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뱅이/게으른 사람이 깨닫는 법'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2.01.10 4. 고통에서 빠져 나오는 길들
  2. 2012.01.08 3. 어떻게 깨달음을 느끼는가?
  3. 2012.01.08 2. 나는 깨달았다
  4. 2012.01.04 1. 우리는 누구인가?
  5. 2012.01.04 소개하는 글

4. 고통에서 빠져 나오는 길들

 

여기에서 이제, 여태까지 내버려두었던 당신의 기본적인 태도를 점검해보도록 하라. 나는 책의 모든 말들을 당신이 기억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가운데 밑줄이 쳐진 부분만 기억하기를 바란다.

이것들은 간단하게 외울 있으며, 어떤 정신적인 위기에서도 작용할 수가 있다. 이것들을 마음에 간직하라.

온유함- 말은 당신이 물리적으로 수동적이어야 하고, 나쁜 진동에 대해서 온순하게 참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말은, 당신의 마음에 거부감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당신의 지식에 대해 자유롭고, 사랑으로 항상 행동하며, 좋다고 느끼는 것을 언제나 행하라. 항상 옳고, 항상 그릇된 행동은 없다. 유일한 진실은 당신이 사랑을 가지고 행하는 것이다.

당신이 당신의 자각을 열어 놓음으로써 아무 노력이 없어도 삶은 저절로 향상될 것이다.

여기 참으로 멋진 역설이 있다.

당신의 의식을 열면 열수록, 당신에게 부딪혀오는 나쁜 상황들은 그만큼 줄어든다.’

당신이 머무는 어디에서나 있는 최대로 사랑을 하라.

말은, 당신이 무엇 인가로부터 위협을 당할 , 터질 스트레스에 쌓여 있을 , 슬픈 괴로운 일을 당했을 떠올리기에 좋은 말이다. 눈에 띄는 곳에 써서 붙여두어라.

당신은, 당신이 보고 느끼는 , 그것들을 사랑하기를 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어떻게 그러한 것들에 사랑의 감정을 느낄 있을지 확신할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할 것을 우선 결심하라. 당신 마음속에 그것을 믿을 없다는 느낌이 조차 사랑한다고 크게 말하라. 그리고 말하라. “나는 사랑할 없는 것을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한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라. 당신이 세상을 보는 수준은 전적으로 자신의 진동수준에 달려 있다. 당신의 진동수준이 점차로 상승 세상은 달라보일 것이다.

그것은 마치 당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할 모든 사람이 당신을 향해 웃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당신의 진동수준을 상승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많은 사랑을 하는 것이다. 당신의 모든 부정적인 느낌, 권태, 어리석은, 절망까지도 사랑하라. 믿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당신 마음의 그러한 변화는 진실로 당신의 존재수준을 변화 시킬 것이다.

당신의 의식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생각이나 믿음, 행동, 친구, 거주지, 환경 등을 바꾸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당신이 지금 그곳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나 임의의 뜻이 아니다. 당신은 그러한 변화를 기다리기 전에 태도를 수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언제나 변화를 위해서 여기저기 전전하는 당신의 모습만 보게 뿐이다. 그리고 무한한 행복의 바다를 결코 없을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있는, 가고싶은 어디로든지 가라. 그러나 ()에서 말하듯이, 당신이 서있는 그곳에서 찾을 없다면 그것을 찾기 위해 어디로 가야 것인가? 우주 안에서 당신이 서있는 그곳 외에는 어디에도 당신이 찾는 것은 없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4차원의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음악의 볼륨을 올리는 것처럼, 현재의 당신이 존재하는 그곳에서 서서히 상승되는 그곳에 있다.

자신을 사랑하라.

사랑의 정의는, 같은 공간 내에서 다른 존재와 함께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실제로 우리는 우리의 육체, 마음, 감정, 생각 많은 부분에서 다른 존재와 부딪치고 있다.

우리의 육체 안에 있는 자아의식이라는 것은 번잡한 도심의 시장에 있는 물건과 다를 없다. 자아가 당신의 생존기능에 관한 유일한 자각은 아니다.

유일한 개체로서 우리 모두는 자유롭다. 우리가 있는 자리 또는 상승하여 좀더 높은 수준으로 옮겨갈 , 어느 수준에서도 우리는 함께 조화를 이룰 다른 존재들을 발견한다.

당신이 진실로 당신 자신을 사랑할 그때야말로 당신은 수많은 다른 존재로 사랑을 확장시켜 나갈 있다. 그리고 당신을 더 많이 사랑할수록 당신의 내부, 주위의 존재들을 더욱 사랑할 있다.

모든 수준은 서로 종속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 당신의 여행에는 멋진 연주자와 아름다운 무용수가 항상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의미에서 당신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당신 자신이 창조한 창조물들과 항상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당신이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을 외면하고 후회한다면 얼마나 당신이 수축되는지 모를 것이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 당신의 자아 에고를 점점 쌓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기주의란 자신을 미워하는 자에게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은 쉽게 증명 있다.

