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말, 워싱턴 산으로 옮긴 직후 나는 요가난다로부터 크리야 요가 테크닉을 전수 받았다. 어느 날 분과 나는 크리야 요가와 여타 명상 테크닉들을 비교, 토론하고 있었다. 분이 모든 요가 무드라의 왕이라고 하는 케차리 무드라에 대해 언급했다.

  "케차리 무드라가 뭐지, 분?"

  "음, 혀하고 관련된 거야. 혀의 포즈를 독특하게 취하는 거지."

  분은 생명력이 어떻게 척추의 신경 센터들을 통과해 뇌의 고급 센터들을 향해 상승하는지, 그리고 뇌하수체와 송과선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설명해 주었다.

  이윽고 그가 말했다.

  "입천장과 목젖을 본 적 있어? 목젖은 연구개 중간부분으로부터 아래로 매달려 있지.“

  "그래, 본적 있어."

  "음, 케차리 무드라는 혀를 뒤로 말아 올리는 거야. 혀가 연구개의 뒷부분으로 미끌어져 넘어갈 때까지 말이야. 그러고 나서 혀를 계속 위로 밀어 올려야 돼. 혀가 비인두鼻咽頭 뒤에 닿을 때까지. 입 안에서 혀끝으로 콧구멍을 닫을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해. 혀끝을 계속 위로 올리다 보면 뇌하수체 바로 아래 돌출 돼 있는 뼈에 도달하게 돼. 최종적인 연결이 이루어지는 곳은 바로 거기야.

  뇌하수체가 활성화되면 송과선이 진동하기 시작해. 그리고 뇌하수체 센터에 있는 영안에서 두 힘이 자기적으로 끌리며 합쳐지게 되지. 케차리 무드라는 일종의 황홀한 자류를 일으켜 몸 안의 다른 힘들을 각성시키고, 신의 옥좌인 이 의식의 센터에 합류시켜 주지.“

  나는 케차리 무드라를 시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혀를 뒤로 밀어 올렸다. 혀끝에 목젖이 닿을 때까지. 연구개 뒤로 혀가 미끌어져 넘어갔다. 계속 혀를 위로 움직이자 혀 끝에 비인두와 비공의 내측이 닿는 게 느껴졌다. 이윽고 혀는 비공을 넘어 다니엘이 설명해 준 돌출된 뼈에 닿았다. 정말이네! 곧 바로 마음속에 매우 깊은 상태의 의식이 퍼져가는 게 느껴졌다. 눈을 감자 찬란한 빛이 내 주위에 너울거렸다.

  다니엘은 내가 처음 단 한 번의 시도로 이 어려운 무드라를 성공시키자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는 케차리 무드라를 한 상태에서 크리야 행법을 하기 시작했다. 놀라운 결과를 경험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메시지가 도착했다. "파라마한사지께서 당신을 보기 원해요." 3층으로 올라가 요가난다의 방으로 갔다. 그는 부엌에 있었다.

  "빅 보이, 무얼 하고 있지?"

  "테니스 코트장에서 일하고 있어요, 선생님."

  "잠깐 이리와 봐. 듣자니 요즘 다른 방식으로 크리야를 하다면서?"

  "예, 그래요."

  "혀를 뒤로 삼킬 수 있나?"

  "예, 할 수 있어요."

  "잠깐 보여줘 봐."

  파라마한사지가 손전등을 들었다. 나는 케차리 무드라를 실행해 보여줬다. 그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오, 이런!" 그가 소리쳤다. "넌 모를 거야, 네가 얼마나 축복을 받은 몸인지. 혀를 이렇게 뒤로 올린 채 크리야를 행하나?"

  "예."

  "좋아, 좋아. 그것이, 바바지가 라히리 마하사야한테 처음 크리야 요가를 전수할 때의 방법이야. 너는 전생에 요가의 달인이었어. 그래서 너는 무드라의 왕이라는 케차리 무드라를 쉽게 할 수 있게 된 거야. 그만 가봐. 명상을 계속해. 이 일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한테 얘기하지 마! 너는 놀라운 체험들을 하게 될 거야."

