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초에 다니엘 분이 내게 와서 수사 생활을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다. 아내와 자식을 가지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것이었다. 그는 더 이상 독신 수사로서 살고 싶은 마음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한 가정을 거느린 가장의 삶을 원했다. 외로운 수사의 삶에 따르는 고난과 시련이 그로선 참기가 너무도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의 삶이 걸어야 할 진정한 길, 즉 자신의 뜻이 아니라 신의 뜻에 따라 걷는 길을 보여 주는 절대적인 통찰력을 얻을 때까지 요가난다와 함께 계속 머물러야만 한다고 그를 설득했다.

  1950년 9월 말, 다니엘이 내 방을 찾아왔다.

  "노먼, 나 이제 떠나. 더 이상 머물 수 없어."

  "그 문제에 대해 파라마한사지와 얘기해 봤어?"

  "응. 2주 전에 여행 가방을 들고 정문 앞을 걸어 나오고 있었어. 그때 나는 소란을 피우지 말고 혼자 조용히 떠나는 게 좋겠다고 마음먹었었지. 그런데 마침 그 순간 그의 차가 회전하며 도로로 진입하더군. 차 전조등이 가방을 들고 서 있는 내 모습을 비추었어. 그 바람에 바로 거기서 그에게 붙잡혔지. 나는 파라마한사지를 따라 그의 방으로 올라갔어. 거기서 우리는 밤새 대화를 나누었어. 물론 그는 내가 떠나는 걸 원치 않았어. 결국 나는 2주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지. 음, 노먼, 그 2주가 다 되었어. 떠나야만 될 거 같아."

  나중에 들은 바로는, 그 이야기는 아주 극적이었다. 당시 요가난다는 트웬티나인 팜스 은거지에서 비서에게 일을 지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펄쩍 뛰며 외쳤다. "차를 빨리 밖으로 대! 와싱턴 산으로 가야만 해. 가능한 빨리 차를 몰아!"

  요가난다는 가능한 최고 속도로 달리라고 재촉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정문에서 분을 잡았던 것이다.

  분은 내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책과 물건들을 주었다.

  "그럼, 잘 있어."

  우리는 서로 잠시 동안 끌어안았다. 그러고 나서 그가 여행 가방을 들고 도로 아래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노먼, 편지로 소식 전할게."

  다니엘이 떠나고 없자 심한 고독감이 밀려왔다. 힘든 것은 당연했다. 그는 내가 정말 좋아하던 친구였다. 거기다 요가난다마저 언젠가 떠나버린다면,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부들부들 떨려왔다.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젊은 남자 제자들은 모두 징집 대상이었다. 와싱턴 산에 있던 청년들 중 일부는 신학생으로서 징집되지 않는 행운을 누렸다. 분은 와싱턴 산을 떠난 뒤 징집을 기다리지 않고 해군에 지원했다.

  이제 나는 신성한 영이 나로 하여금 해군에 억지로 스스로 입대하게 만든 이유를 이해하였다. 만일 내가 의무 복무기간을 마치지 않았다면, 행여나 내가 와싱턴 산을 떠날 결심을 할 경우 나 역시 강제 징집되었을 것이다. 존 윈십은 징집되어 텍사스의 후드 훈련 캠프로 갔다.

  분이 떠나가자 와싱턴 산이 허전하게 느껴졌다. 그 결핍감을 메우기는 어려웠다. 나는 도날드 월터스를 거의 보지 못했다. 요가난다는 분이 떠나가자 깊이 상심했다. 수년 후 나는, 진정으로 사랑하던 사람이 영적인 사역을 그만두고 떠날 때 요가난다가 체험했던 비통함을 절실히 알게 되었다.

  마침내 크리스마스 명상 시기가 다가왔다. 우리는 모두 거기서 요가난다를 친견할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9월 이후로 파라마한사지는 사막에 있었다. 그는 바가바드 기타의 번역을 마무리 지을 결심을 하고 있었다. 직관적으로 나는, 그가 몸을 벗기 전에 자신의 일을 마무리 지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가 육신을 떠난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가 스스로 내게 그렇게 될 거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크리스마스 날 뵙게 되었을 때 그에게는 어떤 질병의 징후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발산되는 진동은 영원의 심연 같았다. 나는 그가 영원 속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의 축복을 받기 위해 올라갔을 때 그가 말했다. "어떻게 지내나, 빅 보이? 꾸준해야만 해.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어."

  나는 그 말의 의미를 물어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은 그가 이제 육신을 떠날 시기가 가까워 오고 있다는 뜻일 지 몰랐다.

  나의 스승 속에서 깊은 슬픔이 느껴졌다. 요가난다는 엔시니타스에 있는 기혼 커플들 중 몇몇의 문제 때문에 세계 형제 공동체의 꿈이 실패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다니엘 분과 여러 형제 수사들을 잃게 된 터라 그의 상심은 더했다. 게다가 이곳에서 자신의 사역을 마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신성한 어머니(성모)께서 나를 데려가길 원해." 그가 한 무리의 제자들에게 말했다. "그 문제로 나는 신성한 어머니께 간구하고 있어."

  또 다른 무리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 빌려온 시간을 살고 있어. 신성한 어머니는 나를 언제든 데려갈 거야."