사랑으로 당신의 에고를 쳐부수라. 당신은 자신을 어떤 우월한 상태로 증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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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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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어떻게 깨달음을 느끼는가?

 

좋은 기분을 느낀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그것이 깨달음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

우리는 인식할 있는 모든 기쁨 가운데서 최상의 기쁨인 신의 기쁨까지도 느끼고자 한다. 아무리 높은 자각을 가진 사람도 이러한 기쁨을 원하지 않는 자는 없다.

그러나 이런 천국은 바로 당신 안에 그리고 당신 주변에 있다. 당신은 천국을 알기 위해서, 페이지에서 눈을 위로 치켜 뜨는 정도의 행동도 필요가 없다. 당신이 매일 보고 느끼는 다이아몬드와 같은 완벽함에 당신 자신을 열어놓을 있다. 그런 일이 쉽게 일어날 없다고 생각하면, 매순간 사랑을 하고, 그것이 당신에게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라.

공간수준에 있는 어느 존재도 영적 수준을 높이려 하는 사람을 방해하거나 시험하는 적이 없다. 넌센스로 당신이 시험에 빠져들고 있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당신에게는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할 있는 능력과 당신의 현실인 우주에 대한 인식을 스스로 제한하는 것을 허락 받고 있다.

높은 수준의 영적인 존재들은 당신이 자신을 사랑하여 더욱 영적인 수준이 높아질 때까지 당신을 축복한다. 당신이 원하기만 하면, 간단한 기도라든지 환각제 산타클로스에게 편지를 쓰는 어린아이들과 같은 방법으로 그들의 도움을 받을 있다.

당신은 스스로를 괴롭히거나 파멸시키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당신은 무엇을 증명할 필요도 없고, 수도 없다. 당신의 진동수준은 항상 진실을 말하고 있고, 당신은 그것에 대해 꾸며댈 수가 없다.

사랑의 날개 위에 자신을 싣는 것은 쉬운 일이다. 복잡하게 뒤얽혀 있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어떻게 그것을 극복할 것인가 하는 것은 2차적인 문제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거부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모든 것을 사랑하는 이러한 진실의 편린들을 주워 모은다면 사랑은 가능하다.

()적인 결합에 있어서도 좋은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사실 만족스러운 결정의 순간은 기술적인 성취 이상의 영적인 달성이다.

육체란 정신과 별개의 것이 아니다. 육체는 의식의 또 다른 수준에서 진동하는 존재의 황홀한 창조물인 것이다. 깊은 절정은, 모든 동물을 포함하는 우리 전체가 가지는 사랑의 실현이다. 타인과 동일한 공간 또는 같은 진동을 가진 존재들끼리의 사랑은 우리 존재의 근거이며, 형태는 너무나 다양하다.

모든 다른 경험들과 마찬가지로 성적인 경험 역시 가치 있는 경험이다.

() 무아경은, 우리들 집단의식의 개체들을 높은 수준인 공간의 영역으로 용해 시키는 역할을 한다. 성교는 우리가 공간적인 수준에 있는 존재들과 사랑에 빠지게 하고, 존재들 사이의 격리감과 불완전함을 사라지게 하며, 완전한 아름다움에 젖어 들게 하는 하나의 실 예이다.

그렇다면, 영적인 길로 가는데 있어 금욕주의가 가끔 언급되며 실행되는가?

우리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당신의 사고가 방향으로만 고정되어 있을 때 당신의 의도는 전혀 다른 상태로 흔들리게 것이다. 당신의 마음이 열려 있지 않은 상태에서 감각적인 즐거움만을 추구할 때는 금욕주의가 올바른 길인 것처럼 여겨질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금욕주의를 실행에 옮겼을 많은 성인들이 말하듯이 행복과 희열에 빠질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금욕주의를 배격한다고 해도 내적인 빛을 얻을 있다.

만일 당신이 ()이나 음식, , 잠을 부정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면, 모든 면에서 살고있지 않은 당신의 삶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하여 짧은 공간의식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의식은 인류전체의 수준에 아무런 영향도 미칠 없고, 전체의 빛도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빛은 안정된 빛이 아니고, 목적을 달성하는 최선의 길도 아니다.

당신이 같은 부정적인 경험을 통하여 무엇인가를 이룬다면 결코 높은 수준에 머무를 수가 없다.

비록 당신 자신이 그러한 금욕주의에서 세상으로 돌아오는 것에 대해 어떤 합리화를 시켜도, 긍정적인 방법으로 물질계를 초월할 있는 사람이 충분하기까지는 금욕주의가 다시 당신을 물질계로 돌아가게 것이다.