  당시에 마스터는 사람들이 신을 발견하기 위해 혀를 뒤로 삼켜야만 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주의하고 있었다. 그것에 매여 혹시나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단순화된 형태의 크리야 요가를 시도조차 하려 하지 않을까 하고.

  그때 요가난다는 내게 다른 많은 것들을 말해 주었다. 그는 그것들을 내 가슴 속에 개인적으로 간직하도록 당부했다. 나는 그렇게 하겠노라고 그에게 다짐했다. 이 신성한 통찰을 받게 된 데 대해 나의 혼은 그에게, 그리고 신성한 영 어머니-아버지께 무한한 감사를 느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신성한 진리에 대해 지적인 자극들을 찾고 있을 뿐 그것들을 실천에 옮기는 데 필요한 노력을 기꺼이 하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명상을 향한 깊은 열망을 지닌 내 자신이 얼마나 행운아인지 깨달았다. 나는 일찍이 많은 사람들이 인내력 부족으로 영적인 길에 들어섰다가 떠나는 것을 보아왔다. 그들은 명상을 일반적인 습관 이상의 것으로 행하지 못했다.

  요가난다의 예언은 맞아 떨어졌다. 케차리 무드라와 함께 크리야를 이삼십 회 행하자 나는 깊이 계명된 의식 상태에 들게 되었다. 어느 일요일 날 교회 예배가 끝난 뒤 나는 밤새 내내 명상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 명상 방에 앉아 있을 때 갑자기 너울거리는 빛이 내 주위를 감쌌다. 너무도 생생해서 나는 그것이 실제 물질적인 것인지 아니면 내적인 차원상의 것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저녁 6시쯤이었다. 몇 차례 크리야를 행한 뒤였다. 나는 갑자기 원형의 방에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거기에는 내가 이전의 환영들 속에서 보았던 남녀들이 있었다.

  거대한 포털을 통해 보자 내 눈에 LA시의 옥상들이 들어왔다. 우리는 그 위를 움직이고 있었다. 잠시, 아래로 호수 사원이 보였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조용히 우리는 높이 더 높이 올라갔다. 캘리포니아에서 산타 바라바 쪽으로 올라가는 해안선이 보였다. 한 농장 하우스 주위에 많은 익숙한 얼굴의 사람들이 서서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우리가 다시 해안선으로 돌아올 때, 산맥 꼭대기에 있는 한 작은 호수 주위에 서 있는 낯익은 얼굴의 사람들이 다시 보였다.

  갑자기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이곳이 바로 네가 사역을 시작할 곳이다. 네가 지금 보고 있는 저 젊은 사람들과 함께."

  내 주위에서 빛이 폭발했다. 눈을 떠 보니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내 명상 방이었다. 이것은 나의 첫 아스트랄 투사를 통한 미래 여행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유사한 환영들을 체험했다. 한 번은 젊은이들이 말들과 함께 농사를 짓는 모습이 보였다. 다른 환영 속에서 나는 이 많은 남녀들이 지금 화신해 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명상 속에서 자각과 통제를 얻게 되자 나는 과거와 미래의 사건들의 에너지를 현재 속에 연결시킬 수 있게 되었고, 실제적인 진실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제 알게 되었다, 장차 이 환영들이 산타 바바라와 그 밖의 지역에서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게 될 거라는 사실을.

  우리는 사실상, 확장해 가는 창조의 세계들에 존재하는 내적인 공간의 광대한 차원들 - 태양들이 빛나고 아스트랄 혹성들이 궤도 속을 미끌어져 움직이는 필설로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닌 - 에서 온 하나의 숨결이다.

  그날 나는 의식 속에서 이 세계의 이미지들과 마주했다. 내적인 공간의 세계들이 저 멀리 사라져갔다. 내가 진정으로 바란 것은 더 큰 확신이었다. 왜냐하면 의심들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내가 환영 속에서 본 모든 것들을 성취할 수 있을까? 나는 인내심을 가져야만 했다. 기다려야만 했다. 그렇게 기다리는 데 거의 20여년의 세월이 걸렸다.

