뒤 요가난다와 함께 호수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는 두 손으로 물을 떠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머리 위에 부었다.
"내 그대를 SRF의 성직자로 세례하노라."
모두에 대한 세례가 끝난 뒤 우리는 모두 잠시 동안 앉아서 짧은 기도와 명상을 했다. 그는 우리가 한 모든 것들에 매우 흡족해 했다.
인도에 있는 요가난다의 한 친구가 마하트마 간디의 재 중 일부를 보내왔다. 개관 의식 때 그 재는 석관 속에 안치되었다. 많은 고관들과 시 공무원들이 개관식에 초대되었다. 모든 SRF 학생들과 그들의 친구들 또한 초대되었다. 개관식은 마지막 세부 공사가 끝나고 나서 불과 며칠 후에 열렸다.
개관일이 다가왔다. 1500여명의 사람들이 참석한 가운데 행사는 완전히 성공적이었다. 요가난다는 이 모든 것에 크게 기뻐했다. 호수 사원은 이제 명상과 영적인 고양을 위한 센터 역할을 하고 있다.
나는 다음 프로젝트를 위해 와싱턴 산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에 나는 돈을 모아 3백 파운드짜리 역기를 샀다. 나는 그 역기로 운동을 하지 못해서 아쉬웠다. 문제는 도날드 형제였다. 그는 내 방에서 흘러나오는 덜거덕거리는 소리를 몹시 싫어했다. 내가 웨이트 운동을 하고 싶어 하는 이유를 도날드가 이해할 리 만무했다. 그에게 있어서 그것은 이해 불능의 세계일뿐이었다.
도날드의 방과 내 방 아래에는 깊은 콘크리트 구덩이가 있었다. 마루 장선들이 그 위를 덮고 있었고 도날드 방쪽으로 뚜껑 문이 있었다. 그 구덩이에는 전동기와 윈치 케이블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과거 20년대 이 와싱턴 산 건물이 잘 나가던 리조트 호텔이었을 때 사용되던 레일 케이블카를 작동시키던 장치들이었다.
도날드는 그 구덩이 밑에 들어가 명상을 하곤 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언제 거기에 갈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시간이 불규칙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큰 문제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도날드가 밑에서 명상하는 시간에 운동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내가 운동하고 있으면 아래에서 벽을 쾅쾅 치는 소리와 함께 도날드의 고함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그 위에 소음 좀 멈춰줄 수 없겠어? 나는 명상하고 있단 말야." 도날드와 나는 그 문제에서 어떤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당시에 도날드는 SRF의 일부 레슨들을 편집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요가난다는 도날드에게 보다 많은 육체적인 운동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도날드에게 바깥 뜰에서 일하는 나의 일을 하루 두세 시간 동안 돕도록 시켰다. 어느 날 요가난다가 말했다. "빅 보이, 산 아래 부지 끝까지 도로변의 모든 덤불과 잡초들을 제거해."
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오후 2시쯤, 내가 작업을 거의 다 마쳐가고 있을 때 도날드가 나타났다. 나는 마지막 남은 약간의 덤불과 잡초들을 트럭에 싣고 있는 중이었다. 도날드가 그 마지막 싣는 작업을 도와주었다.
"도날드, 이걸 하치장에 버리고 올 테니까 밑에 있는 잡초들을 계속 베."
하치장까지는 약 50피트의 거리였다. 내가 하치장에 풀들을 막 버리자마자 요가난다의 차가 언덕 위로 올라왔다. 그가 멈춰서더니 도날드를 차에 태웠다. 요가난다의 차가 지하실 입구에 이르자 나는 그를 보기 위해 서둘러 올라갔다. 도날드가 요가난다와 같이 차에서 내렸다.
"빅 보이, 월터(요가난다는 도날드를 보고 항상 월터라고 불렀다)가 도로변을 깔끔하게 정리해 놓은 것 좀 봐. 정말 잘 해 놓았더군."
"예, 선생님." 내가 대답했다. "정말 좋아 보여요. 그렇죠?"
내 마음 속에 이런 생각이 일었다. '도날드는 이제야 와서 막 잡초를 베기 시작했고, 나는 몇 시간동안 작업했다는 걸 스승님이 알까?'
도날드가 자초지종을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요가난다는 이미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결국 도날드는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도대체 나는 누구를 위해서 이 모든 일을 하고 있지? 음, 파라마한사지를 위해 하고 있지. 그를 돕기 위해서. 그래. 하지만 사실상 나는 신성한 영, 신성한 어머니, 아버지를 위해 일하고 있어. 분명 신은 누가 이 일을 했는 지 알아. 그러니 내가 한 일이라고 굳이 밝힐 필요는 없지. 다시는 이런 일로 마음 상해서는 안 돼.’ 나는 그 일이 좋은 교훈이라고 생각했다.
출처 : http://blog.naver.com/PostList.nhn?blogId=eyeinhand&categoryNo=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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