진실로 사랑이야말로 공간존재의 긍정적인 통로 자체다. 우리 자신이나 타인을 사랑하는데 실패한 사실에 대하여 용서 받을 아무런 것도 없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 성적인 관계에서 우리는, 전자(시계추)효과, 음양의 개념을 극복하고 결국에는 사랑에 있어서 () 첫번째 동기인가를 이해할 있는 이성적인 방법을 알게 된다.

이러한 뜻에서 사랑은 평범한 낭만적인 의미이기보다는 훨씬 의미가 광대하며, 출발은 바로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만일 당신이 느끼고 행하는 모든 - 당신의 메마른 감정, 공허한 분위기 등을 포함한 - 사랑한다면 당신은 지순한 기쁨을 느낄 것이다.

() 무의미하다고 느낀다면 당신은 균형의 어느 편을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강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어떤 제약된 조건을 강제로 만드는 수축된 자각의 행동인 것이다.

타인을 육체적인 쾌락으로 판단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당신이 타인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당신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을 합리화하는 말과 행동은 당신이 살기를 원하는 세계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동등한 존재로서, 우리의 관계 사이의 중요한 규칙 가운데 하나는 서로에게 동의하는 사람들에게만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에게 당신이부당한 도움은 받지 않아야 된다 말했다면, 말은 상대방의 삶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당신에게는 말의 의미가 계속 남게 것이며, 당신은 스스로부당한 도움 받지 않아야 한다고 재다짐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다른 사람의 성적인 쾌락이 저속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 그들의 경험이 바뀌지는 않는다. 단지 당신의 쾌락이 저속해질 뿐이다.

이러한 것이 당신에게 굴레를 씌우고, 경험을 결정하는 무한한 힘이 되는 것이다. 스스로 얼마나 많은 결정과 용서, 동정을 구했는가?

타인에게 모든 것을 주라. 타인에게 당신에 대한 () 빚까지도 용서하는 곳까지 보라. 당신 자신을 위한 자유, 사랑, 자각은 타인에게도 당연히 필요한 것이다.

음악은 우리에게 기쁨과 절정의 순간들이 어떻게 지속되는가를 보여준다. 우리는 환희의 순간은 잠깐 빛날 뿐이지 계속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순간은 금방 지나가버리고 우리는 다시 그러한 순간들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는 그러한 황홀한 순간들을 붙잡아 두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거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고 망각하기에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음악을 예로 본다면, 다음 악장을 듣기 위해 악장을 지나가게 해야 하듯, 진동은 변하지만 우리의 기쁨은 계속 있는 것이다.

만일 고정관념이나 개념이 없이 세계에 귀를 기울인다면 무한한 조화 속에서 빛나는 환희의 빛을 언제까지나 있다. 세계라는 관현악단은 친근한 멜로디를 계속 연주한다. 그리고 젊은이가 춤을 추고 둘레에서 노인들은 발장단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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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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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는 깨달았다.

 

깨닫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깨달음을 이루어가고 있다는 징표는 무엇인가? 점차 깨달아감에 따라 삶은 어떻게 변하는가?

깨닫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해야 일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존재하는 그것만으로도 그러한 것을 경험 있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언제고 당신의 내부, 당신의 바깥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팽창이 가능하다. 단지 당신에게 편한 방법대로 당신의 인식을 열어 놓기만 하면 된다. 환각제가 너무 빨리 그것을 이루게 한다면 좀더 천천히 가라. 그곳이 당신의 고향이다.

아무것도 우리를 가로막지는 않지만 우리들 가운데 대부분은 점진적인 단계를 거치면서 열려간다. 우리는 스스로의 감정의 주기(週期)속에서 상승해 간다. 갑작스러운 환희의 깨달음을 경험한 순간이 지나가면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기도 한다. 우리가 진실한 사랑을 하기 위해 배워야 새로운 사실과 부딪히게 되는 것이다. 높이 팽창되어갈수록 일은 쉬워진다. 완전한 깨달음이라고 해서 당장에 우주간의 모든 개체들 사이의 제약되고 위축된 관계들을 의식할 있는 것은 아니다. 공간의식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은, 인식 가능한 모든 것을 충분히 의식할 있는 준비 과정인 것이다. 이는 우리가 어떤 개념이나 관계도 거부하거나 부인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깨달음을 위해서 어떤 특별한 사상이나 경험, 미덕, 고행 따위가 필요하지는 않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확장된 의식을 경험 있다.

당신이 얼마나 제한된 의식을 가졌든 간에 당신은 자유롭고, 스스로 결정된 존재이다. 다른 어떤 생명체나 어떤 존재들도 당신의 진동수준을 제어할 없다. 당신의 자유의지를 가로막을 것은 아무 것도, 특히 물질적인 어떤 것도 우주 안에는 없다. 그것은 물질세계가 당신에게 어떤 능력도 행사하지 못함을 뜻한다. 물질세계는 당신을 유혹하지도 타락시키지도 않으며, 깨달음의 길을 가로막지 않는다. 물질세계는 당신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당신은 당신 자신이 존재하는 유일한 원인이다. 당신의 내적인 조건은 결코 계획된 것이 아니다. 오직 스스로 존재하고, 스스로 자각을 위축시킬 때만 자유의지에 의해서 강요되거나 통제되는 것이다.