  요가난다는 한 평생 스와미 샹카라에 의해 설립된 고대 수도승 교단의 한 분지로서 SRF를 세웠다. 그는 또한 '단순한 삶, 높은 생각.'의 이상에 바탕을 둔 영적인 환경 속에서 기혼자들과 아이들이 살 수 있는 세계형제 공동체를 마음 속에 품고 있었다. 그는 일상 모든 삶의 측면들이 신적 자아의 실현을 향해 조화롭게 통합된 영적인 삶을 소망하는, 가정을 지닌 제자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원래 그는 우선 엔시니타스를 자급자족하는 세계형제 공동체로 만들려고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신성한 영이 거기에 다른 계획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씨앗이 이미 심어졌고 어느 날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요가난다는 구세대 사람들을 다루어야만 했다. 그는 그들을 종종 '심리학적인 유물'이라고 언급하곤 했다. 심지어 1920년대 말에서 30년대 초에 태어난 나의 세대조차 내적 신의 실현을 추구하고자 하지 않았다. 그들은 신성을 향한 탐구를 위해 필요한 만큼 충분히 세속적인 욕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형제단 속에서 평화롭게 함께 살 수 있는 세대는 40년대 초 이후부터 태어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들은 여기 있고 그 시간은 바로 지금이다. 요가난다는 시기가 무르익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필요성을 인식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없었다. 그의 꿈은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이들이 공동체 속에서 함께 사는 것이었다.

  파라마한사지는 사막 은거지에서 저술 작업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도날드 월터스와 나는 그곳으로 부름을 받았다. 은거지에 형제자매들의 레크리에이션을 위한 수영장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땅을 파는 작업은 굉장히 힘들었다. 화강암 지층을 뚫고 나자 높은 온도와 압력으로 딱딱하게 굳은 경질 지층이 나왔다. 그것은 아주 오랜 옛날 마른 호수의 지표 진흙이었다. 그것을 뚫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강철 굴착 바를 사용하는 것뿐이었다. 도날드와 나는 여러 주 동안 뜨거운 사막의 태양 아래서 굴착작업을 계속 해나갔다. 끔찍하게 힘든 노동 속에서 단 하나의 좋은 점은 거의 매일 요가난다가 차가운 음료를 가지고 와서 신의 실현에 대해 얘기해 주는 것이었다.

  굴착 작업이 끝나자 우리는 콘크리트 벽을 지탱하기 위한 목재틀을 만들어야 했다. 미리 섞어놓은 콘크리트를 들여오면 한 시간이면 마칠 수 있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요가난다는 몇 달러를 아끼기 위해 그것을 수작업으로 하길 원했다. 하지만 내 생각에 사실상 요가난다는 우리가 땀을 흘리고 더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기 원하는 것 같았다.

  나는 트웬티나인 팜스로 가서 시멘트 믹서를 빌려왔다. 그리고 모래와 자갈, 시멘트를 주문해서 싣고 왔다. 다음 날 아침 6시경 우리는 일을 시작했다. 나와 버나드, 다니엘, 도날드, 그리고 그밖의 여러 형제 수사들이 거기에 있었다. 우리는 16시간만에 작업을 끝냈다. 그 날 밤 만큼 내 생에서 곤죽이 된 날은 다시는 없을 거 같았다. 이틀 후 우리는 목재틀을 떼내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다음 우리는 내벽 주위를 돌아가며 컬러타일들을 붙였다. 그러고 나서 하우스와 매치시키기 위해 크림 색의 벽토 작업을 했다. 정말 아름다웠다.

  작업이 완공되고, 마침내 풀에 물을 채워 넣는 날이 다가왔다. 요가난다는 기뻐했다. 그는 풀장에 뛰어들어 수영을 했다. 그는 우리 모두 풀장 안에 들어와 수영을 즐기도록 했다. 우리는 그날 하루를 다 함께 짧은 명상으로 마무리지었다. 일이 끝나자 우리는 와싱턴 산으로 돌아왔다.

출처 : http://blog.naver.com/PostList.nhn?blogId=eyeinhand&categoryNo=10

Posted by 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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