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는 노먼 폴슨의 자서전에서 핵심적인 부분들만을 발췌해서 그의 영적인 세계를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그가 이루려고 했던 이상적인 공동체의 꿈은 어떻게 되었을까? 다음은 그가 창설한 선버스트 공동체가 걸어온 여정을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1968년 산타 바바라에서 노먼 폴슨을 중심으로 작은 명상 모임이 만들어졌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주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었다. 이 그룹은 8개월만에 25명으로 늘어났는데, 당시에는 태양형제단 Brotherhood of the Sun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공동체 내에서는 아침 저녁으로 그룹 명상이 행해졌고 마약, 알콜, 담배가 금지되었다. 요가난다가 구상했던 자급자족형의 공동체를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폴슨은 1970년에 카미노 시엘로 산정에 위치한 160 에이커의 농장을 구입함으로써 자신이 꿈에 그리던 공동체를 본격적으로 출발시키게 되었다.

  폴슨과 그의 제자들이 처음 그곳으로 거주하기 위해 갔을 때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비가 그치면서 갑자기 아침 태양이 구름 사이를 뚫고 빛나며 산등성이와 계곡을 비추었고, 하늘에 커다란 무지개가 그려지며 그들을 환영했다. 이 장관을 감탄하면서 바라보던 그들은 농장의 이름을 ‘선버스트 농장’이라고 지었고 거기 있던 오래된 건물에는 ‘레인보우 롯지’라는 이름을 붙였다. 선버스트sunburst는 구름 사이에서 갑자기 비치는 강한 햇살이라는 뜻이다.

  선버스트 공동체는 유기농법으로 작물들을 재배해서 팔았고, 과수원을 만들고, 말을 이용해 쟁기질을 했다. 그리고 염소를 길러 우유와 치즈를, 양봉을 통해 꿀을 얻었다. 그곳에는 대장간도 있었고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도 있었다. 그들은 자급자족을 위한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시설들을 갖추었다. 그들은 자체 재배한 유기농 작물로 메뉴를 만들어 파는 레스토랑을 열기도 했고, 주스 공장, 빵집, 유기농산물 도매점 등을 운영하기도 했다.


  선버스트 공동체는 나날이 성장해서 한 때 멤버수가 3백 명이 넘기도 했다. 멤버들을 수용하기 위해 1971년에는 150 에이커의 오길비 농장(레무리아로 개명), 1976년 3천 에이커의 타지규어스 농장을 구입했다.

  1980년대 초가 되자 많은 멤버들이 결혼을 하여 아이들을 낳게 되었다. 젊은 시절에 그룹 공동 펀드의 체험을 즐겼던 그들도 가족을 가지게 되자 경제적인 독립을 원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되었다. 재정적인 문제를 비롯, 공동체 운영 방식에 대한 견해 차이 등 내외적인 여러 문제들이 발생하면서 많은 멤버들이 떠나게 되었고 선버스트의 활동은 위축되었다.

  재정 위기에 봉착한 선버스트 공동체는 1981년 타지규어스 농장을 팔고 네바다주 엘코의 빅스프링스 농장을 구입했고, 폴슨과 남아 있던 멤버들이 그곳으로 옮겼다. 그러나 추운 북부 기후 때문에 농작물 재배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결국 주활동 무대를 인근의 솔트 레이크 시로 옮기게 되었다.

  수년 동안 솔트 레이크 시에서 재정 상태를 회복한 선버스트 공동체는 1996년 산타 바바라와 롬포크 사이에 위치한 4천 에이커의 농장을 구입해 그곳으로 옮겨왔다. 이 그룹은 10년 동안 태양로고스회Solar Logos Foundation라는 명칭으로 활동하다가 2006년 선버스트 성소Sunburst Santuary라는 이름의 영적인 은거 센터로 새롭게 출발했다.

  이곳에서 멤버들은 유기농 채소와 과일을 재배하고 그룹 명상을 하며 요가 클래스를 열고 음악, 미술 등 다양한 분야의 워크숍을 개최하고 있다.



출처 : http://blog.naver.com/PostList.nhn?blogId=eyeinhand&categoryNo=10

Posted by 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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