실재하는 우리의 수준은, 자각이 있는 단일한 존재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깨달음의 과정이란, 우리가 모든 것을 생생한 상호작용으로 경험할 때까지 타 존재들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모든 존재들은 사랑하는 일에서 물러설수록 물질세계의 더 많은 부분과 부딪히게 되고 보다 물질에 얽매이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주위의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어 사랑을 함께 하면 수록 세계는 더욱 부드러워진다.

깨달음은 우리의 의식을 현재의 한계 너머로 확장 시키는 경험이다. 완전한 깨달음이란, 우리가 어떠한 한계도 가지지 않고, 우주가 살아있음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말할 있다.

깨달음에 관해서 글을 쓰거나,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하고자 때의 난점은, 한계를 넘어서는 일에 관해 제한된 용어밖에는 사용할 없다는 있다.

깨닫는다는 것은 유연한 자각상태, 완전히 열린 마음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팽창해 가는 것이지 또 다른 한계에 이르는 과정이 아니다.

깨달은 후의 삶을 측정하는 어떤 올바른 방법도 없다. 깨달음을 얻은 후의 우리의 감정과 마음이 어떤 상태로 되어야 한다든지 되지 않아야 한다든지 하는 강요도 없다.

완전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어떤 제한된 생각과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것의 인식이고, 그것을 우리들 내부에 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의 긍정을 강조할 동시에 하나의 부정을 만들어낼 아는 것을 의미한다. 이상적인 지식을 취할 우리는 지식과는 다른 무지 또한 취해야 한다.

이상적인 신성(神聖) 강조할 우리는 신성의 다정한 친구인 죄악도 함께 강조해야 하고, 죄를 지어낸 대한 우리의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게 없을 그것이 자각의 축소이고 위축이다. 우리는 더욱 웅크리게 되고 결국은 집단의식 차원의 개체들로 되며 육신으로 다시 태어난다.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에 대해 우리 자신이 거부하는 것은, 우리가 자신들을 통제 없다는 것이며, 우리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그것은 우리의 의식 속으로 들어와 우리는 죄와 무지의 세계에 살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 같은 부정적인 것들에 대해 마음을 열어 거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런 것들과 함께 하지 않게 된다. 추한 것이 항시 우리 내부에 있음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자유로이 아름다움을 창출할 있다. 어리석음을 항상 인정하고 있으면 우리는 자유로이 명석해질 있다.

사랑은 가장 고귀하고 신성한 행위이다. 왜냐 하면, 사랑은 항시 그 자체로서 사랑이 아닌 것을 포용하고, 항시 사랑하지 않는 자를 사랑 속으로, 포용하는 쪽으로 움직여가기 때문이다.

일어나는 일들이 단지 많은 조건들의 엇갈림에 불과 한데도, 우리는 흔히 우리의 경험들을 인과 원인과 결과로 이해하려고 한다. 우리는 수도원의 고된 수행과도 같은 부정적인 일들을 하면서도 무엇 인가로부터 보상 받는다고 느낀다. 거꾸로 쾌락을 추구하면서도 무엇 인가로부터 속임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결코 걸음 뒤로 물러서서 우리가 추와도 같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우리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만이 친절하고 선량하며,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한쪽으로만 가는 추이기를 고집한다.

같은 혼란을 치유하는 길은, 정신적인 거부감 없이 삶을 경험하여 집단의식의 수준에서 공간수준까지 오르는 것이다. 사랑의 기적은 언제나 변함이 없고 우리의 자각이 열려있는 그러한 수준에서는 모순과 역설들을 포용하는 기적을 보다 쉽게 이해할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항시 스스로 택하지 않은 모든 것들을 부정하지 않고 포용할 우리는 자유로이 우리가 택하는 것들을 경험할 있다.

(,karma)이란 과거의 행위에 대한 벌이 아니다. 업이란 바로 당신이 당신의 진동수준을 수축시키거나 팽창시킴에 따라 과거에 경시했던 종류의 경험들에 부딪히게 되거나, 지금 고집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어떤 것으로 뛰어들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당신이 마음을 스스로 닫아버리면 보다 낮은 차원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차분히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일들을 주시하고, 그것들을 정신적으로 흡수하면서 지금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하면 계속해서 보다 높은 수준으로 팽창될 것이다.