  그가 이곳저곳에서 자신의 죽음에 대한 암시들을 던졌지만 아무도 진진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무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것을 믿길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1951년 2월 내 생일 즈음에 나는, 머지않아 산타 바바라로 떠나야할 지 모른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요가난다는 내가 저술 작업을 하거나 강연을 하도록 시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그 일들을 위한 다른 형제자매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건축일이나 수리일을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하는 것으로 보였다.

  진 하우프트와 나는 자주 함께 일했다. 그는 무척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진은 명상하며 보내는 시간을, 금화를 은행에 맡기는 것처럼 생각했다. 그는 문자 그대로 하루에 적어도 대여섯 시간을 명상했다. 시간을 낼 수 있으면 그것보다 더 했다.

  "명상을 하면 할수록 나는 신으로부터 더 멀어지는 거 같아." 그가 슬프게 말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진은 이 문제로 요가난다와 상담했다. 요가난다로부터 그가 받은 대답은 이러했다.

  "주님의 축복에 의해서만 우리는 신과 만날 수 있어요."

  "그 말은 신이 선택한 사람들에게만 임재하신다는 뜻입니까?"

  그의 말에 요가난다가 대답했다.

  "중요한 것은 크리야 요가를 얼마나 많이 하느냐가 아니야. 정말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신을 얼마나 사랑하느냐는 거지. 그를 우리에게 끌어당기는 힘은 그에게 바치는 우리 가슴의 진실한 사랑이야."

  진은 혼란에 빠졌다. 진은, 만일 신이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임재한다면 아무리 몇 시간씩 명상을 해봤자 신을 볼 수 없을 지 모른다고 느꼈다.

  "이봐, 진." 내가 말했다. "명상은 밭을 가는 것과 같아. 우리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릴 준비를 해야 해. 신은 네가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분명 알고 있어. 스승님도 말씀하셨잖아, 주님은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온다고. 그러니 우리는 항상 준비해야만 해."

  진이 머리를 흔들었다. 그는 몇 년 동안 명상을 해봐도 우주 의식 속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내면에서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자 정말로 상심하였다. 진은 단념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잠시 동안 와싱턴 산을 떠나는 문제에 대해 얘기했다. 그리고 마침내 1952년 봄에 그는 떠났다.

  수도원에서의 삶은 우리에게 육체적인 안락도 교우도 거의 주지 않았다. 우리는 오랫동안 명상하고 기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고 나면 반드시 창조적인 어떤 일을 해야만 했다. 호수 사원이 완성되고 인디아 하우스가 개장되자 요가난다는 더 이상의 프로젝트를 시작하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저술 작업을 마치는 데만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1951년 3월 초순 어느 날 그가 나를 사막 은거지로 부른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내가 도착하자 그가 나를 맞았다.

  "차고에 새 지붕을 만들어야 할 거 같아서 널 여기로 불렀어. 하지만 사실 나는 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어. 이리와, 산책이나 같이 하지."

 

  우리 수사들이 길을 따라 설치한 철조망 울타리가 아직도 있었다. 동쪽 하늘에 보름달이 떠오르면 사막은 황금빛으로 빛나는 요정의 땅으로 변했고 하늘은 짙은 청자색으로 물들었다. 사막 저 멀리에는 조슈아 나무들이 저마다 녹색과 황금빛의 오라를 발산하고 있었다. 내 발밑의 사막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막의 모래 속에 있는 미세한 석영들이 금빛 안개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오, 이런!" 요가난다가 외쳤다. "이곳이 이토록 아름다운 곳일 줄이야. 이제까지 이걸 보지 못하다니." 이 무렵 그는 아직도 다리가 다 낫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내 오른 팔을 잡고 의지했다. 우리는 천천히 은거지 주위를 거닐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은 필요 없었다. 이제껏 경험해 본 것 중에서 가장 깊은 축복과 사랑 속에서 나의 생명력이 그의 것과 융합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에게 언제 떠날 것인지 묻고 싶었다. 내 생각을 읽었는 지 그가 큰 소리로 외쳤다.

  "곧, 아주 곧."

  나는 그가 내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에게 산타 바바라에 대해 묻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떠나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그가 대답했다. "아직 좀 더 기다려. 네가 해야만 할 일이 있어. 신성한 어머니는 지금 여기 너와 함께 있어."

  갑자기 나는 모든 머리카락이 곤두 서는 것처럼 느껴졌다. 대기는 황홀한 에너지로 충만해 있었다. 나는 우리가 함께 허공을 거니는 듯이 느껴졌다.

  "내게 약속해줘. 이 생에서 네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만일 쓰러지면 성공에 대한 더 큰 확신을 가지고 바로 일어서. 그렇게 할 수 있나?"

  "예, 선생님." 내가 대답했다. "약속하겠습니다."

  "좋아. 아주 좋아."

  내가 머지않아 SRF를 떠나리라는 사실을 그도 알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항상 산타 바바라에 센터가 있었으면 하고 바랬지."

  "예, 선생님." 내가 대답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 일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빨리 오지는 않을 거야."

  나는 세속에서 살아야만 할 운명이었다. 처음에는 친구도 거의 없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우리의 대화가 특별한 작별인사라는 걸 깨달았다. 그때 나의 가슴은 사랑과 헌신의 감정으로 벅차올라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잘 자, 빅 보이."

  "잘 주무세요, 선생님."

  나는 그가 영원 속을 들여다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출처 : http://blog.naver.com/PostList.nhn?blogId=eyeinhand&categoryNo=10

Posted by 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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