의식이 고양된 상태에서는 잠시 동안 환각현상을 겪을 수도 있다. 새로운 혼돈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당신을 괴롭히는 위협적인 악의 존재가 주위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을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점차 이런 강압적인 절망감과 무력감은 사라질 것이고, 당신은 보다 높은 진동상태로 들어가는 법을 배우게 되어서 마침내는 그러한 현상들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로 가게 것이다. 그러한 혼란과 당신의 자각 수준과의 관계를 이해함으로써 당신은 스스로 감정이나 경험들을 변화 시키는 법을 알게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와 깊이 사랑에 빠져 있을 , 당신의 감정은 이상스럽게 더욱 허전해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흡사 더욱 진동수준이 낮아져서 공간 속에서 어떤 존재가 사라져가는 그런 것으로 이해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상태가 일어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것이 쉽게 사라지는 것을 있을 것이다. 그저 마음의 긴장을 풀고 움직여가는 것을 지켜보노라면 이런 사실을 있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구입하기가 쉬운 환각제로 순간적인 고양감, 섬광과도 같은 이런 느낌을 갖는다. 같은 황홀한 순간이 지나고 나면 기분이 더욱 침울해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에 대해 고민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여전히 당신이 보다 높은 상태로 상승하고 있다는 증표인 것이다.

이런 상태를 겪으면서 우리는 안정된 진동수준, 우리가 느낄 있는 어떤 수준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변화되어야 하는 것은, 안정감을 주는 이러한 수준에서 더욱 타인들과 편안하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타인을 거부하지 않는 상태 그것은, 지속적으로 확장되는 사랑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있다.

깨달음을 얻고자 하거나 보다 지고한 행복을 원할 , 자신의 일상 경험들을 결실에 대한 증표로 보는 것은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일이다. 당신의 매일의 삶은 당신의 영적 상태의 표출일 뿐이다.

보다 모든 것을 사랑하면서 당신의 삶은 변화될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변화될 예측할 수는 없다. 무엇이 일어나는가 보다는 당신이 그것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목표에 도달하는 있어 가장 훌륭한 태도는, 일이 일어나도 좋고 일어나지 않아도 좋다는 긍정적인 자세를 갖는 것이다. 이런 자세는, 미래를 위해 스스로가 자신 있게 선택할 있는 것에 다다를 때까지는, 많은 것을 예측하는 관심이 없어지게 만드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그냥 흘러가는 아름다운 하나의 경험을 붙드는, 이유는 값진 아름다운 경험을 다음에 갖게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어떤 깨달은 존재가 세상에 거할 것인지에 대한 아무런 예언도 자신 하기가 꺼려지는 것이다. 살펴보았듯이 우리의 마음들이 어떤 고정적인 관념에 묶여있다면 기꺼이 하나의 상황을 만들어내자마자 그것은 다른 어떤 것으로 변해버린다.

집단의식의 수준에서는 다른 어떤 이란 것이 새로운 것일수록 불쾌하게 여겨서, 그것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우리는 그것에 묶여버린다.

이것이 바로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많은 일들이 우리의 삶에서 사라지고, 추하고 무미건조한 일들만이 계속되는 이유를 설명할 있는 길이다. 장미빛 멋진 미래를 예견하는 데도 똑같이 이런 것이 적용된다.

그러나 우리의 이런 깨달음으로의 과정이 아무리 애매하고 무력해보일지라도 사랑은 그것을 극복하게 준다. 당신이 당신 자신과 타인들을 더욱 사랑함에 따라 있는 그대로의 완벽한 형태로 사람과 사물을 보게 것이라고 나는 분명히 예견할 있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면 매순간 풍요로운 기쁨을 누릴 것이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것을 보는 눈이 있기 때문에 당신의 존재 또한 아름다워질 것이다.

Posted by 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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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 모두는 동등한 존재이고, 우주는 우리들 상호간의 <관계>이다. 우주는 종류의 개체의 모임으로 이루어져 있다. 개체는 살아있으며, 각자 자신이 자기의 존재 과정을 결정한다. 이것이 당신이 책을 이해하기 위하여 혹은 당신 자신의 책을 쓰기 위하여 알아야 전부이다. 내가 말하는 모든 것은 단락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어떠한 의문도 단락을 깊이 생각 해보면 해결점을 찾을 있다.

우주는 정의를 내릴 수는 없지만, 하나의 무엇(Whatever it is)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의 목적을 위하여 그것을 정의해야 필요는 없다. 우리가 해야 것은 단지 종류 무엇이 있다는 가정과, 사실을 앎으로서 세상에 대하여 타당성이 있는 설명을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개체의 기본적인 기능은 팽창과 수축이다. 팽창된 존재들은 널리 충만해 있으며, 수축된 존재들은 밀집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 개개인은 수축과 팽창의 비율에 따라, 팽창과 수축이 번갈아 일어남에 따라 표현되는 진동의 종류에 의해서 공간(space)에너지 또는 집단(mass)에너지로 나누어진다. 존재는 자신의 진동수를 통제한다.

완전히 팽창된 존재는 공간이다. 팽창이 충만하게 퍼져있으므로 하나 또는 이상의 팽창된 존재는 동일한 공간 안에 함께 존재할 있다. 사실 우주 안의 모든 개체는 하나의 공간이라고 말할 있다.

우리는 자각, 이해, 깨달음, 각성 또는 우리가 어떻게 부르는 것이라도 상관 없이 팽창을 경험한다. 완전하게 팽창되었을 우리는 깨달음의 느낌과, 모든 삶이 하나라는 느낌을 갖는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다른 존재와의 상호관계에 대해서 조금의 거슬림도 없다. 그것은 영원한 희열이다.

공간이란 우리 모두가 접할 있는 경험의 영역이지만 무한함 때문에, 현재 우리가 살고있는 지구에서는 공간을 정확히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한계를 어디에다 두고, 정의를 어떻게 내리는가 하는 것이 문제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이런 모든 무한한 것을 경험할 있는 존재는, 완전히 팽창된 <절대>, 우리들 가운데의 극히 일부만이 경험할 있는 부분이라고.......

신은 영원히 존재하는 자신보다 나은 것을 창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은 <신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개인 역시 우주를 경험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이미 우리는 존재하고 있으며, 우주도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현대과학의 원자의 구성요소에서 제한된 것이긴 하지만 팽창과 수축을 실험할 있다. 여기서 부분적으로 우리는 무엇이 진실인가를 조금은 있다.

하나의 개체가 완전히 수축되었을 그것은 파동으로 미립자덩어리다. 이것이 완전히 수축된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 어느 정도 풀린 상태에서 개체는, 다른 무엇과 같은 공간 안에서 존재 없고 두려움, 고통, 무지, 증오 그리고 화합될 없는 격리감을 가진다. 물론 이런 것들은 진동(vibration) 팽창에 의해서 우선 생각하고, 보고, 느끼는 것에 대한 저항감을 없애는 것으로부터 언젠가는 그러한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다.

개체가 팽창과 수축을 동시에 그는 <에너지>. 정확하게 50% 수축과 50% 팽창이 있을 개체는 논리적이며, 객관적이며, 이기적이지 않고 예언을 수도 있는 상태가 것이다. 상태는 물리에서의 에너지 방정식에서 변이 (zero) 것과 같으며, 깨달음의 더 높은 수준으로의 팽창과정에서 겪는 자아의 소멸(ego-death)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에너지가 객관적인 어떤 (quantity) 아니라는 사실이다. 공간이나 물질과 마찬가지로 에너지도 살아있는 존재다. 에너지의 존재는 도미노 패처럼 자동적으로 확실하게 인접한 것에 반응한다. 에너지 존재가 공간존재와 관련을 맺는 동안은 파동이 높고 빠르게 진동하는 동시에 주관적으로 자유로워지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이에 비하여 집단 존재들은 주관적 강박관념, 무질서의 느낌이 크며, 낮은 에너지에서 보다 느리게 진동한다. 우주는 팽창과 수축의 비율, 빈도의 범위 내에서 끝없이 진동하는 존재의 화합이다. 여기에는 모든 변동과 조화, 모든 진동수준에 따르는 특별한 집합이 있다. 서로 다른 모든 존재들이 어떻게 다른 타 존재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책에서 더 이상 쓰지 않겠다. 아직 우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이러한 모든 사실들을 아는 것이 오히려 미궁에 빠지거나, 우리의 자유를 자각하려는 기본적인 자세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것은 우리만이 아직 이러한 사실들에 있어서 무지하다는 것이다. 전체 우주는 우리와 똑같은 존재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원자의 미립자들은 살아있다. 모든 분자나 세포는 존재의 집합체(tribe)이다. 에너지는 우리들 개체 가운데 많은 존재가 함께 진동하는 것이다. 공간은 완전한 희열에 잠겨 있는 수많은 우리의 이웃들이다.

모든 것은 살아있는 개체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생명과 물질 사이에 중요한 차이는 없다. 물질은 에너지로 바뀔 있을 아니라 에너지가 공간으로 바뀌고 공간이 에너지로 바뀔 수도 있다. 우리 자신의 자각의 축소, 우리 자신의 물질적 조건으로 인하여 우리는 우리 이웃들, 객관적인 물질과 에너지, 공간으로 본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진동수준에 따라 경험과 인식을 하는 것이다.

똑같은 법칙이 우리 모두에게 적용된다. 법칙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에게서 나온다. 우리는 동등한 존재로서 우리의 관계에 필요한 법칙 안에서 어떤 것을 해도 좋다. 사랑은 첫째 법칙이다. 사랑은 다른 존재와 함께 같은 공간 내에 살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것은 우리의 존재가 진실인 것처럼 사랑도 진실이라는 것을 뜻한다. 사랑은 제한된 어떤 개념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우리 전체가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우주 내에서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으로 팽창하거나 사랑하지 않음으로써 수축되는, 우리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우리가 지금 있는 곳으로 왔다는 것을 확신 있다.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육체와 가족과 사회, 역사 속의 시간 . 모든 것이 자신에 의해서, 자신의 팽창정도에 의해서, 자신의 사랑에 대한 의지에 의해서 결정된 것이다. 아무도 타인에게 어떤 것을 없다. 어느 누구도 타인에게 강요할 없다.

우리 개개인이 매일매일의 모든 순간에서 겪는 경험에는 절대적인 정의(justice) 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비밀이 없고,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으며, 어느 것도 잊어버리는 것이 없고, 어느 누구도 포기되지 않으며, 완전한 초월(팽창) 가능하다. 우리 모두는 같은 존재이면서도, 사랑에 주의를 집중하고 자각하거나 또는 사랑을 자신에게서 스스로 배제한다.

우리는 타인에게서 느끼는 모든 적대적인 감정에 대하여 완전하고 관대하게 사랑해야 한다. 사랑 안에서 우리의 존재는 팽창을 계속하여 우주의 모든 존재에까지 미칠 있다. 의지는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다 것이며, 사랑하려는 태도는 우리를 자유롭게 것이다. 아무 것도 우리의 운명을 통제하지 못한다. 행동의 옳고 그름은 둘째 문제다. 당신이 무엇을 하든 일을 하는 당신을 사랑하라.

사랑은 변화되어야 하는 유일한 차원이다. 만일 당신이 다른 존재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모른다고 생각되면 우선 그렇게 생각하는 당신 자신을 사랑하라. 표현을 하든 하든 의식 있는 존재가 서로에게 느껴서 사랑보다 중요한 것은 지구상에 없다.

게임의 효력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좋거나 나쁜 조건들에 대하여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지만 만약 그렇더라도 당신이 현재 지금 가고 있는 길을 사랑해야 한다. 당신의 조건이 어떻거나, 당신이 우주의 어느 곳에 살고 있거나 당신의 선택은 항상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그것은 의식의 팽창이거나 수축이다. 당신은 당신이 지금 있는 그곳에서 출발해야 한다. 당신이 어떤 곳에 있더라도 존재로서 잘못된 것은 없다. 그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무한한 경험 중의 하나이다. 내가 지금의 당신이 수도 있고, 당신이 지금의 내가 수도 있다.

우리가 수축된 집단의식으로서 무엇을 해왔건 간에 우리는 지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우리의 안에 있게 것이고,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무런 저항 없이 초월의 길로 나아갈 있다.

내가 자주 사용하는 금언이 있다.

 

그것은 항상 안에 있다.

 

우리는 우주의 흐름을 믿을 있다. 만일 사랑의 법칙이 진실이라면 우리가 그것에 동의를 하든 하든, 우리가 그것을 의식하건 하건,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건 안하건 간에 법칙은 효율적이다. 사랑의 본질은, 당신 자신을 위한 것이며, 당신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결과가 판단된다. 이런 사실들은 언제나 공간 안에 존재하고 있으며, 본질을 알기 위해서는 책이 필요 없다. 그것은 항상 당신 안에 있으며, 당신 안에 모든 것이 있다.

모든 조건이나 이유를 초월하여 사랑의 신비가 있다. 사랑하는데 있어서 우리 모두는 똑같다. 실제로 어느 누구도 타인의 의견이나 도움은 필요하지 않다. 당신은 여하간 가능한 자비로운 행동을 다하며, 당신 주변의 사람들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라.

나는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이것이 사랑이다. 내가 이러한 것을 느꼈다면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리라. 우리의 사랑이 깨달음이나 영적인 진보를 위해서 무슨 힘이 되겠느냐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나는 사랑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그것이 완벽한 결과를 가져다 준다는 것을 확신 시키기 위하여.......

게임의 상반되는 방향으로 나아가 보는 것도 재미있는 정신적 수련이다. 문제는 집단의식에서 당신을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깨달음을 얻느냐, 어떻게 좀더 팽창된 존재로 나아가느냐 하는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당신이 스스로의 결정에 의한 자유로운 존재이고, 물질계 위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당신 자신이라는 것이다. 결코 타인이 게임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내가 가끔 몰아의 경지에 빠져 있을 때 번개처럼 스치는 것이 있었는데, 만일 육체를 떠나 돌아가는 것이 쉬운 일이라면 그만 돌아가서 게임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아마 이것은 궁극적인 유혹일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것이 얼마나 쉬운지 정말로 알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책을 읽는 누구도 살아있다는 게임을 뒤집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리고 당신은 우리가 얼마나 무서운 공포영화를 즐기는지 것이다. 물리적인 실체를 보는 것은 가장 무서운 공포영화나 공포를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들은 우리의 진동수준에서 보듯 우주가 부분적으로 진실된 환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놀라운 사실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것을 즐기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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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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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사람이 깨닫는 법

 

저자:타데우스 골라스 / 역자:이상용

 

 

-나의 아버지 발렌틴 골라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지은이에 대하여                                                                  

타데우스 골라스가 [게으른 사람이 깨닫는 ] 쓰게 동기는 195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된다.

소년시절 그는 인쇄소에서 견습공으로 일하면서, () 기도하는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체험하는 자리에 임한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 후 콜롬비아대학을 졸업하여 여러 가지의 인쇄업에 종사하면서도 믿음에 대한 신념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

책은 그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어떤 체험에 몰입된 여러 동안에 쓰여졌다. 골라스는 책의 독자로부터 수많은 요청에도 불구하고 강의를 하거나 강좌를 하지 않았으며 현재 그는 캘리포니아의 험볼트 지방에서 은거생활을 하고 있다.

 

 

게으른 사람 1 게으른 사람이 깨닫는 /차례                                      

 서문

   1. 우리는 누구인가

   2. 나는 깨달았다 

   3. 어떻게 깨달음을 느끼는가

   4. 고통에서 빠져 나오는 길들

   5. 우리는 어떻게 여기로 왔는가

   6. 자기계발

   7. 시간과 진동들

   8. 변화를 통한 진보

   9. 무엇이 진실인가?

  10. 어떻게 깨달음으로 갈 수 있는가?

 우화

 더욱 게으르게

 

 

  서문

 

나는 게으른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나는 고행이나 엄격한 단식, 금연 등의 행동들이 필요하다고 믿지는 않는다. 이러한 것들이야말로 내가 가장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다. 사람은 겸손하기 이전에 정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점에 대하여 말하고자 책을 쓰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누구나 자신의 진보를 위하여 무엇인가 읽을 필요를 느낀다. 만일 당신이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깨달음을 느꼈든 그렇지 않았든 간에 깨달음을 얻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깨달음이 당신에게 필요한가 등의 질문이 생길 것이다. 그렇다면 책은 바로 당신에게 필요한 책이다.

여기에는 가지의 규칙이 있다.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자기는 어느 깨달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가진 그릇된 생각은 이러한 깨달음이 모두 똑같은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진리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것이 아니다. 나의 의도는, 이런 상태를 느꼈다고 해서 그것이 최상의 진리인양 떠벌리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누군가를 도와주고, 그런 상태가 영원히 자신에게 지속되어야 한다는 가지의 태도를 제시하려는 것이다.

자신의 깨달음을 위하여 책을 읽는 사람들은 우주는 실로 개인이 그것을 모두 알기에는 너무 거대하고 복잡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계 적인 측면에서 보면 세계는 대단히 간단하여 누구나 이런 문제로 곤경에 빠질 이유는 없다. 아무리 세상이 복잡하게 보일지라도 자신을 조절하기는 쉬운 일이다. 나는 이런 사실들을 사람들이 알려고 하지도 않고, 미리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해버리기 때문에 책을 중도에서 번이나 멈추었다. 그러나 결국 쓰지 않을 이유보다는 써야 이유들이 많아졌다.

나는 자신을 위해서 책을 쓰고있다.

1장에는 우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있다. 그리고 우주적인 관점에서의 우리의 삶에 대한 토의가 책의 나머지 부분이다. 책 속에는 지식의 모든 분야로 확대되는 광범위한 사상이 있다.

그리고 내가 수년 동안 지켜온 생각들이라 해서 모든 사람이 쉽게 그것을 받아들이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당신이 게임에 직접 참여하고, 어디로 자신이 인도되는가를 보는 것이며, 당신이 여태껏 알아왔던 것과 비교하여 점검해보는 일이다. 우주를,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보기 위하여 무엇이 진리 이여야 하는가, 물질과 영혼 사이에 진실한 교량이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여러 동안 이 같은 관심에 사로잡혀 있었고, 책은  결과 일부이다. 내가 제시하는 이러한 결과는 당신이 직접 점검과 체험의 과정을 가질 때만 의미가 있게 것이다.

책은 그러한 점검과 체험을 위한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누구나 글을 받아들여 그것을 실현으로 발전시키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내가 알지 못하는 당신이 책으로 좀더 앞으로 나아가고 행복해 졌다면 나는 수천 번이라도 모든 것을 다시 것이다. 진동(vibration) 참으로 즐거운 것이라는 것을 당신이 알기를 바란다.

※ 이 책의 개정판 번역본이 새로 나왔다.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던 책이었는데, 절판된 책을 다시 보게 되어서 기쁘다. 누구나 곁에 두고 평생을 펼쳐보아야 할 책이다. 내가 소개하는 내용은 누군가 절판된 구본을 열심히 타이핑해서 인터넷에 올려놓은 글이다.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내가 읽어본 책 중에 최고의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얼마 전 신간이 출간되었다는 것을 알고 다시 구입해서 읽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읽고 도움을 받았으면 하는 생각에 내용을 소개한다. 한 번씩 읽어보고 공감하시면 신간을 구입해 읽어보시길...... 그렇다고 내가 출판사와 관계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단순히 너무 좋아서 소개하는 것뿐.

게으름뱅이의 깨달음
다데우스 골라스| 안진환| 북스넛 | 2005.10.12
Posted by 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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